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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자 ‘언론인’, 오늘을 기록하라”

[긴급좌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방송 최영주 기자l승인2015.11.05 1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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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차인 2015년, 이념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한국 근·현대사-대안교과서’, 2013년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 이어 2015년 11월 3일 공식 고시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우경화의 결정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PD연합회(회장 안주식) 주최로 지난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긴급좌담에 참석한 패널들은 하나같이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는 “우파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계획”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국정화 사태는 쉬운 해고로 알려진 ‘노동개혁’, 뉴라이트 인사로 채워진 공영방송 이사회 등 노동계와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연결된 움직임이라고 지적했다.

안주식 한국PD연합회장(KBS PD)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에는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현 KBS 이사),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MBC PD),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국정화저지네트워크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패널들은 좌담을 통해 국정화가 가진 의미는 무엇이며, 국정화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하고, 과연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국정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편집자주>

"역사교과서 국정화, 뉴라이트 세력의 10년 프로젝트 완결판"

안주식: 오늘 좌담은 긴급하게 마련됐다. 어제(3일) 공식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고시됐다. 정말 ‘시일야방성대곡’이 아닐 수 없다. 국정화라는 게 워낙 유신과 연관돼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진행됐다. 한상권 교수께서는 정부가 강력하게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배경에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한상권: 역사라는 학문은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데, 지금 정부는 사실과는 다른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또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인 헌법과도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부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기본적으로 ‘뉴라이트’ 사관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어제 오늘 생긴 게 아니다. 이미 2005년부터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우경화 움직임이 있어왔다. 국정화는 그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다.

2008년 (뉴라이트 세력이) 이른바 '대안교과서'를 만들었을 때(참고: 2008년 5월 26일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축사에서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2011년 한국현대사학회(참고: 교과서포럼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로, 2011년 역사교과서 개정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라는 뉴라이트 역사학회가 창립하고 바로 교육과정 개정 의견서를 교육부에 제출한다. 교육과정을 바꾸는 근거가 마치 학회의 여론 수렴에 근거한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이렇게 교육과정을 바꿔놓고 2013년에 가서는 책을 쓰는데 그게 교학사 교과서다.

이처럼 국정화 문제는 이전부터 차근차근 진행된, 10년 이상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라고 보면 된다. 우익 세력이 느낀 위기의식의 반영된 결과다. 두 차례 민주정부가 수립되면서 과거 정권의 각종 폭력이 폭로되기 시작하고 각종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더 이상 국가주의를 이용할 수 없게 된 거다. 이 같은 속에서 뉴라이트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고, 그 위기의식의 마지막 발로로 오늘날과 같은 강력한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김서중: 정권의 역사 지배 기도 속에 담긴 의도를 보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가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정치적으로 밀린다면 이렇게 밀어붙일 수 없다. 실제로 찬반이 나뉘는 상황에서 반대여론이 훨씬 높다 하더라도 정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언제든지 정치적 국면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힘인 ‘묻지마 지지자’들이다. ‘묻지마 지지자’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논리는 ‘진영논리’다. 국정화 문제도 진영논리로 만들기 가장 좋은 내용이다. 말도 안 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역사교육이 좌편향됐다, 학교에서 김일성 주체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는 등의 사실이 아닌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한다는 것은 묻지마 지지자들을 향한 것이다.

▲ 안주식 한국PD연합회장 ⓒ김성헌

안주식: 이번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와는 결이 다른 거 같다. 그때도 건국절을 추진하긴 했지만 이렇게 합의과정 없이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한 교수님 말씀대로 십여 년 전부터 쭉 이어져 온 과정이긴 하지만 박근혜 정부만의 특징이 보이는 것 같다.

김환균: 박근혜 대통령이 5자회동(10월 22일)에서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이고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기존 역사교과서에 정부 수립에 대한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948년에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을 했고 북한은 ‘국가 수립’을 했다며 대한민국 정통성 문제를 언급한 적(10월 8일 최고위원회의)이 있다.

그래서 헌법 전문을 찾아봤다.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나와 있다.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1948년이 아니라 임시정부수립일인 1919년이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우리 역사를 왜 굳이 끌어내리려는지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논쟁은 ‘좌편향 대 우편향’ 혹은 올바른 교과서냐 아니냐 보다는 명쾌하게 ‘헌법 대 반(反)헌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놀라웠던 게 정부여당에서 ‘자학사관’이라는 말을 쓴다는 거였다. 자학사관은 일본 극우 역사학자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다.

한상권: 맞다. 종전 50주년인 1995년 당시 일본 무라야마 총리가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일본 우익들이 일본은 서구 침략으로부터 동아시아를 지켜냈고 그런 위대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왜 반성해야 하는가, 우리가 유일하게 반성할 것은 전쟁에서 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모두 일본이 덤터기 쓰고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런 논리에서 자학사관이 나왔다. 그걸 정권에서 똑같이 받아들이는 거다.

김환균: 나는 이런 일본 우파들의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쓰는 걸 보고 정말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 ⓒ김성헌

한상권: 정부는 이미 2014년 1월 13일 당정협의회에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때 미국 <뉴욕타임스>가 이미 국정화의 본질을 예견했다. 1월 13일 ‘정치인들과 교과서들(Politicians and Textbooks)’이라는 유명한 사설을 보면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 역사적 상처를 갖고 있다고 표현한다. 아베 총리는 조부가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가 친일과 독재의 경력이 있는데, 두 지도자가 우경화로 가는 근거를 제시했다. 당시 외교부에서 <뉴욕타임스>에 항의하고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써서 <뉴욕타임스>의 사과를 요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4년에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거다.

나는 국정화가 박근혜 대통령의 패착이고 레임덕의 출발이라고 확신한다. 정부가 전혀 계산하지 못한 게 학계가 일치단결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국정화 교과서는 뉴라이트 교과서와 똑같은 비판을 받고 있고, 나오자마자 뉴라이트 교과서처럼 될 거다. 여태까지 국가가 하는 일이 다 성공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본다.

그리고 제일 큰 걸림돌은 헌법하고 맞지 않다는 것이다. 헌법을 위배하면서까지 한다는 건, 헌법을 부정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뉴라이트나 정부의 가장 큰 딜레마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일 거다. 그걸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본다.

▲ 2014년 1월 13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정치인들과 교과서들(Politicians and Textbooks)’이라는 제목의 사설. ⓒ화면캡처

"국정화 사태, 진영논리 아닌 보편적 가치 문제"

안주식: 역사학계가 똘똘 뭉쳐서 대응하는 게 국정화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됐다고 본다. 어떻게 전망하나?

김환균: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언론인의 양심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집행위원회 결정을 통해 오늘자(11월 4일) 일간지 광고 지면에 언론인 시국선언을 냈는데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언론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세월호 이후 현업 언론인들의 가장 큰 호응이다. 이미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국정화반대네트워크에 언론노조도 참여하고 있다. 이건 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는 건 학계지만 이건 전 국민의 문제다. 어제(11월 3일) 국정화가 고시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본다.

안주식: 세월호 때와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등 대중들의 참여가 많았다. 국정화도 이렇게 진척될 수 있을까?

김서중: 광우병 때와 국정화 사태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바로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광우병 전문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듯이 지금은 역사학자들이 함께 하고 있고, 이는 절대 논리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녹록하지 않은 저항력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는 광우병 사태의 경우 공부해도 오늘 학습하고 내일 잊어버릴 정도로 내용이 어려웠는데, 국정화 문제는 광우병 사태보다 쉽다. 거리로 나오지는 않아도 많은 사람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고 본다. 7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광우병에 대한 인식은 희미해졌지만 역사 문제는, 특히 ‘국정화’라는 외형으로 나타난 이 변화는 사람들이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기폭제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국정교과서 초안이 나왔을 때 역사학자들이 확실히 평가하거나 일선 역사 교사들이 국정교과서로 수업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선언했을 때 폭발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한상권: 이전에 유신정권에서 교과서를 국정화 할 때도 남북 분단의 특수한 상황을 들먹였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는 그때의 논리를 똑같이 이용하고 있다. 남북은 분단국가이기에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이 같은 논리에 말려들면 안 되고 보편적 가치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UN(국제연합)은 지난 2013년 역사 교육에 대한 권고를 내렸다.(참고: UN은 2013년 제68차 총회에서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인 파리다 샤히드가 작성한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할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크다’는 역사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UN은 올 3월 베트남 정부에 국정교과서를 폐지하라고 공식적으로 권고했고, 베트남은 이를 받아들여 검정체제로 전환했다. 우리나라도 참여연대가 국정화 전환과 관련해 UN문화권 특별보고관에게 긴급청원을 제출했다. UN에서 국정화가 맞다고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런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용해가면서 이 문제를 압박해 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의 지지선원, UN 권고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돌파해야 한다.

"국정화·언론장악,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계획"

▲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김성헌

김환균: 나는 이번 국정화 고시를 통해 정부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명쾌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위기의식일 수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우파의 집권 환경 조성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 속에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싶다.

국정화 말고 또 다른 예가 노동개악이다. 물론 자본의 손에 노동자의 목숨을 쥐어준다는 문제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판적인 세력이 노조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노사 합의문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핵심은 노조 무력화다. 다시 말해 노동 개악은 비판 세력을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노동 개악을 그대로 밀어붙여 현실화되면 언론은 무너진다. 언론노조에서 성명서를 내면서 제목을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고 달았다. 그동안 언론이 제대로 못하면 노동이 무너진다고 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노사정 야합에 담긴 진짜 속뜻은 비판적인 세력을 제거하고 무력화 하는 것이다.

노사정 야합이 비판세력을 잠재우는 일환이라면, 비판세력을 제거한 후 정권의 목적지를 보여주는 게 국정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따로따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눠서 바라볼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서 바라봐야 한다.

안주식: 김서중 교수께서는 보수・우파의 장기집권 플랜으로 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나?

김서중: 국정화 문제를 단일 사안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미디어법이 개정되고 이후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했다. 이후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장악 등이 있었고 현재는 인터넷에서 밀리고 있다고 판단한 정부가 인터넷 장악을 위한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언론중재법 개정이다. 언론중재위원회 업무 영역에 ‘댓글 삭제’까지 넣으려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결국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을 지배하려는 의지다.

또한 신문법 시행령 개정에 따르면 기자 5명이 넘지 않으면 인터넷 신문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이것은 일정한 재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언론을 운영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재력을 가진 사람이 언론을 운영하면 사이비 언론이 되지 않나? 일반적 대중의 착각이고, 이걸 적절히 이용하는 거다. 정부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 목표로 ‘어뷰징(동일 뉴스콘텐츠 중복 전송)과 유사언론행위 해소’를 말했는데, 실제로 뉴스 어뷰징을 하는 곳은 일정한 재력이 있는 큰 언론사다.

일반적인 정서에서 볼 때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도 안 되는 곳에 연결시켜서 정권의 의도대로 관철하려 하는 것이다. 역사교과서를 ‘좌편향’됐다고 규정하면서 국정화하려는 것처럼 언론부분에서도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다. 결국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불렸던 ‘의식의 지배’를 해나가기 위한, 역사 인식을 지배하기 위한 시도가 국정화로 나타난 거라고 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 환경과 연결된 문제

▲ 한상권 교수(왼쪽)과 김서중 교수 ⓒ김성헌

안주식: 사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방송하고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드라이브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도 있고 국정교과서 사건 자체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 각 공영방송 이사 선임 구성만 봐도 그렇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뉴라이트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

김서중: 뉴라이트 인사를 대거 공영방송 이사에 선임한 것은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화 문제는 역사 인식 문제만이 아니라 결국 전체 국민의 인식을 지배하겠다는 데 목적이 있고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 예전보다 매체 영향력 등이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강력한 매체임에는 틀림없다. 공영방송에서 생산된 콘텐츠가 최소한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서 벗어나는 걸 용인하지 못하거나, 뉴라이트적 인식을 생산할 수 있는 제작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정화 문제는 언론 종사자들이 우리에게 닥칠 혹은 이미 닥친 문제라는 연결된 인식이 필요하다.

안주식: 최근 KBS의 상황만 봐도 <뿌리깊은 미래> 후유증으로 당분간 PD 스스로가 현대사를 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남침’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중징계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참고: 광복 70주년 특별다큐멘터리 KBS <뿌리깊은 미래>(2월 7일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방송이 정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한국전쟁을 다룰 때 ‘남침’이라는 표현을 빠뜨리는 등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지 않아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1항과 제14조(객관성)을 위반했다며 법정제재인 ‘경고’(벌점 2점) 조치를 결정했다) MBC의 상황은 어떤가?

김환균: MBC는 역사 프로그램을 할 기반조차 없애 버렸다. 지난해 교양국을 해체하면서 PD들을 흩어놓았다. 일단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 사실 KBS나 MBC의 현대사 프로그램은 역사는 단순히 옛날이야기라는 데서 벗어나게 해줬다. 바로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 미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는 MBC도 당분간 현대사를 다루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서중: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듣기에는 무책임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안에서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관행이 된다.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이 관성적으로 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시도는 계속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걸 걸 문제까지는 아니고, 다른 형태의 내공을 쌓는 게 필요하다. 이 두 가지 공존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걱정되는 건 2018년을 건국 70년이라고 전제하고, 공영방송 특히 KBS는 당연하게 생각할 거 같다. 건국을 그들 말대로 올바른 역사라 하면 1919년부터 가는 게 자학적이지 않은 역사관이다. 그리고 사실에 맞고 진실인데, 그걸 부정하는 형태로 갈 것 같다.

▲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김성헌

김환균: 지금 상태로 보면 방송계에 기대할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이 무너진 지 오래다. 내부에서 노조가 중심이 되어 문제제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상당히 힘든 국면인 건 사실이다.

MBC의 경우 직종을 없앴다. 이 의도가 결국 ‘부당전보’의 개념 자체를 없애려는 거 같다. 그동안 MBC에서 해고, 부당전보가 계속되어 왔는데 관련 소송에서 사측은 패소를 거듭했다. 직종을 폐지해 MBC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하려는 거 같다. 이런 국면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힘겨운 건 사실이다.

언론의 생존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지역언론의 경우는 적은 인력과 과도한 근무로 인해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없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인들이 마지막 양심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 일깨우는 게 언론노조가 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론인, ‘사관’의 정신으로 임해야"

안주식: 한상권 교수께 직접적으로 묻고 싶다. 방송사 간부들이 특정 사관을 강요하며 현대사를 다루라고 PD들을 압박할 경우, 현업 PD들이 이런 걸 뚫고 현대사를 다루는 게 맞을까, 아니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현대사를 다루는 걸 미뤄두는 게 맞을까?

한상권: 제작하는 사람이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자기검열을 하게 되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기계적으로 하게 되고 그렇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전략적으로 시기적으로 안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렇다면 역사를 다룰 때 PD들이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가. 조선시대 언론이라 할 수 있는 ‘사관(史官)’에게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었다. ‘순지거부(順志拒否)’. 임금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두 번째 원칙은 ‘양시양비배격(兩是兩非排擊)’이다. 분명히 자기 입장을 밝힌다. 그리고 ‘삼간불청즉거(三諫不聽卽去)’라고 해서 세 번 직언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직을) 떠난다는 게 세 번째 원칙이다. 그 다음 원칙이 ‘지부극간(持斧極諫)’으로 자기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정론을 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다섯 번째로 폭넓게 의견을 들어서 쓴다는 ‘광개언로(廣開言路)’다. 이게 조선시대 사관의 다섯 원칙이다.

조선시대에 사관이 선출되면 종이를 태워 하늘에 고한다. 사관은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임금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게 사관이다. 사관은 보편적 진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고 임금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보편적 진리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람은 도덕적 권위, 학문적 권위를 더 높에 여겼기에 사관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사관과 같은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각오가 있거나, 혹은 모든 것을 걸 만한 가치 있는 주제라 생각하기 전에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김서중: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건 ‘전문성’이다. 기획안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빌미를 줄만한 게 거의 없어야 한다.

안주식: 마지막으로 현업 방송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달라.

한상권: 방송하는 분들은 현재의 ‘사관’이다. 사관으로서 자기검열을 하면 안 된다. 조선시대 사관처럼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했을 때 기록이 빛나는 거다. 물 타기를 한다든지 하면 기록의 의미가 없다. 선조들이 사관으로서 원칙을 지켰기에 기록이 빛나는 것이다. 사관으로서의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엄혹한 시기이기에 더욱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저 어려운 시기에도 올바른 기록을 남겼다고 하면 훗날 후배들도 존경하고 그것이 하나의 전통이 될 거라고 본다. 엄혹한 시기일수록 자기 양심과 입장을 견지하는 건 더 빛나는 법이다.

사관으로서 내가 역사를 기록한다는 생각을 갖고 임해줬으면 한다. 윤동주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하늘의 뜻을 언론인이 실현한다고 생각하면 떳떳하지 않겠나.

김서중: 나는 일단 ‘언론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자기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백번 반복해도 부족할 정도로 엄혹한 시기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올바른 인식을 가진 언론인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언론인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취재 대상으로만 보고 진짜 어떤 ‘현실’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자, PD들끼리 모여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언론인들이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를 많이 갖도록 하는 게 언론노조나 언론사 내 직능단체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역사학자들이 느끼는 감정과 언론인이 느끼는 감정은 똑같아야 한다. 역사는 사실인데 역사학자들은 이 사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느낀 거다. 나는 역사를 다른 말로 ‘기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록은 언론인의 사명이다. 언론인들이 이번 사태가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안주식: 언론과 언론인의 원칙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같다. 엄혹한 시기에 현업 PD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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