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교과서 ‘2라운드’ EBS에서 시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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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뉴라이트 교과서 지지자 EBS 감사 선임 배경은?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 출신의 ‘청와대 낙점설’에 휩싸였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의 EBS 사장 선임이 불발되며 교육공영방송 EBS를 둘러싼 ‘이념’ 논란이 불식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뉴라이트 교과서’를 지지하는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이 EBS 감사로 임명됐다. 이번 감사 선임과 향후 EBS에 대한 언론계 안팎의 우려는 ‘이념 전쟁터’라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 지난해 1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대총동창회 신년교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인물이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인물). ⓒ뉴스1(서울대총동창회 제공)

배인준 신임 감사 “교학사 교과서가 더 많은 학생들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지난 19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을 EBS 신임 감사로 임명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전체회의는 5인의 방통위원 중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3인만이 의결에 참여하며 파행을 맞았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은 배 전 주필이 그동안 칼럼을 통해 특정 이념에 치우친 모습을 보이는 등 교육에 전문성을 둔 공영방송의 상근 감사로는 적합하지 않다며 더 많은 후보군을 확보해 신중한 인사에 나서자고 제안했지만 여권 위원들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방통위가 이처럼 ‘파행’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EBS 내부에서 반대가 거센 인물을 감사로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배 신임 감사의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EBS 안팎에서는 배 신임 감사가 공영방송에 어울리지 않는 ‘이념편향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는데, 그것이 그가 이번에 EBS 감사에 선임된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배 신임 감사는 그간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대해 강하게 찬성했던 인물이다. 이는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2013년 6월 11일 보도된 <배인준 칼럼> ‘민주당의 한국史 전투’에서 배 신임 감사는 “역사시장에서도 뉴라이트가 살아나야 하고, 한국현대사학회가 힘을 내야하며, 교학사 교과서가 더 많은 학생들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2014년 1월 7일 ‘어떤 통일인가’에서는 “박근혜 정부에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로부터 올바른 통일관을 가르칠 수단도 없다. 긍정사관(史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2300여 개 고등학교의 채택률이 0%라는 기막힌 사실도 통일 논의의 앞날이 험난할 것임을 일깨운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하고 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또한 배 신임 감사는 지난 2014년 7월 23일에는 “우리 근·현대사가 대한민국 부정·폄훼 세력에 의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고 후세들을 잘못 가르쳐 왔는지, 새누리당 역사교실 참가자들이 많이 공부했기를 나는 바랐다”라며 “대한민국 부정론자와 유사 정치세력의 왜곡·선동에 휘둘려 국가 정체성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혁신이 아니라 보수의 자살이다. 우선 김문수 김무성을 지켜보겠다”(‘여당 두 김 씨와 대한민국 역사’)고 하기도 했다.

해당 칼럼에서 배 신임 감사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그의 책 <대한민국 역사・나라만들기 발자취 1945∼1987>를 언급하며 “이 교수의 책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교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의 핵심 집필자이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 2013년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모임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주저자 이명희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 안 되자 ‘뉴라이트 교과서 지지자’ 앉혔다는 의혹 제기

따라서 이 같은 성향의 배 신임 감사가 임명된 배경에는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파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과)의 EBS 사장 낙마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지난해 11월 EBS 사장 공모 과정에서 ‘청와대 낙점설’까지 돌며 유력시됐던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 출신의 이명희 교수가 여론의 압박에 낙마하면서 그 대타로 ‘감사’에 뉴라이트 인사를 앉힌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명희 교수는 학계가 뉴라이트 교과서로 평가하는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집필자이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013년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출범한 ‘역사교실’의 첫 강연을 맡은 바 있는 인물이다. 당시 이 교수와 함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과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를 지난 류석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낙점설’이 불거지며 실제 사장 공모에 지원한 인물은 이 교수다.

당시 사장 공모 과정에서 방통위 야당 측 위원들은 이명희 교수는 절대 안 된다며 EBS 사장 인사권자인 최성준 위원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 국회의원들 또한 청와대의 의중을 고려한 ‘자판기 인사’는 안 된다고 방통위원장을 압박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 최종 면접 대상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결국 이명희 교수를 대신할 사람을 물색한 끝에 이번에 EBS 감사로 선임된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이 아니었냐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시각이다. 방통위 내부에서 EBS 감사가 '청와대 낙하산'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다. 통상 협의를 통해 감사 후보를 결정해 온 전례와 달리 이번에 여당 측 방통위원들이 단박에 감사후보의 선임을 결정해 그 방통위의 절차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지난 19일 성명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교육 방송에서 완수하겠다는 망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장 자리에 뉴라이트 인사를 앉히지 못했으니 감사 자리라도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비판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 6기 EBS 이사회 첫 회의가 열린 지난 2015년 10월 13일 언론노조 EBS지부(위원장 홍정배) 조합원들이 이사들의 자질을 문제삼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 EBS지부

EBS 관리・감독권 가진 자들의 ‘이념편향성’, 그 끊이지 않는 논란

이처럼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이후 언론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조 등이 교육공영방송인 EBS의 교육 기능에 투영되게 해선 안 될 것”(언론노조 2015년 11월 27일 성명)이라는 조언이 잇따랐다. 그렇게 4개월여가 지난 지금 우려는 현실이 됐다. EBS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자들에 대한 ‘이념편향’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2008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한국 근·현대사-대안교과서’, 2013년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 이어 지난해 11월 3일 공식 고시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두고 학계에서는 “우경화의 결정판”이라고 했고, 언론계에서는 또 다시 국정화 사태가 언론계에 파고들 것을 우려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드라이브는 물론 국정교과서 고시 자체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 했고, 공영방송 사장・이사・감사에 이르기까지 보수・뉴라이트 성향의 인물이 밀려왔다.

공영방송 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EBS 전반을 감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르면 EBS 감사는 3년의 임기 동안 EBS의 업무 및 회계에 관한 사항을 감사하는 것은 물론, 동법 제13조에 따라 이사회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등 EBS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권을 가질뿐더러 이사회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감사의 자리가 결코 사장보다 가벼운 자리는 아니다.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공영방송 EBS를 관리・감독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에 있는 인물이 바로 ‘감사’다.

여기에 교육부 장관 재임 시절 당시 우편향 및 친일미화, 밀실 수정 논란을 받은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시민사회 및 학계, 정치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수정명령 등 교학사 교과서 검정승인을 밀어붙인 경력이 있는 서남수 EBS이사장. 뉴라이트 성향의 21C미래교육연합 대표이자 ‘애국교육’의 필요성을 수차례 피력하며 수능 방송 민간 개방 등 공교육을 뒷받침하는 공적 책무의 민영화를 주장한 조형곤 EBS이사. 이들이 또 다른 측면에서 공영방송 EBS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처럼 EBS에 대한 전방위적 관리・감독권을 가진 인물에 대다수 보수・뉴라이트 성향의 인물이 임명됐다는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교육 방송에서 완수하겠다”는 의혹이 거듭 제기되는 배경이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하더니 공영방송도 국정화한다”(2015년 11월 10일 언론노조 등 기자회견문)는 의혹이 과연 의혹으로만 가라앉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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