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세계 다큐멘터리에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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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5광저우 국제다큐페스티벌 심사를 하다

올해 광저우는 노동자들을 주목했다.

지난 10일 폐막된 ‘2015 광저우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이하 2015 GZDOC)의 대상은 <나의 시>(我的诗篇,The Verse of Us)에게 돌아갔다. 이 작품은 인터넷을 통해 찾아낸 노동자들과 그들이 쓴 시를 통해 세계의 공장, 중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애플스마트폰 생산라인의 노동자, 지게차 기사, 발파공, 의류공장 여공, 소수민족 노동자, 800미터 막장의 광부 등 6명의 노동자가 총 99분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물론 중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들의 뼈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조건 감추고 미화의 대상이었던 중국 노동자들의 삶이 제법 진지하게 전개된다. 실제로 주인공 중 한 명은 취재기간 도중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팍팍한 현실과 삶은 직접적인 표현보다, 시라는 문학적 형식을 통해 보다 세련되게 전개되었고, 아마 이것이 중국 정부의 검열을 통과한 이유일 것이다.

▲ 2015 광저우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대상은 <나의 시>.

본선에 오른 50편 중에는 <나의 시> 외에도 <공장 이야기>(工厂故事,The Factory Story)와 CCTV에서 제작한 <트럭을 운전하는 예술가>(开卡车的艺术家, The Truck and the Paintbrush) 역시 하층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공장이야기>는 중국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제조업 현장에 몰고 온 변화를 광둥성의 한 내의공장 노동자들을 통해 드러냈다. “트럭을 모는 예술가”는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면서 한편으로는 화가의 꿈을 품고 있는 공자의 후손 쿵룽전(孔龙震)의 얘기이다.

4년 전인 2011년에도 광저우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는데 중국 정부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본선에 이러한 노동자들의 얘기들이 본선에 올라오는 것이 그 사이의 변화라면 변화라 할 수 있다.

본선 대상작 이외에 심사위원들의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은 최우수 연출상 수상작인<아직 여기 있는 것 같은데, 이미 가버렸네>(Still Here Already There)이다. 독일 여성감독인 로스비타 지글러(Roswitha Ziegler)의 작품으로서 남편의 암투병 과정을 3년 반 동안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이자 남편이 최후 사망하는 순간까지 비교적 담담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으며, 다큐 감독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다. 특히 이번 2015 GZDOC 기간 중에 '시간이 서술하는 힘'(时间叙事的力量)이란 주제로 열린 포럼 중에 장기관찰 다큐로서 이 작품이 거론되기도 했다.

조직위 자료에 의하면 2015 GZDOC의 경쟁부문 본선에만 모두 1902편이 신청했다. 이 중 1차 예심을 통해 249편이 걸러지고, 2차 예심은 모두 50작품이 통과해 최종 본선에 올라왔다. 이 중에는 순수한 중국작품이 26편, 국제 공동제작이 5편, 그 외 11개 국가에서 제작한 19개 작품이 들어있다.

CCTV부사장인 가오펑(高峰)을 심사위원장으로 한 중국측 심사위원 4명, 여기에 영국 BBC출신의 스튜어트 빈스(Stewart Binns), 독일 ARD의 클라우디아 슈라이너(Claudia Schreiner), 그리고 필자 이렇게 세 명이 참가해 모두 7명의 심사위원이 4일 동안 주말도 없이 50편의 작품을 모두 보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시사 후 심사위원들은 1차 토론을 하고, 투표를 통해서 대상, 작품상을 비롯한 각 부분 수상후보와 수상작을 선정했다. 투표에서 동수가 나와 재투표까지 가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총 13개 부문, 17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대상인 <나의 시>를 비롯해 최우수 작품상도 중국 작품인 “제3극”(第三极,Roof of the World)이 차지하는 등 대체적으로 중국이 강세를 보였고, 해외작품 중에는 한국, 독일, 베트남 작품이 수상작에 포함됐다.

▲ KBS '색, 네 개의 욕망' ⓒKBS

한국 작품으로는 KBS의 <색, 네 개의 욕망: 블루>(연출: 김한석, 김종석, 이성범)이 대상 최종 후보 3편에 들었고, 최우수 촬영상 수상, 그리고 최우수연출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심사 당시 모든 심사위원들이 호평을 아끼지 않았고 대상후보에도 올랐지만, 너무나도 화려한 영상이 대상인 그랑프리를 받기에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색, 네 개의 욕망: 파랑> 이외에도 한국 작품으로서 이승준 감독의 <달에 부는 바람>이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본선에 오른 두 작품 모두 성과를 거두어, 4년 전에 한국작품이 본선에 하나도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심사위원으로서 뿌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정부기관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 주최하는 중국 유일한 다큐 전문 국제페스티벌로서 GZDOC는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03년 14개 국가, 100여 작품으로 시작했던 GZDOC는 올해에는 총 88개국 3612편의 작품이 본선경쟁부문을 포함해서 마켓, 피칭, 스크리닝 등에 참가했고, 제작자와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는 포럼이 날마다 이어졌다. 이와 함께 CCTV의 다큐채널과 과학교육채널, 상하이 SMG다큐채널을 비롯한 중국의 유수한 방송사, 제작사, 배급사 등이 모두 참가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공공외교의 강화와 대외이미지 개선 및 문화적 역량의 확산을 위해 다큐를 주요한 홍보수단으로 보고,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10년이 넘은 GZDOC외에도 최근 4~5년 사이 일부 지방정부에서 다큐 페스티벌을 시작하거나 준비 중이다. CCTV는 지난 2011년 기존 과학·교육채널과 별도로 다큐 전문채널을 신설했고, 영문 다큐채널까지 따로 운영 중이다. 이후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상하이 SMG에서도 다큐 전문 채널을 만들었고, 오락 프로그램의 선두주자인 후난방송도 2015 GZDOC 기간 중에 새로운 다큐 채널을 론칭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원 하에 중국 방송사, 제작사 들이 진행하고 있는 다큐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인해 대형 작품이 속출하고 있고, <동방주전장>(东方主战场, The Oriental Battlefield),<하서주랑>(河西走廊, Hexi Corridor), <제3극>(第三极,Roof of the World) 등을 비롯한 대작들이 2015 GZDOC에 선보였다.

이와 함께 본선에 오른 작품 중에는 <죄와 참회: 일본과 독일>(罪行与忏悔:日本与德国, China’s Schindlers),<면화>(棉花,Cotton)와 같은 중·외 공동제작 작품도 3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국을 주축으로한 공동제작 또한 2015 GZDOC에서 감지되는 새로운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BBC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서구의 유수 메이저 다큐제작사들은 앞다투어 중국 측과 공동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영국의 스튜어트 빈스(Stewart Binns)가 토로했듯이 BBC마저도 다큐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국 측 관계자의 말대로 전세계적으로 중국 만이 다큐에 대한 판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미국의 유럽의 메이저 다큐 제작사들이 활발하게 뛰어들고 있고, 한국 또한 지상파 방송사를 주축으로 중국과 공동제작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류를 통해 많은 프로그램의 교류 및 비즈니스가 이루어 지고 있는 드라마와 예능 분야에 비해선 아직 다큐에서는 좀 더 규모와 외연의 확대에 대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역사이래 북방의 중앙 정권에 대한 반골기질이 강했던 광저우, 치욕적인 아편전쟁 이후 가장 먼저 유럽인의 손에 의해 개방되었고, 70년대 후반 시작된 개혁개방의 핵심 경제특구 또한 선전, 주하이, 산터우 등 광둥성의 도시들이었다. 광저우가 성도인 광둥성의 GDP가 몇 년 안에 한국의 GDP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 역사의 영욕이 교차하는 광저우가 지금 세계의 다큐인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 2015 광저우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대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색, 네 개의 욕망 – 블루'의 김한석 PD(오른쪽)와 필자인 박진범 PD(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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