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내부 ‘재갈물리기’, 편성규약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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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고대영 취임 100일 KBS는?

“변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지켜야 할 것도 있습니다. 공영방송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정성, 객관성입니다. 보도, 시사 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에 기본으로 내재돼야 할 가치입니다. 공영방송 KBS에 대한 자부심의 근본 원천입니다.”(고대영 KBS 사장, 2015년 11월 24일 취임식)

사상 첫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해 11월 24일 취임식을 가진 고대영 사장은 취임사에서 공영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으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고 사장 취임 100일을 맞이한 3월(3월 2일 기준), KBS 안팎에서는 공정방송 활동을 위한 내부 비판 목소리에 대해 ‘재갈 물리기’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오는 4월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고 사장이 말한 ‘공정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재갈 물리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 고대영 KBS 사장이 지난 2015년 11월 24일 오전 10시 KBS본관 공개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밝히고 있다. ⓒKBS

“개인・특정집단 의견 밝히는 것 반대한다”는 선언 이후 공정방송 활동 압박

“개인이 개인의 이름으로 (현안 등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 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인만큼 상관없지만, KBS 이름을 붙이고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의견을 밝히는 건 반대한다. 대외적 활동에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 보다 엄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5년 11월 16일 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고대영 당시 KBS 사장 후보자는 이 같이 말했다. 취임 직후 다소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고대영 사장은 총선 앞두고 청문회에서 밝힌 계획을 행동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

지난 2월 편파 논란이 있는 뉴스 보도에 대한 경위를 파악한 기자 2명을 징계를 단행했다. 기자 2명은 노조와 기자협회에서 공정보도에 대한 내부 감시를 담당하는 집행부로 단체협약과 편성규약 상 명시된 합법적 활동을 했다며 징계가 부당하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회사는 예정대로 징계 절차를 밟았다. 지난달 23일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 산하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이하 공방위) 간사를 역임했던 A 기자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을 맡고 있는 B 기자를 각각 감봉 6개월과 견책 처분을 내렸다.

KBS 인력관리실은 지난달 25일 오전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A, B 기자의 보도 경위 취재는 의견제시를 넘어선 ‘압력 및 간섭’ 수준이었다는 등의 징계 경위를 밝혔지만, 내부 비판 목소리에 대한 사측의 ‘재갈 물리기’라고 내부 구성원들은 보고 있다. ‘합리적 비판’과 ‘질문’마저 막는 처사라는 것이다.

이번 징계로 ‘공영방송 KBS의 근본’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인식이 내부에서는 팽배하다. 사실 그 시작은 보도국 아침 편집회의에 평기자를 대표해 참석한 기자협회장에 대해 “편집권 침해”라고 규정한 데서부터다.

지난해 12월 16일 편집회의에 참석한 이병도 기자협회장은 그달 14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진행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 보도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의견을 전달했다. 이 같은 기자협회장의 요구에 대해 보도본부 간부들은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기자협회장의 특정기사 보도 요구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내부에서는 보도국 간부들의 “편집권 침해” 발언이야말로 오히려 노사가 함께 제정한 ‘KBS 방송 편성규약’ 및 ‘보도위원회 운영 세칙’ 상 명시된 규정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사과하고 반성한 보도본부 한 간부는 사과한 지 하루 만에 평기자로 발령이 났다.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를 ‘침해’라는 이름으로 옥죄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 발언이 ‘보직박탈’이라는 절차로 덮어진 것이다.

KBS 내부에서는 이러한 고대영 사장의 행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KBS기자협회는 지난 달 25일 성명을 통해 “KBS뉴스가 소수 간부들의 전유물인가. KBS 기자라면 누구나 KBS뉴스에 대해 물을 권리가 있다"며 "이 같은 권리를 ‘부당한 개입’으로 몰아 내부의 합리적 비판마저 듣지 않아놓고 어떻게 감히 공정한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KBS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직능단체들도 같은 날 공동 성명을 통해 “지금 KBS 보도국의 진짜 문제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문화가 발붙일 틈이 없다는 점”이라며 “현장 기자들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무시되고, 내부 비판의 통로가 모두 닫혀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개탄했다. 모두 고 사장이 말한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소속 집행부들이 지난 2월 17일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의 징계위원회 회부 철회를 촉구하는 피케팅을 벌이는 도중 사내 청원경찰에 의해 끌려나가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 영상캡처

“뉴스를 자기 생각대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

고대영 사장이 취임하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한 구성원은 향후 KBS 뉴스에 대한 통제가 이뤄질 것을 걱정했다. 그는 “기존 KBS가 그래왔듯이 뉴스에서는 ‘친여반야’ 속성이 그대로 유지될 거다. 아니, 보다 정교해질 거다. 마구잡이식으로 너무 눈에 띄는 것처럼은 안 해도, 정교하고 교묘하게 뉴스 통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구성원이 이와 같이 말한 이유는 고 사장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자 출신이라 기자와 보도본부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만큼, 선제적으로 보도본부와 뉴스 통제에 나설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 사장 취임 후 100일이 지난 KBS 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기자들은 사실 내색은 안 하지만, 더 이상 실망스러울 수가 없다.”
“(고 사장이) 독주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대영 체제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불만이자 평가다. 한 기자는 “기자협회나 노조를 소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부의 목소리, 비판적인 목소리를 안 듣고 독주를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총선을 앞두고 더 심해질 거 같다. 뉴스를 자신들(경영진) 생각대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걱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기자는 고 사장 체제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가 느껴지냐는 질문에 답을 잇지 못했다. 해당 기자는 일련의 상황이 내부 비판 목소리에 대한 ‘재갈 물리기’를 넘어 내부의 온당한 비판과 지적을 무시한 채 넓게는 ‘보도 통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기자협회나 노조를 소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구성원들이 말할 정도로 구성원들과의 소통 단절도 고 사장 취임 이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KBS의 한 구성원은 고 사장에 대해 묻자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도 모른다. 어떻게 생기셨느냐”라고 반문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고 사장의 얼굴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구성원과의 ‘불통’을 꼬집은 것이다.

이 같은 고 사장 체제에 대한 우려는 그가 사장이 되기도 전인, KBS 사장 공모에 지원했을 때부터 제기됐다. 실제로 제22대 KBS 사장 공모에 지원했던 강동순 전 KBS 감사가 고대영 당시 후보자의 ‘청와대 낙점설’을 폭로해 파문이 일었고, 일각에서는 “고대영 사장후보 선출은 KBS ‘국정화’ 선언이다. 고대영에게 주어진 임무는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기에 ‘올바른’ 방송으로 KBS를 뜯어고치는 것”(언론개혁시민연대, 2015년 10월 26일 논평)이라고 하기도 했다.

반대 여론에도 고 후보자는 KBS 사장으로 임명됐고, 밝혀지지 않은 의혹에 대해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11개 언론・시민단체는 지난 2월 3일 2317명 국민의 뜻을 모아 고 사장의 ‘청와대 낙점설’에 대한 특별 및 국민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이 같은 의혹은 고 사장 체제의 ‘불통’과 ‘비판 목소리 거세’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배경 중 하나다.

▲ <뉴스타파> 2015년 11월 12일 “‘도청의혹’ 고대영은 ‘KBS 국정화’ 용?” 리포트. ⓒ<뉴스타파> 화면캡처

구성원 의견 배제? 방송 공정성 의무, 노사 모두가 ‘주체’이자 ‘의무자’

결국 이 같은 고 사장의 내부 비판 여론에 대한 압박과 구성원들과의 소통 단절의 행보는 고 사장이 거듭 강조한 KBS의 변화와 공정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내부 구성원들의 여론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에서는 방송사가 가져야 할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의 다양성은 중요한 덕목이다. 내부 여론에 대한 통제는 이 같은 여론 다양성을 지워버리게 되고 다양한 비판과 의견이 사라진 공영방송사의 공정성은 반쪽짜리가 될지 모른다. 고 사장이 개인과 특정집단으로 규정한 노조와 기자협회, 기자들과 같은 ‘개인’과 ‘특정집단’ 역시 다름 아닌 KBS의 구성원이다.

고 사장의 3년 임기 중 이제 100일이 지났을 뿐이다. 앞으로 계속 ‘개인’과 ‘특정집단’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구성원들의 의견이 징계에 가로막혀 반영되지 못한다면 ‘방송의 공정성’은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방송법 상 명시된 공정성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있고, 공정성이란 방송책임자의 몫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모호한 지적과 주장에 대해 법원은 공정성이란 일방이 아닌 노사 양측의 몫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관한 법적 규율은 언론의 자유 및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이자 권리를 방송의 영역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단순히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방송을 실현할 의무 또한 부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법적 규율의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방송법 등에 의해 부여되는 방송의 자유 및 공정방송의무를 구체적으로는 방송사업자인 MBC뿐 아니라 방송편성책임자 및 방송의 취재, 제작, 편성 등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송사업 종사자들인 MBC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함께 부여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MBC 노사 양측은 모두 방송의 자유의 주체이자 공정방송이라는 규범의 의무자라는 지위를 함께 향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MBC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실제 방송 제작 등에 있어서 공정방송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여부 등은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다.”

(2012년 170일 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정영하 전 MBC노조위원장과 집행부 4명에 대한 2심 판결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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