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오늘도 죽음의 바다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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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MBC ‘PD수첩 특집-그리스로 간 시리아 난민’

▲ MBC ‘PD수첩 특집-그리스로 간 시리아 난민’ ⓒMBC

빽빽한 사람들을 헤집고 부둣가로 들어서자 시큼한 땀냄새가 진동했다. 몇 주간 세수 한 번 제대로 못했을 몸에서 나는 당연한 찌든내. 싫지 않았다. 이들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그리스 레스보스섬 미틸리니 항은 아테네로 가는 표를 사려는 난민들로 장사진을 이룬지 오래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이라크…. ‘아랍’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기 힘든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항구 주차장은 천막촌으로 변했고, 철조망엔 빨래가 널렸다. 그 와중에도 히잡을 풀지 못하는 여성들, 낯선 동양인 카메라가 신기하기만 한 팬티 바람의 꼬마들, 연신 담배연기를 흘리는 청년 무리들…. 모두 불과 며칠 전 목숨을 걸고 고무보트로 바다를 건너 이 섬에 도착했다.

시리아 내전, 끝없는 폭격과 죽음은 내게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감당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해 오히려 외면해왔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은, 잠든 듯 바닷가에 누워있는 쿠르디 아일란의 사진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매일 아침 봤던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 주는 동질감...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었던 비극이 이 아이에게 생겼다는 공감이 나를 그리스로 이끌었다. 그 아이의 가족들이, 그 이웃들이 왜 그 바다를 건너야만 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 MBC ‘PD수첩 특집-그리스로 간 시리아 난민’ ⓒMBC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첫 날, 눈에 들어온 것은 해변을 뒤덮은 구명조끼와 고무보트의 잔해들이었다. 그나마 이것들은 무사히 도착한 이들이 버린 흔적이리라. 건너편에 터키 땅이 잡힐 듯 선명히 보였다. 무사히 도착하면 두 시간 이내에 닿을 거리다. 아일란의 가족들처럼 많은 난민이 이 섬을 향해 배를 띄우는 이유였다. 그 사고 이후에도 난민 보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이 섬의 어디로라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 날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드셌다. 가까워 보이지만 바다 한 가운데의 조류와 물살은 훨씬 세다고 했다. 건너오는 고무보트를 찍으러 왔지만, 아무도 건너오지 않길 바랐다. 이미 우리가 도착하기 이틀 전, 5살 여자아이를 포함한 여러 명이 또 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PD의 욕심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작동했다. 해가 질 때까지 뻗치고 있었지만 다행히 고무보트는 한 척도 넘어오지 않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날이 개길 기도하며.

다음날 새벽, 비바람은 걷히고 바다는 차분했다. 이 정도의 날씨면 보트가 건너올 확률이 커진다. 요즘은 그리스 해경이 이들을 제지하지 않기 때문에, 어둠을 틈 탈 필요 없이 낮 시간에 주로 난민선이 들어온다. 바닷가 식당에서 아침을 주문하고 있는데, 현지 어부 한 명이 차를 몰고 지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보트 보여요!” 재빨리 차를 몰고 언덕으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살피니, 점만한 크기의 고무보트가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빽빽이 들어찬 구명조끼의 주황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고무보트 한 척이 더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또 한 척이... 바다가 잠잠해지자마자 난민들이 앞을 다퉈 바닷길에 나선 것이다. 어제 그 비바람을 맞으며 숲속에 숨어 밤을 지새웠을 그들이었다.

▲ MBC ‘PD수첩 특집-그리스로 간 시리아 난민’ ⓒMBC

급하게 해안가로 내달았다. 정식 입항이 아니라서 어디로 들어와 내릴지 알 수 없다. 배가 보이는 방향으로 언덕배기를 달음질쳐 내려갔다. 바닷가에 대기 중이던 자원봉사자가 배를 대기 쉬운 모래사장으로 수신호를 보내자, 보트가 살짝 방향을 틀어 사선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미 난민들이 울리는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해안선을 따라 울려 퍼졌다. 보트가 뭍에 닿자마자 난민들이 쏟아져 내렸다. 30명은 족히 넘을 시리아 사람들... 양쪽 난간에 탄 어른들이 먼저 내리자 배 가운데엔 어린아이와 노인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몸과 몸으로 노약자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 살았다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 기쁨을 주체 못해 취재진에게 손 키스를 날리는 할머니, 아이를 내리자마자 기저귀를 갈아 채우는 엄마, 서로를 껴안고 키스를 나누는 부부까지... 무사히 유럽 영토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이들은 둥글게 둘러선 채 서로를 위해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상기된 얼굴로 다시 주섬주섬 짐과 가족을 챙겨 움직인다. 미틸리니 항구로 걸어가야 한다. 이제부터 또 다른 기다림과 긴 도보 행렬이 시작되겠지만, 이 순간의 벅찬 감정만큼은 온전히 그들 차지였다. 그들은 살아남았으니까.

이 후 이들을 따라 데살로니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국경까지 가보고서야 취재를 마쳤다. 이들의 총 이동 거리에 비하면 3분의 1밖에 안 되는 짧은 동행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 이 사람들의 절박함을 목격한 당사자로서, 제 3세계 난민들에 배타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막연한 거부감이나 혐오가 당신의 공감능력을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난민 관련 기사에 달린 대부분의 댓글들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들을 받아주면 우리가 낸 세금을 그들에게 퍼붓게 되고,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도 빼앗길 거라 성토한다. 정말 그럴까? 2014년 우리 정부가 난민 전용으로 사용한 예산은 17억에 불과하다.

▲ MBC ‘PD수첩 특집-그리스로 간 시리아 난민’ ⓒMBC

OECD 가입국이며, 아시아에서 선도적인 난민수용국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연 17억이 정말 큰돈인가? 또, 우리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정말 동두천 폐차장에서 폐부품 정리하는 일인가? 실업자는 넘쳐도 일할 사람 찾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정말 당신의 자리를 꿰찬 것인가?

갑자기 시리아 사람들을 위해 엄청난 지원에 발 벗고 나서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지금 당장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서 바라봐주길 바랄 뿐이다. 자식을 안전한 곳에서 키우고, 따뜻한 밥 한 끼를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그런 최소한의 행복... 이를 누릴 권리가 우리에게 있듯 그들에게도 있어야 한다는 공감…. 굳이 ‘인류애’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다. 그게 <PD수첩>이 그리스에서 듣고 온 그들의 바람이다.

색안경을 쓰지 말자. 눈을 돌리지도 말자.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쿠르디 아일란이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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