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에 접어든 콘텐츠 예능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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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5월 중순을 지나는 지금 예능은 말 그대로 보릿고개다. 쿡방 열풍이 뜨거웠던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판세다. 2015년은 새로운 예능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해였다. 지난 몇 년간 이어져오던 일상과 예능이 성공적으로 접목한 쿡방과 <복면가왕>을 필두로 한 가창예능, 일상성을 전면에 내세운 <마리텔>의 등장은 오늘날 예능이 더 이상 코미디가 아니라 콘텐츠임을 새롭게 정의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최근 재밌는 예능, 새로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예능이 있는가?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콘텐츠 예능 시대에 콘텐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타셰프와 그 명운을 같이하는 쿡방은 최현석, 백종원, 이연복 이후의 스타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식어가는 열기만큼 파이가 줄어드는 중이다. 심지어 지난 주 <마리텔>에서 쿡방을 선보인 경리단의 장진우는 꼴찌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연식이 쌓여가는 기존 예능들은 매너리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패의 아성을 자랑하던 나영석 사단마저도 올해 들어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겹쳐지면서 예능은 전반적으로 식상해졌다.

▲ 콘텐츠 예능의 시대가 올 줄 알았더니 엉뚱하게도 가창 예능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웨딩싱어즈'편 ⓒMBC

원인은 간단하다.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하는 데는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도 활발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가 잘 안 풀리는 이유가 공격과 수비가 안 돼서라는 진단처럼 너무나 자명한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리빙 콘텐츠에 속하는 쿡방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인테리어와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삶의 철학과 태도가 훨씬 깊게 반영되어야 하는 어려움과 비교도 안 되게 큰 스케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중적 접근을 위해 저렴한 셀프 인테리어를 코드로 잡았지만 여전히 1%대 시청률에 갇혀 헤매고 있다. 화제성 측면에서도 신통치 않다. 그 결과 작년 연말에 시작한 <내 방의 품격>은 방문을 일찌감치 닫았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기보다 쉽게 코를 풀려는 태도다. 기존에 성공했던 몇 가지 콘텐츠에 모두가 달려들고 있다. 이번 봄 공중파 신설 예능은 KBS2 <어서옵쇼>를 제외하면 대부분 노래와 추억을 콘텐츠로 삼는 가창예능이다. 일상성과의 접목 등 콘텐츠 예능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흘러온 신선한 에너지와 흐름은 여기서 끊겼다. 대신 <복면가왕>부터 전부다 게스트 섭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쇼만 득세하고 있다. 여기에 최고 인기 예능인 MBC <무한도전>마저 합세해 멤버들의 떨어진 에너지를 음악 콘텐츠로 메우고 있다. 정준하의 <쇼미더머니> 도전에 이어 젝스키스가 출연한 ‘토토가2’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음악 콘텐츠인 ‘웨딩싱어즈’가 이어진다. 콘텐츠 예능의 시대가 올 줄 알았더니 엉뚱하게도 가창 예능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물론 눈에 띄는 다른 콘텐츠도 있다. 지난해 등장한 <마리텔>은 콘텐츠 예능 시대를 앞당긴 도화선이었다. 기존 방송 법칙과 섭외 원칙을 완전히 벗어난 참신한 전략은 신선했다. 하지만 백종원, 김영만을 잇는 새로운 콘텐츠 발굴에 힘이 부치는 듯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예정화부터 시작해 양정원 등이다. 덕분에 화제성 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콘텐츠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아저씨 예능의 대명사인 <출발 드림팀 시즌2>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는 기존 대형 예능도 마찬가지다. 매너리즘에 빠진 <정글의 법칙>은 여성 부족원만으로 꾸린 여성 특집을 방영중이고 <진짜사나이>는 철마다 비장의 카드로 여성 특집을 꺼내든다. 콘텐츠로 예능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속살이 드러나는 너무나 얄팍한 접근이다.

▲ SBS <정글의 법칙> ⓒSBS

연초에 올해 예능 판도를 두고 이런저런 예상이 많았다. 일상성과 예능이 점점 더 활발히 접목되고, 예전 같으면 전혀 상상도 못할 인물들이 방송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되면서 기존 예능 법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새롭고 다양한 장르와 정서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능성과 다양성이 열린 비옥한 실험의 토양이 마련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씨를 뿌리기보다 작년에 쌓아둔 곳간만 털고 있는 듯하다. 콘텐츠 예능의 시대가 본격화되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식상한 예능의 시대가 펼쳐졌다. 새로운 시도와 소개가 이어져야 할 시기에 도전과 실험이 줄어들면서 예능은 궁곤한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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