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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혁
  • 승인 1998.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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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이 나라 방송계의 운명을 결정할 방송법 개정 논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한동안 ‘1공영 다민영인가, 아닌가’, ‘fcc (美) 모델인가, itc (英) 모델인가’ 등 방송구조 개편 논의나 ‘정통부냐, 문화부냐’는 관할부처 이기주의 싸움으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란 원래의 방송법 개정정신이 후퇴하거나 혼미에 빠졌다가 이제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것은 최근 집권당이 방송 제자리 돌려놓기 원칙을 재삼 표명하고, 우선 방송법 통과 - 추후 구조개편 논의 등의 시간과 단계별 입장을 정리하는 데서 확인된다. 그리고 그 시간도 예정된 4월보다 앞당겨질 전망이다.
|contsmark1|방송법의 개정은 방송 유관법 개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형식적으로는 통제와 간섭으로 점철된 오욕의 방송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방송계는 정치적 독립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석에서 집권당 한 간부가 한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니 방송사 입장이 변하고, 앞서서 충성하려 하거나 줄대기 하는 걸 보니 방송을 돌려줘도 큰 걱정이 없다는. 그는 한마디를 더 보탰다. 방송사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다른 정권과 같아지겠다는 우려도 들고 해서 빨리 방송법을 개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모시던 상전이 없어져도 위를 쳐다보는 옛습성을 버리지 못하는데 과연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개혁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룰 수 있을까.
|contsmark2|마누라만 빼고 전부 바꾸라던 한 재벌 총수의 말이 떠올랐다. 때로는 혁명적 상황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방대한 (‘방만한’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 집단이란 뜻이다) 방송사 조직에서 개혁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가치나 철학, 조직체계, 관행, 이해 관계 등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다보고 진행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개혁추진 과정에서 지금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대립을 바라보면서도 우려는 남는다. 그것이 과연 기우일까.
|contsmark3|입사를 축하해주던 자리에서 선배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선배님, 그동안 바뀌셨습니까, 안 바뀌셨습니까. 약 10년 경력의 그 선배는 한참만에 대답했다. 바뀌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고. 그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 나의 모습과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되겠지만 개혁에 대한 경영층과 간부들의 상황인식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그동안 질서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인식부족이거나 두려움일수도, 나아가 전체 이익보다 기존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그렇다면 개혁의 상당부분은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젊은 세대의 몫이고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컨센서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에게 전체적 시각에서 사태의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나 시스템으로 접근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그것 또한 곤란하다. 한편으론 그들에게 개혁에 대한 책임보다 전반적 무관심 현상도 보인다.
|contsmark4|우물 안 개구리는 그 시야가 아무리 넓어도 우물 속일 뿐이다.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살아온 대로 우물 안 시야나 잣대, 관습대로 변화를 이해하고 개혁을 시도한다면 과연 그 개혁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요즘 문득 문득 그런 생각에 빠진다. 지금 진행중인 개혁 논의가 ‘우물 안 개혁’으로 끝나, 또다시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해 버릴 지 모른다는.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패배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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