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예능의 봄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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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봄바람을 탄 가창(음악)예능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번 봄 개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가창예능의 도래다. 설 특집 파일럿으로 선보인 SBS<보컬전쟁-신의 목소리><판타스틱 듀오-내 손에 가수>, MBC<듀엣가요제>가 모두 나란히 정규 편성됐다. 현재 방영중인 KBS2<불후의 명곡> JTBC<슈가맨> 엠넷<위키드> 등 기존 가창예능들도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불확실한 예능 시장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성공 확률을 기록한 포맷이라 그런지 제작 현장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MBC<복면가왕>은 현직 PD들이 선정하는 제28회 한국PD대상 ‘2015년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의 영예를 안았다.

그동안 예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와 그림을 원하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꾸준히 충족했기 때문이다. 가창예능의 경우도 처음에는 서바이벌쇼와 불가분의 장르로 여겨졌다. 반복되는 서바이벌 스토리라인이 인기를 잃을 때 함께 정체를 겪었다. 그런데 노래가 주는 감동과 재미가 서바이벌을 넘어서 다른 감동과 스토리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의 연속된 성공을 통해 확인됐다. 물꼬는 다시 트였다. 서바이벌의 자극을 가창의 감동으로 감싼 것처럼 다양한 호기심을 노래의 감동으로 감싼 것이다. 그 덕분에 흘러간 옛 노래와 가수는 계속 재조명되고, 가창력이 뛰어난 이들이 주말 예능에서 노래를 부를 무대는 계속 됐다.

▲ MBC <일밤-복면가왕> ⓒMBC

이번에 새롭게 등장하는 가창예능의 공통된 특징은 일반인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숨어 있는 재능의 발굴과 동시에 연예인들과 함께하는 꿈을 펼칠 무대를 만드는 데서 감동과 재미의 포인트를 찾는다. <듀엣가요제>는 존경하던 정상급 가수들과의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종의 꿈의 무대를 제공하는 형식이고 <신의 목소리>는 프로가수와 일반인 능력자의 노래대결을, <판타스틱 듀오>도 휴대전화를 통한다는 점이 차이지만 마찬가지로 가수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반인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가창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이 풍성함을 더하고, 숨어 있는 재능을 만나는 감동은 서바이벌쇼로부터 시작된 고전으로의 회귀다. 일반인과 실제 가수가 대결을 벌인다는 점도 JTBC<히든싱어> 등으로 접한 익숙한 설정이다. 신개념을 내세운 쿡방이 집밥 콘셉트 이후 부진을 겪고 있는 것은 단순히 캐스팅의 단조로움 때문이 아니다. 레시피쇼에서 집밥으로 전환을 일으킨 이후, 동어 반복한 것이 문제였다.

<나는 가수다>는 가창예능이 일반인참여 서바이벌쇼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렸고, <복면가왕>은 연예인에게 복면을 씌워 일반인 참가자와 같은 순수한 지위로 내려앉혔다. 그러면서 가창예능의 생명을 연장했다. 반면, 이번에 쏟아지는 가창예능들이 내세우는 일반인과의 콜라보는 그다지 새로운 설정이 아니다. 호기심이라는 스토리라인 측면에서도 약하다. 그래서일까. 이번 봄에 가창예능이 붐을 이룰 태세지만, 아무도 새로운 흐름이라거나 트렌드라거나 패러다임이라 평하지 않는다.

가창 예능은 기본적으로 ‘감동’을 논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금세 피로를 느낄 수 있는 장르다. <복면가왕>은 기존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으로 호기심의 극대화를 택했다. <무한도전><마리텔>에서 언급했던 <쇼미더머니>나 <프로듀서101>같은 서바이벌 예능은 노래에서 감동을 찾던 가창예능의 초창기 버전과 달리 플랫폼을 제공하고, 판을 깔아준다는 의의를 바탕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감동은 이제 내세워지는 마케팅 포인트가 아니라 따라오는 재미요소가 됐다. 그런데 설 명절 파일럿으로 찾아온 가창예능들은 호기심을 파고든다거나 새로운 포부를 밝히기보다 여전히 감동을 최전선에 내세운다. 그것도 연예인과 일반인의 만남이란 새롭지 않은 형식을 신개념이란 포장과 출연진의 명성을 통해서 말이다. 갑자기 가창예능의 봄바람이 부는 이유가 딱히 활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간명한 기획과 캐스팅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안이한 접근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예능은 코미디를 넘어 일상 속으로 발을 점점 더 내딛으면서 발전했다. 예능의 다양성도 그런 움직임 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번 봄에 찾아올 가창예능은 일상성을 파고들며, 새로운 콘텐츠와 정서로 시청자들을 놀랍게 했던 발걸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성공한 ‘쇼’의 형식들을 빌려온 뒷걸음으로 느껴진다. 가창예능은 어떤 쇼든 매우 단순한 구조다. 어설픈 반복은 딱 질리기 십상이다. 요즘 다시 반짝하는 바둑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가창예능의 붐이 앞서 언급한 달콤함에 끌려 둔 공멸의 자충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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