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안전과 취재 자유 지키겠다 나선 언론인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재방해감시단 발족 기자회견 현장]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언론노조의 (실내) 기자회견에 이렇게 많은 카메라 기자들이 모인 건 처음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요.” 진행을 맡은 언론노조 관계자의 말에 기자회견 참석자들도, 취재하던 기자들도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짧은 웃음이 잦아들고 진행자는 덧붙였다. “취재방해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이라 확실히 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달 5일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두고 1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취재방해감시단’(이하 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은 이렇게 시작했다.

‘필요없던’ 취재방해감시단을 조직하는 현실

사실 그랬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이들도, 그리고 취재하는 이들도 특별히 웃길 것 없는 진행자의 말에 웃음을 터트릴 만큼, 이날 기자회견의 풍경은 평범했지만 낯설었다. ‘현장’의 취재를 담당하던 이들이 ‘취재방해’ 행위를 감시하겠다며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다니, 흔한 모습은 아니다. 감시단 단장을 맡은 손관수 방송기자연합회 회장(KBS 기자)조차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취재방해감시단은 필요 없는 조직이었다. 대한민국이 (작금의) 난국 속에서 정말 소모적인 일들에 공력을 소비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일이다. 감시단이 있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정상 아닌가.”

▲ 1일 오후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가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취재방해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단장조차 그동안은 “필요 없는” 조직이라고 표현한 감시단은 지난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당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취재진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직사하며 ‘진압’에 나선 데 이어, 오는 5일 예정된 집회를 ‘불허’하고 과거의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체포조를 투입해 “싹쓸이 검거”(12월 1일 <한겨레> 1면 기사 제목 인용)하려는 태세를 보이고 있어 ‘불가피하게’ 탄생하게 됐다는 게 언론노조 등의 설명이다.

“11월 14일 열린 집회에서 경찰은 취재를 하던 언론인들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일례로) KBS 카메라 기자의 경우 (취재진 식별이 가능한) 방송 카메라를 들고 유니폼까지 입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KBS 카메라 기자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했다. 취재하던 언론인들에게 그럴 정도면 일반 시민에겐 오죽했을까. 농민 백남기씨 사고는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김환균 위원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이 바로 언론이다. (경찰이) 취재진을 공격하는 건 민주주의의 심장을 쏘는 일로, 취재진이 공격을 받는 상황만큼이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취약해졌다”고 지적하며 “감시단을 구성해 취재진을 보호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를, 민주주의를, 집회‧시위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취지와 맥락에서 감시단은 보호의 대상으로 ‘취재진’만을 설정하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와 같은 층위에서 집회‧시위의, 표현의 자유가 있는 집회 참가 시민들에 대한 인권 탄압과 침해 사례 모두 감시‧기록한다는 방침이다. 감시단은 이 기록을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 이후 보고서로 발표하고, 집시법 등 관련 법률과 제도의 개선 방향을 찾는 일에도 참고할 예정이다. 또한 감시단은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에 앞서 집회 현장을 지휘할 경찰 측과의 면담을 통해 활동계획을 통보하고 협조도 함께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감시단 발족에 참여한 현업 언론인으로부터 이런 면구함의 표현도 등장했다. “감시단을 구성하면서 드는 안타까움은 이런 거다. 언론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의 권리가 제대로 확보되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이행되고 있는지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시단을 구성하는 자체가, 제대로 일(보도)을 못하는 상황에서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만 하는 모양처럼 보일 수 있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할 수밖에 없는 건 언론의, 취재의 자유는 시민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밑거름이라는 점이다.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주장과 요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의 노력의 일환으로 봐 달라.” (손관수 한국방송기자연합회장)

감시단에 참여하고 있는 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사무처장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와 이후 집회 참가자들의 불법‧폭력을 부각하는 언론 보도를 감시했고, 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도 “언론민주화의 한 축은 자유로운 취재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에 감시단에 활동가들, 그리고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며 경찰의 취재방해를 감시하는 행위 역시 작금의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보도’이자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언론노조와 현업 언론인단체들이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취재 방해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당시 경찰은 카메라와 취재용 사다리, 소속 매체가 표시된 겉옷을 입고 있는 취재진의 머리를 겨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 취재 방해 행위를 했다. ⓒ언론노조

모든 언론의 취재의 자유 보장, 저널리즘 복원 위한 또 하나의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가 함께 취재방해감시단까지 구성해 공권력의 취재방해 행위를 감시한 후의 결과물, 다시 말해 언론 보도가 어떤 모양일지는 확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시민들과 함께 취재의 자유를 지켜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결과물의 균형성은 자신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질문에 김환균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지 않은 것 같던 언론이 (앞으로) 그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지 궁금한 건 당연하고 (그 결과에 대한) 비판도 있을 거라고 본다. 그 비판은 달게 받겠다. 그렇지만 현장의 모든 기자들이 ‘기레기’이고 싶은 건 아니다. 그 구조를 바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내용까지 바꾸기 위한 활동, 저널리즘의 복원을 위한 활동에 손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기자회견 종료 후 감시단의 부단장을 맡은 최성진 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말을 보탰다. “5일 현장에서 설사 (경찰의) 물대포가 종편의 취재진을 향하며 취재방해 행위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감시단은 그들을 위한 보호 활동을 당연히 한다. 중요한 건 언론의,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언론의, 표현의, 집회‧결사의 자유는 누군가에게만 선별해 부여하는 게 아니다. 결국 취재방해감시단이라는 유례없는 조직은 이 ‘기본권’의 문제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발족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사진 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취재방해감시단’ 참여 단체 관계자들이 이달 5일 예정된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착용할 유니폼과 모자를 선보이고 있다. ⓒ언론노조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