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앞에 질문할 권리를 반납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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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열연하는 조연으로 전락한 언론, 쪼그라든 저널리즘의 권위

언론의, 기자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기자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권위라는 표현까지 동원할까 냉소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냉소하고픈 마음을 잠시 미뤄두고 생각하면 기자라는 이름엔 권위가 실려 있는 게 사실이다.

권위란 무엇일까.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이라는 의미의 단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라는 대목에서 또 한 번 ‘역시나 기자에게 무슨 권위가 있겠어'라며 냉소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 오지만, 어쨌든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를 (아직까진) 부인할 수 없으니 권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자의 권위는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질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스스로도, 사회적으로도 좀 더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세상에 질문할 권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밤이든 새벽이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자연스레 스스로 인식하고 상대 또한 (욕을 할 수도, 답을 않을 수도 있지만)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을 직업은 많지 않다. 이런 권한이 인정되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기자가 하는 질문은 기자 개인의 궁금증 해소가 아닌 공공을 위한,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거짓말을 하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진실 추구의 과정이라고 사회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제든 누구에게나 당연스레 질문할 수 있는 건 독립적으로 공정과 객관의 가치를 지키는 저널리즘의 의미를 담보로 기자(언론인)가 부여받은 ‘특권’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뉴스1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세 번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년에 단 한 번만 기자회견을 하는 대통령의 불통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세계의 민주화 된 국가들의 다른 정상들과 비교해도 상식 밖의 행태라는 건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안다. (물론 강조하지 않아도 알지만, 계속 강조는 해야 한다.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것만큼 무서운 건 없다.)

문제는 불통의 대통령을 만들고 있는 주체 중 하나가 기자라는 점이다. 바로 질문하지 않는, 주어진 특권을 알아서 내려놓은 기자들이다. 물론 명색이 기자회견인 만큼 지난 세 번의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첫 번째 기자회견(2014년)엔 기자들이 친절하게 질문을 미리 제출해주며 대통령이 ‘모범답안’을 준비할 수 있게 거들었고, 두 번째 기자회견(2015년)에선 사전에 질문을 조율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정해진 순서대로 정해진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올해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후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즉석’ 질문을 받는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도중 박근혜 대통령은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 (즉석에서 나온 여러 질문을) 이렇게 기억을 한다”며 전매특허인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를 농담도 던졌다. 하지만 같은 시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기자회견 전 질문 순서와 내용이 정리된 글이 돌고 있었고, TV 속에선 기자들이 그 글과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순서대로 거의 대부분 일치된 내용의 질문들을 하고 있었다. 질문자로 선택되기 위해 경쟁하듯 손을 들면서 말이다.

대통령과 기자들이 각각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하는 기자회견이 끝날 때마다 비판받는 기자들은 말한다. 시간의 한계 때문에 질문자의 수를 사전에 정하는 건 관례이며, 질문을 조율하지 않아도 청와대 측에서 알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 없는 상황 아니냐는 항변이다. 물론 기자단 입장에선 그런 억울함을 표시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항변을 할 수도 있는 것과, 그게 옳은가는 별개의 문제다. 1년에 고작 한 번, 국민 앞에 서서 국민을 대신해 마이크를 쥔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대통령의 답변이 과연 진실인지 다시 한 번 따져 묻지도 못하게 된 건, 결국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년에 겨우 한 번, 기자회견을 시혜 베풀 듯 여는 대통령을 향해, 그러면서도 추가 질문이나 ‘진짜’ 즉석 질문을 단 한 번도 받은 일 없는 대통령을 향해 청와대 기자단은, 공영방송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제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가.

언제든 누구에게든 질문할 수 있는 사회에서 부여한 특혜와 같은 권리를 포기한 기자의 권위는 당연하게도 그만큼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대통령 기자회견이라는 무대에서 기자들이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며 대통령과 공동 주연으로 자리하기는커녕, 주연인 대통령을 위해 해마다 더 열연하고 있는 조연으로 전락했다는 세간의 조롱은 그래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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