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어버이연합’ 의혹 사실상 은폐 수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노조 KBS본부, 어버이연합 뉴스 전수 분석

청와대 지시로 친(親)정부 집회・시위에 참석했다는 의혹이 전해진 보수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의 활동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KBS 뉴스가 무비판적으로 전달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뉴스 전수 분석을 진행한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는 “전국경제인연합(이하 전경련)은 돈으로, KBS는 뉴스로 어버이연합을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3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에 위치한 KBS본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KBS본부는 지난 2006년 어버이연합 출범 이후 TV를 통해 방영된 KBS 뉴스 가운데 ‘어버이연합’이라는 명칭을 직접 거론하며 전한 뉴스 73건(2008년 1월 1일~현재)을 전수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분석에서 어버이연합을 명시하지 않고 보수단체 등 간접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제외했다.

▲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3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에 위치한 KBS본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참석자들이 KBS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보도 은폐와 밀실 조직개편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PD저널

메인뉴스를 비롯한 뉴스・보도시사프로그램 14개에서 다뤄진 73건의 뉴스를 △맞불집회 △행사(기자회견) 방해・항의 △어버이연합 게이트 △대북전단 △기타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한 결과, 행사나 기자회견을 방해하거나 항의 소동을 벌인 뉴스가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맞불집회・어버이연합 게이트(18건), 대북전단(3건), 기타(10건)의 순으로 나타났다.

뉴스 프로그램별로는 △<뉴스9> 15건(단신 4건 포함) △<뉴스광장> 1부 및 2부 각 12건 △<뉴스12> 및 <뉴스5> 각 7건 △<뉴스7> 및 <뉴스라인> 각 5건 등으로 조사됐다. 연도별로는 2016년이 20건으로 가장 많이 보도됐으며, 2014년 18건, 2011년 12건 등으로 나타났다.

내용별로 살펴보면 사장 많은 유형을 차지한 것은 ‘방해・항의’로, △2010년 1월 21일 법원이 <PD수첩> ‘긴급취재-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한가’ 편 제작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자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투척하며 항의한 사건 △2011년 7월 31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격려하러 온 ‘희망버스’를 막아서며 충돌한 사건 △2012년 4월 5일 이른바 ‘막말 파문’이 일던 김용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자 사무실에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찾아가 항의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KBS본부는 “눈에 띄는 점은 어버이연합이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대규모 집회 시위에 맞서 이른바 ‘맞불집회’에 나섰을 때, 집회 참가자 규모의 차이를 무시한 채 대등한 주장인 듯 보도한 사례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1년 11월 24일 <뉴스광장>은 한미FTA 비준에 반대하는 6000여명의 대규모 시위대 소식을 전하면서 100여명 남짓한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비준 찬성 집회를 인터뷰를 곁들여 보도했다.

▲ 2016년 4월 29일 KBS <뉴스9> “야, ‘어버이연합’ 특위 구성…여 “정치 공세”” 리포트. ⓒ화면캡처

KBS는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시사저널> 단독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진 지난 4월 11일 이후 열흘 넘게 보도하지 않다가 지난달 22일 아침뉴스에서 처음 전했다. KBS본부는 이후 지금까지 총 18차례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를 보도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건이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한 오찬간담회에서 한 해명과 여・야 공방 등 이른바 ‘정쟁’ 프레임에 가둬 보도했음을 지적했다. <“남은 임기 민의 잘 반영…소통에 각고의 노력”>(<뉴스광장> 2016년 4월 27일) 리포트와 <야, ‘어버이연합’ 특위 구성…여 “정치 공세”>(<뉴스9> 2016년 4월 29일) 리포트가 그 예다.

KBS본부는 지난달 29일 어버이연합 보도 관련 문제점에 대해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논의하기 위해 사측에 요구했으나 사측이 이를 거부하며 무산됐다. KBS본부에 따르면 사측은 “논의할 만한 가치가 없다”며 “객관적 사실이 드러난 것이 없다. 의혹만 가지고 모든 것을 보도할 수 없다”고 공방위 개최 거부 이유를 밝혔다.

성재호 KBS본부 위원장은 “KBS뉴스가 진실과 사실을 은폐・왜곡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시해서 은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보도하는데 사안의 본질을 건드는 게 아니라 정쟁과 같은 정치적 프레임 안에 가둬놓는 것”이라며 “어버이연합 뉴스도 대부분 정쟁 관련 이야기. 이게 본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관제데모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어버이연합에 대해 그 실체를 추적하고 배후를 파헤쳤어야 마땅할 KBS는 어버이연합 출범 이후 내내 사실상 공범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제라도 어버이연합과 권력의 커넥션에 집중되고 있는 국민적 의혹을 취재해 실상을 보도해야 마땅함에도 또다시 침묵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KBS본부는 “KBS가 그동안 지은 과오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취재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어버이연합에 쏟아지는 의혹을 명명백백히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며 “조언하자면 두 달 전 JTBC와 보광을 향해 만들었다 해산한 TF를 다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도 3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금 KBS에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공정성과 신뢰의 회복이다. 고대영 사장은 진실을 은폐하고 여론을 호도한 불공정편파보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이사회는 사장과 보도편성책임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고, ‘공정성 회복 방안’을 논의해 제시하라”고 말했다.

▲ 2014년 12월 19일 KBS <뉴스9> “진보-보수단체 ‘맞불 집회’…엇갈린 희비” 리포트. ⓒ화면캡처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KBS의 어버이연합 관련 보도 분석 결과 발표와 함께 오는 4일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조직개편안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었다. KBS본부는 “오로지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춘 ‘사업형 조직개편’으로 국민의 수신료를 재원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공영방송 KBS의 임무와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KBS이사회가 해당 조직개편안을 반려해 줄 것을 촉구했다.

성재호 위원장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조직개편안을 내놔서 공영방송을 침몰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조직개편은 필요하다. KBS도 변해야 한다. 우리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KBS의 정체성마저, 국민이 왜 공영방송을 만들라고 했는지 그 정체성마저 잊어버린다면 조직개편은 누구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