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예능 개편 ‘진보’와 ‘진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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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상반기 KBS 예능 개편 돌아보기]

KBS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상반기 신규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정 분기점을 넘어섰다. 초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프로그램 중 일부가 점차 자기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선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연 KBS가 개편의 기조로 내세웠던 ‘새로움’과 ‘변화’에 부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올해 상반기 KBS는 기존 프로그램들을 과감히 폐지하고 새로운 예능을 선보였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초창기 화제성에서 점점 멀어지던 <인간의 조건> 후속으로 <언니들의 슬램덩크>를, 안정적인 시청률에도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나를 돌아봐>를 대신해 <어서옵SHOW>를,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주로 내보내던 토요일 오후에 <배틀트립>을 신설했다.

특히 예능 강세 시간대에 자리한 <언니들의 슬램덩크>, <배틀트립>, <어서옵SHOW> 등은 기존 예능과는 다른 콘셉트를 내세우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의 예능 문법을 답습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 ⓒKBS

실례로 여성 예능을 표방한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초반, 기존 남성 중심 예능에서 출연자의 성별만 여성으로 바뀐 채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 스타 재능기부 홈쇼핑이라는 콘셉트로 차별성을 꾀한다던 <어서옵SHOW>에선 저마다의 장기를 앞세운 연예인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실시간 소통 속 순위 대결을 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의 모습이 겹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두어 달의 시간이 흐르고 점차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초반 여성 예능을 표방하면서도 유사한 콘셉트의 예능을 이끌었던 남성 연예인을 조력자로 내세우는 등 우왕좌왕 했지만 출연자들끼리 관계, 즉 자매애를 다지는 모습이 우선이라는 지적들을 수용하며 멤버들의 화학작용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 남성 예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여성 출연진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허무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틀트립>은 ‘정보성 예능’이라는 특징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신선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기존의 여행 ‘교양’ 프로그램에 재미를 가미한 느낌이다. 이를 두고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콘셉트가 확실한 여행 예능이 휩쓴 시대에, 어떻게 보면 올드한 방식인 실질적 정보와 접근성을 내세운 KBS표 여행 예능들이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평했다.

그럼에도 상반기 KBS에서 내놓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과연 당초 내세웠던 ‘새로움’과 ‘변화’의 기조에 걸맞은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지금의 KBS 예능을 이끌고 있는 김진홍 예능국장은 “변화를 위해, 이른바 ‘KBS적’이라는 기존 프로그램들 폐지하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런칭했다”며 “기존 KBS를 선호하는 시청층에 더해 새로운 시청층을 영입하기 위함”이라고 변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일부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당초 KBS에서 내세운 ‘새로운 콘텐츠’인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그건 사람들이 KBS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MBC와 SBS가 하면 새롭다고 하면서 KBS가 하면 ‘KBS적’이라고, ‘올드하다’고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 국장은 KBS 예능의 특성으로 “절제의 미학”을 꼽으며 “(공영방송으로서) 자극적이지 않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능을 만들고자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KBS적’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 3사에 더해 케이블, 종편 채널이 자리를 잡으며 예능 지형도는 다양해졌다. 이런 가운데 시청자들은 기존의 지상파 방송에선 볼 수 없었던 정치(<썰전>(JTBC))와 요리(<냉장고를 부탁해>(JTBC)), 두뇌게임(<문제적 남자>(tvN)) 등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도 새로운 다양한 예능을 접하기 시작했다. 즉, 지금의 시청자들이 KBS에게 기대하는 새로운 재미가 ‘자극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특히 <어서옵쇼>는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 시점에도 재능기부와 홈쇼핑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사용됐던 복불복 게임, 가학 개그 등으로 ‘불편한 웃음’을 주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 KBS 2TV <어서옵SHOW> 6월 10일 방송 ⓒKBS 화면캡처

일례로 5회(6월 3일 방영분), 6회(6월 10일 방영분)의 경우 재능을 시험해본다는 명목 하에 정작 재능과는 상관없는 ‘복불복 탁구’, 달리기 게임에 프로그램 절반 이상을 소요했다. 5, 6회 전체 160분 중 홈쇼핑은 45분 동안만 진행됐다. 게다가 이 안에서도 ‘홈쇼핑’이라는 형식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재미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기존 개그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반복됐던 ‘무리한 분장’과 ‘게스트의 고통’을 통해 웃음을 주는 방식은 일부 시청자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또 다른 한계점은 KBS가 이번에도 ‘따라하기’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시작할 때부터 KBS <남자의 자격>의 여자 버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어서옵쇼>는 매주 새로운 패널들이 각자 생방송 코너를 꾸미고, 여기서 나온 사람들의 댓글 반응을 본방송에 담는다는 점에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5, 6회차에서는 김소희 셰프를 재능기부 스타로 선정해, 이미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매주 하나의 코너로 자리 잡은 ‘쿡방’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김 국장은 “이 세상 하늘아래 처음으로 만들어진 건 없다. 다들 연관되거나 서로 겹치는 게 있다”며 “그런데 그걸 ‘또 했다’는 것 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 이는 비단 KBS만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지상파 3사 모두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하는 데 바쁜 모양새다. 과거 육아예능, 먹방과 쿡방 열풍에 이어 MBC <복면가왕> 탄생에서 이어진 음악예능의 범람까지, 좋게 말하면 ‘트렌드’지만 사실상 새로움에 도전하기보다는 입증된 소재를 조금씩 변주해 끌고 가는 모습이다.

작금의 현상에 대해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 보릿고개’라 칭했다. 그는 “연식이 쌓여가는 기존 예능들은 매너리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콘텐츠 예능의 시대가 본격화되자마자 아이러니하게도 식상한 예능의 시대가 펼쳐졌다. 새로운 시도와 소개가 이어져야 할 시기에 도전과 실험이 줄어들면서 예능은 곤궁한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신규 프로그램을 내놓지 않고도 새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신규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새롭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KBS는 지난 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어느 날 갑자기 외.개.인>과 더불어, 하반기에도 5개의 신규 프로그램을 런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프로그램 중 정말 ‘변화의 아이콘’이라 불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길, 시청자가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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