기미 작가 ·모르모트 PD! 예능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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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 선 제작진의 변신은 무죄 …쌀집 아저씨, 보거스PD, 김태호, 나영석까지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제작진의 활약이 눈에 띈다. 카메라 뒤에서 얼굴을 잘 비추지 않던 PD, 작가 등 제작진이 예능에 출연해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제작진의 능청을 떠는 혹은 허술한 리액션이 ‘예능의 고수’를 넘어설 때가 많다. 제작진은 게임 혹은 미션을 소재로 한 예능에선 중재자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자칫 지루해지기 십상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선 연예인 같은 자연스러운 출연으로 시청자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 예능의 묘를 세우고 있는 제작진의 활약들을 살펴본다.

▲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쌀집 아저씨 MBC 김영희 PD ⓒMBC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드라마는 드라마라서, 예능은 스튜디오물 중심이라 출연자와 제작진의 경계가 분명했던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TV에서 제작진의 모습을 아예 볼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엔딩 크레디트용 촬영 현장 스틸컷을 통해서나마 제작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예능의 경우 90년대 <일밤>에서 개그맨 이경실이 지어준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 때문에 목소리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던 MBC 김영희 PD는 <칭찬합시다> 등을 시작으로 심심찮게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MC’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밖에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의 보거스PD, KBS <출발 드림팀>의 ‘학이PD’ 등도 있었다.

최근에는 얼굴이 없던 제작진이 거리낌 없이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보이고 있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장수 프로그램 MBC <무한도전>, KBS <해피선데이-1박 2일>부터 인터넷 생방송을 표방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tvN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에 목소리로 등장하거나 출연자 사이에 별명으로 언급되는 것을 넘어서 직접 화면 속으로 들어가 카메라 앞에 선다.

<무한도전>에서 김태호 PD는 ‘공공의 적’이다. 김 PD는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출연해 십 년 간 호흡을 맞춰 온 멤버들에게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인물이지만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멤버들에게 휴가를 보내준다고 했다가 ‘극한 알바 체험’을 시킨 방송분에서 하하는 공항에서 김 PD를 보자마자 달려가 분노의 발차기를 날렸다. 유재석도 “소송이나 준비하라”고 경고했지만 김 PD는 “이제부터 진짜 휴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밖에 <무한도전> 작가가 국적불명 아이돌 댄스를 춘 ‘방콕 특집’ 클립 영상(MBC예능 TV팟 기준)은 73만 조회수를 넘을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출연해 화제를 모은 '모르모토 PD' 권해봄 PD ⓒMBC

아예 출연자보다 더 주목받는 제작진도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기미 작가’, ‘장군 작가’에 이어 조연출인 권해봄 PD는 실험용 쥐라는 뜻의 ‘모르모트 PD’라는 별명으로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반짝이 무대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배우고, 여배우와 탱고를 추다 진땀을 빼고, AOA 초아와 가상 연애를 하는 등 허술한 리액션으로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1인 인터넷 방송이라는 <마리텔> 특성상 누리꾼 반응은 더욱 열광적이다. 권 PD도 “‘마리텔’은 콘텐츠를 배워볼 수 있는 실험대상이 있어야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이 더 잘되는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위키트리>, ‘극한직업 마리텔 모르모트 PD 권해봄 인터뷰’, 2015년 9월 21일자 인터뷰)

이와 더불어 나영석 PD는 평범한 사건에 개입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포맷에 활기를 불어넣는 연출자다. tvN<꽃보다 할배>, <삼시세끼>는 실험적인 소재 대신 지극히 일상적인 아이템을 다뤘다. 따라서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이국적인 여행지를 배경 삼아 시청자의 눈을 호강시켜줄 수 있어도 풍부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기란 제약이 뒤따랐다. ‘유기농 예능’을 표방한 <삼시세끼> ‘정선편’도 마찬가지다. 나 PD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시점에 출연자인 이서진에게 질문을 툭툭 던지는 등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며 단조로운 에피소드에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 tvN '꽃보다 할배'에 출연한 나영석 PD ⓒCJ E&M

이렇듯 카메라 뒤에서 프로그램을 지휘하던 제작진의 깜짝 출연은 오히려 프로그램의 짜임새를 높이는 장치처럼 사용되고 있다. 현장감이 생명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제작진의 개입은 프로그램의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드는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이 뿐일까. ‘예능 고수’들의 정형화된 리액션 대신 제작진의 어설픈 혹은 고수를 뛰어넘어선 리액션은 시청자들에게 예상 밖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카메라 앞에서 예능의 묘를 살리는 제작진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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