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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의 의미 일깨워준 ‘길태미’ 다시 없을 캐릭터”

[인터뷰] SBS ‘육룡이 나르샤’ 분장팀 강희웅 실장 최영주 기자l승인2015.12.03 1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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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박혁권 분). ⓒSBS

“사실 일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고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길태미라는 캐릭터를 하면서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분장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길태미 캐릭터에게 무척 고마워요.”(SBS <육룡이 나르샤> 분장팀 강희웅 실장)

독특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에 시청자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의 퇴장을 누구보다 아쉬워하고 있다. 배우 박혁권 씨가 맡은 삼한 제일검이자 고려의 권력을 틀어쥔 도당 3인방 중 하나인 SBS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 파랑과 보라, 자줏빛 화려한 색과 길고 날카롭게 이어진 아이라인. ‘길태미 메이크업 따라잡기’까지 나올 정도로 <육룡이 나르샤> 속 분장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길태미’라는 독특하면서도 이중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한 <육룡이 나르샤> 분장팀 강희웅 실장은 이번 드라마, 그리고 길태미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해 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내내 이리저리 불려다닐 정도로 바쁜 그였지만, 눈빛은 즐겁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성 캐릭터에 ‘색’을 입힌 강희웅 실장을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SBS탄현제작센터 내 카페에서 만나 길태미와 <육룡이 나르셔>의 분장에 얽힌 사연을 들어봤다.

‘최고 아니면 최초가 되라’는 조언에서 시작한 ‘길태미 메이크업’

▲ SBS <육룡이 나르샤> 분장팀 강희웅 실장. ⓒPD저널

강 실장은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설고 쑥스럽다고 했다. 촬영 중간중간 자신을 찾는 전화가 오는 것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특별히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적은 처음이에요. <돈의 화신>(2013년) 때 황정음씨 뚱보 분장할 때 관심을 가져주긴 했지만 그건 특수분장팀과 같이 했고 또 제가 한 것보다 특수분장팀에서 더 많이 했어요. 지금처럼 이슈가 된 건 처음이에요. 일을 못할 정도로 계속 전화가 오기도 했어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웃음)

1994년 SBS에 입사한 강 실장의 첫 작품은 사극 <임꺽정>(1996년)이었다. <여인천하>(2001년), <연개소문>(2006년) 등 초반에 사극을 제법 했으나 이후에는 <카인과 아벨>(2009년), <자이언트>(2010년), <하이드 지킬 나>(2015년) 등 현대물을 주로 했다. 강 실장이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다시 사극으로 돌아온 건 무려 8년 만이다. 모처럼만에 하는 사극에 강 실장도 힘들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슬럼프’를 겪던 중이었다. 사극은 장르적 특성상 수염, 상투 등 분장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제한돼 있다. 그러나 감독과 작가는 차별화된 캐릭터를 요구했다.

그 정점에 있는 게 ‘길태미’다. 치장을 좋아하고 말투도 제법 여성스럽다. 그러면서도 삼한제일검으로 불리는 무사이기도 하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그리고 그 안에 잔혹함까지 갖춘 복합적인 캐릭터다. 강 실장은 “길태미의 화장은 자기의 권력욕이나 야욕, 무사로서의 잔혹함 등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 극본에는 길태미가 손톱 손질을 한다거나 귀걸이를 차는 등 치장을 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러나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설정은 없었다. 결국 길태미의 화려한 화장은 강 실장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삼국시대 화랑들이 전쟁에 나갈 때 화장을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길태미 분장은 외국사이트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강 실장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면서도 사극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 지난 1일 방송된 SBS <육룡이 나르샤> 속 길태미의 마지막 모습. 길태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파란색 눈화장이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되어 있다. ⓒ화면캡처

“사실 사극에서 여자들도 제한된 컬러만 쓰는데, 더군다나 남자 캐릭터에 컬러를 입힐 수 있을까 고민은 했죠. 그때 후배 한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최고 아니면 최초가 되라’고 말이죠. 과감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고 회의를 거쳐 지금의 길태미가 나오게 된 거죠. 이후 화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첫 촬영 날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분장’은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보조적 수단이어서 너무 도드라지면 안 되거든요. 결과적으로 박혁권 씨가 훌륭하게 잘 표현해줘서 사랑받는 캐릭터로 재탄생했어요. 전 방송 나가기 전에 정말 돌 맞을 줄 알았거든요.”(웃음)

검정과 갈색 등 어두운 계열의 색으로 음영을 주거나 눈매를 강조하는 정도의 화장은 있었지만 눈에 도드라지도록 파랑과 보라색, 자줏빛 등의 색을 강렬하게 표현한 적은 드물었다.

그래서 처음 길태미의 화장도 색이 연했다. 그러나 여성과 달리 남성은 색을 약하게 할 경우 표현도 잘 안 되고 색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서 진한 색을 선택하게 됐다는 게 강 실장의 설명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볼 수 없어서 자신의 얼굴에 수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처음에는 진한 색이 부담스럽기도 해서 재촬영을 하기도 했다. 강 실장은 수정과 재촬영을 거듭하며 길태미를 완성해 나갔다. 이후 길태미의 상징처럼 된 파란색, 그리고 보라색과 와인색, 녹색 등을 캐릭터의 심리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를 주며 사용했다. 마지막 길태미가 죽는 장면은 가장 사랑받은 색인 ‘파란색’을 사용해 더욱 공들여 분장을 했다.

▲ SBS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박혁권 분) 분장에 쓰인 도구들. 파스텔톤 계열의 색보다 강렬하고 진한 색감의 파란색, 보라색 등의 아이섀도우가 주로 쓰였다. ⓒPD저널

보통 길태미 분장에만 대략 2~3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보다 길태미 역의 박혁권씨와 가까워졌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박혁권씨가 강 실장에게 ‘길태미 메이크업’을 해주는 사진이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SBS에서 창사 25주년을 맞이해 주최한 이벤트 ‘동료들과의 인증샷’ 참가 인증 사진이었다. 기본적으로 분장팀이 강 실장의 얼굴의 분장을 하고 박혁권씨가 거들었다고 한다. 1등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3등을 했다. 이처럼 촬영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떠나보내는 강 실장의 마음도 아쉽기만 하다.

“처음에는 화려한 분장에 혁권씨가 많이 부끄러워 했어요. 저도 혁권씨와는 처음 작업 하는데, 분장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마지막 촬영을 하면서 많이 아쉽더라구요. 20년 동안 분장을 하면서 가장 쇼킹하고 흥미로운 캐릭터였던 만큼 길태미를 보내는 것도 아쉬웠어요.”

▲ 이전에도 영화나 드라마 등 사극에서 화장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나 직업 등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영화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 분), SBS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천(최민수 분), MBC 드라마 <주몽>의 사용(배수빈), <무사 백동수> 사도세자(오만석). ⓒ화면캡처

사극 분장, 고증과 드라마 사이 간극 메우는 게 숙제

길태미의 분장이 워낙 도드라져서 화제가 됐지만, 사실 사극에서 분장은 현대극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분장은 캐릭터의 성격, 직업, 심리 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극에서는 수염의 모양, 수염의 양, 머리모양 등에 따라 인물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간신 캐릭터는 수염의 양도 적고 그 두께도 얇다.

사극에서도 색조 화장을 많이 한다. 남자들도 눈에 음영을 주기 위해 검정, 갈색 등 어두운 계열의 색으로 섀딩(쉐이딩, 그림자를 뜻하는 섀도우(Shadow)에서 파생된 말로 메이크업시 얼굴에서 어두워야 할 부분을 강조하는 것)을 한다. 다른 때는 그러한 화장이 눈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색’을 강조하며 두드러지게 된 거다.

길태미 외에도 홍인방(전노민 분), 적룡스님(한상진 분)의 분장도 눈에 띈다. 적룡의 경우 캐릭터 자체가 신비한 캐릭터라 분장이 도드라지고 홍인방 역시 점점 캐릭터가 변화하며 눈화장도 진해지고 있다.

▲ SBS <육룡이 나르샤> 분장팀 강희웅 실장이 자신의 손에 길태미 분장에 쓰였던 아이섀도우 조합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PD저널

이렇게 사극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분장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분장을 하게 되면 일각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할 때도 있다. 강 실장도 사료와 드라마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사극 분장의 숙제라고 말했다.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역사적 사실과 고증은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동시에 고증에 억매이게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카메라나 TV 화질도 점점 고화질이 되고, 사람들도 워낙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것들을 접하면서 눈이 높아졌죠. 우리도 사극을 할 때마다 사료 조사를 해요. 고증도 최대한 신경 쓰고요. 그렇지만 사극은 기본적으로 ‘드라마’인만큼 고증과 드라마적 분장을 적절하게 믹스할 수밖에 없어요. <육룡이 나르샤>는 퓨전 느낌이 강한 사극이라 다른 사극보다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렇기에 길태미가 탄생할 수 있었어요.”

이처럼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장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강 실장은 “분장은 거들 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돋보여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이자 연기자의 ‘연기’이고, 의상이나 분장이 연기보다 먼저 눈에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강 실장은 “분장은 연기자가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 보조적 수단이고 연기할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며 “연기자가 연기로 표현하는 캐릭터도 있지만 눈으로 보여지는 것들, 수염, 머리스타일, 화장 등을 통해서 연기자가 조금 더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분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강 실장이 생각하는 분장의 ‘정의’다.

▲ SBS에서 창사 25주년을 맞이해 주최한 ‘동료들과의 인증샷’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는 분장팀과 배우 박혁권씨. 박혁권씨가 강희웅 실장에게 '길태미 메이크업'을 해주고 있다. ⓒ가족액터스

그동안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분장은 드라마 속에서 연기자의 연기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만 연기자와 연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에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는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화려하고 강렬한 화장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면서도 동시에 길태미라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로 연기 속에 녹여내며 분장만이 도드라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와 캐릭터, 분장의 조화를 통해 길태미는 새로운 캐릭터가 됐다.

그런 점에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 길태미를 연기한 박혁권씨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강 실장은 인터뷰 마지막에서도 박혁권씨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혁권씨한테 고마워요. 분장이 과하게 느껴지지 않게끔 연기를 무척 잘 해줘서 저도 살고 드라마도 재밌어졌죠. 아마 앞으로도 길태미 같은 캐릭터는 또 없을 거 같아요. 쳐져 있던 제 마음을 다시 다잡고 내가 하는 일이 드러나진 않지만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길태미’에게도 고마워요.”(웃음)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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