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가해자만큼 잔인한 ‘2차 가해자’가 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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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포르노적 시선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선정적 태도가 또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섬마을에서 벌어진 학부모와 주민들의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한 언론이 범죄보도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자극적 단어를 사용하며 성범죄와 피해자를 이야깃거리 내지 눈길끌기 소재로 전락시키는, 언론이 ‘2차 가해자’가 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남목포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여교사를 성폭행한 학부모 박모씨와 김모씨, 주민 이모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수많은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지난 3일 게재된 <헤럴드경제>의 선정적인 기사 제목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지난 4일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게재된 사과문 링크는 현재(7일 기준) 삭제됐다고 나온다.

<헤럴드경제>는 사과문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일부 학부형들이 여교사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력행위를 저지른 사건 내용’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헤럴드경제>는 그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사건의 내용을, 굳이 범죄보도 과정에서 불필요한 선정적 단어 선택을 통해 여론을 자극했다.

▲ <헤럴드경제>가 지난 4일 발표한 사과문. ⓒ한국기자협회보 기사캡처

이번 성폭력 범죄 보도 문제와 같은 논란은 성폭력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특정 언론만의 문제도 아니다. 반복되는 성범죄 보도 속에서 실수 아닌 실수는 반복된다.

선정적인 묘사와 자극적 단어를 사용해 범죄의 본질이 아닌 사건 내용에 집중하며 범죄를 ‘흥밋거리’로 취급한다. 보도 내용뿐 아니라 사건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래픽과 재연 등을 통해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되는 사건 과정은 역시나 성범죄를 ‘포르노’로 전락시킨다. <뉴스1>도 이번 성폭행 사건 보도 과정에서 선정적 이미지를 사용해 비판 여론에 직면했고, 이미지를 교체하기도 했다.

또한 이번 사건 보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피해자인 여성이 2차, 3차 피해를 입게끔 만드는 것도 범죄 못지않게 범죄적인 언론의 보도 태도다.

‘성폭력’은 그 자체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만취’, ‘술에 취한 교사를 상대로’ 등의 단어 및 문장 선택을 통해 마치 성범죄의 원인이 피해자에게도 있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또한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성범죄 보도에서도 여성이자 피해자는 ‘OO녀’, ‘20대 OOO’이라든지 아동과 성인 가릴 것 없이 피해자의 이름을 사건명으로 대체하는 등으로 ‘대상화’된다.

여기에 성범죄에 대한 고찰이라든지 사회시스템에 대한 반성과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은 없다. 다매체 시대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상업주의 언론이 만들어낸 자극적 보도만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보도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선정적 언론 보도는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은 ‘2차 가해자’가 될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013년 발표한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에 따르면 언론은 성범죄가 사회적・경제적・신체적으로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반인권적 범죄 행위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사회적 안전망 부재, 범죄 예방 체제 미비 등 성범죄를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반복되고 반복되는 성범죄 사건 자체를 보도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성범죄와 피해자를 단순히 기사 아이템 내지 대상화하는 보도가 아닌 ‘인권적 차원’의 보도가 될 수는 없는 것인지, 성범죄 보도를 하기 전에 언론부터 당장 반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언론이 성범죄 ‘2차 가해자’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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