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육아가 여성만의 전쟁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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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서 TV보기] 'SBS스페셜-신년특집 엄마의 전쟁'

희생하지 않아도 평등한 관계? 왜 상상하지 못할까

다큐멘터리는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재하는 이들을 카메라로 포착해 보여주기 때문에 그것이 곧 객관적 현실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구조화된 목소리이다. 다큐멘터리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 하나에도 제작진의 입장이 들어간다. 같은 장면이라도 슬픈 음악이 깔리느냐 무서운 음악이 깔리느냐에 따라 보는 이의 감정은 다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윤리적 성찰이 더욱 날카롭게 요구될 뿐만 아니라 ‘잘 말해야’ 한다.

<SBS스페셜>은 ‘본격 다큐멘터리’를 표방하고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본격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신년 특집으로 제작한 ‘엄마의 전쟁’ 3부작 중 1부가 방영되면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부는 ‘엄마’로서 양육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는 워킹맘 두 명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2부까지 방영된 상황에서 제목인 ‘엄마의 전쟁’은 양육과 가사노동의 책임을 오롯이 짊어진 채 일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의미하는 듯하다.

▲ SBS 'SBS스페셜-엄마의 전쟁' ⓒSBS

1부는 자식들의 대리맞선까지 보고, 자식들이 다니는 회사에 시시콜콜한 이유로 전화를 해 간섭을 해대는 어머니들의 사례로 시작한다. 그리고 뒤 이은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성취 욕구를 누른 채 가정 안에 갇혀서 육아에 모든 것을 올인하게 되는 여성들의 상황이 이러한 현실을 낳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시청자는 배울 만큼 배우고 능력도 있으며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여성들이 왜 가정 안에 갇히게 되는가에 대한 심층 탐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적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배치되는 두 사례는 이 흐름을 깨버린다. 1부를 시청한 여성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낸 것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사회구조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았던 이 다큐멘터리가 결국 육아가 여성의 일이고, 아이들은 엄마의 부재로 괴로워하며, 여성들이 엄마의 역할 대신 사회적 성취를 선택하려는 마음이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강조하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전쟁’은 자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막은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와 중립을 가장한 서술자의 위치이며, 따라서 객관적 권위를 더욱 가지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막을 통해 심지어 어린 아이의 심중을 대변해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처럼 쓰는 자막은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왜 그렇게 엄마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맥락은 삭제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도.

자막 중에는 남편이 휴일에 ‘독박육아’를 한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독박육아’는 가치판단이 들어간 단어이다. ‘엄마의 전쟁’은 남편이 거의 매일 야근을 해서 저녁시간에 양육과 가사를 전담하는 아내에게 ‘독박육아’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또한 제작진은 육아냐 일이냐를 놓고 여성에게는 어머니가 될 것인지 여자가 될 것인지를 따져 물었지만 남성에게는 아버지가 될 것인지 남자가 될 것인지 묻지 않는다. 애초에 여성에게는 ‘육아는 여성의 일’을 전제하고 제한된 선택지만을 가정한 채 질문을 던진다. 남성은 육아의 보조자이지 결코 주체로 표현되지 않는다.

▲ SBS 'SBS스페셜- 엄마의 전쟁' ⓒSBS

1월 10일에 방송된 2부에서는 1부의 흐름과 달리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네덜란드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함을 짚는다. 한국 현실을 겪고 네덜란드로 떠난 두 가족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것은 꽤 효과적이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그 중 한 남편에게 “불만이 되게 많으신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기는 남자가 희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말을 이끌어낸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양육의 책임을 나누고 노동할 권리를 누리는 것이 “남자의 희생”이라니. 애초에 제작진에게 ‘평등한 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분석을 하고 충분한 근거를 들어 논리적인 전개를 하고 있는가가 하나의 평가기준이 될 것이다. ‘엄마의 전쟁’의 경우 반전드라마를 찍는 것도 아닌데 1편으로 논란을 만들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1편과 2편의 구성 사이의 간극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2편도 네덜란드의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에피소드들은 결국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너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산만하게 다루면서 결국 어느 얘기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여성의 경력단절은 굉장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엄마의 전쟁’ 2부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객관적인 수치들이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너무 표피에서만 머무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다큐멘터리, 특히 지상파 방송에서 본격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내걸었을 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감이다.

앞으로 방송될 3부는 종갓집 며느리로 육아와 가사노동에 더해 생업까지 전담하다시피 하는 여성의 삶을 그이의 ‘한량’ 남편이 함께 체험하는 실험을 보여줄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과연 상대의 입장에 서보기가 성차별적인 현실을 극복할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2부에서 방송된 “남자가 희생하는 구조”라는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이 남성은 네덜란드에 가서 다른 시스템을 경험하고도 평등에 대한 관점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상대가 힘들구나를 아는 것만으로 바뀔까. 힘든 걸 몰라서 안한 것일까. 안 해도 되니까 안하는 거다. 그게 바로 성차별적인 권력구조의 견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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