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앤 와이즈(Old and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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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 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KBS 창원방송총국 ‘우문현답’

KBS창원방송총국이 올해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우문현답>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 노래가 맴 돌았다. 알란파슨즈 프로젝트 그룹이 부른 ‘올드 앤 와이즈’(Old and Wise)다. 늙는 만큼 그리고 보는 만큼 지혜로워진다는 가사의 의미가 연상 작용을 일으킨 때문이리라. 이 연상 작용은 더 나아가서 영화 ‘비열한 거리’의 엔딩 장면으로까지 이어진다. 건달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반건달로 묘사되는 재개발 전문가로 분한 천호진이 술집에서 묘한 페이소스를 담아 부르던 그 노래가 바로 이 ‘올드 앤 와이즈’ 아니었던가. 아마도 유하 감독은 늙고 지혜로운 사람을 묘사하기 보다는 늙고 비열한 인간 군상을 비꼬기 위해 이 노래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노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철학적인 가사로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명곡의 반열에 오를만한데, 서정주가 노래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도 스며있다. 늙어감에 대한 긍정적 면을 노래하고 인생의 고락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이 이 노래와 시의 공통점이듯이 <우문현답>도 비슷한 성찰의 지점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에는 비열한 늙은이도 없고 탐욕스런 졸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부터 평범하지만 넉넉한 우리네 이웃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우문현답>의 지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 KBS창원방송총국 <우문현답> ⓒKBS

눈치 챘을 것이다. 타이틀의 네 글자에서 모든 것이 짐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시골 마을과 시골 어르신들이 등장할 것이고, 두런두런 이야기가 넘쳐날 것이고,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도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 혹은 짐작을 가능케 하는 제목이다. 그렇다. <우문현답>은 예상을 전혀 어긋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진솔하게 이웃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인생을 담아낸다. 이 프로그램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민을 밝힌 장영우 PD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좀 더 쉽게 <우문현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시대 노인의 존재이유는 뭘까 라는 진지한 질문에서 우문현답은 출발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노인 한 사람은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노인은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를 가진 삶의 현자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가치관 혼란, 인간성 상실을 걱정하는 속도의 시대, 느리지만 묵묵하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온 굴곡진 삶을 통해 미래의 창을 제시하는 어르신들의 지혜를 공유하고 우리 시대 노인의 가치를 재발견하자는 것이 <우문현답>의 기획의도입니다.”
꼼꼼한 답변만큼이나 제작진의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런 세심한 정성과 사색은 기획단계를 넘어서 타이틀 선정과정까지 이어진다.
“기획 단계에선 ‘우문현답’으로 갈지, ‘동문서답’으로 갈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우문현답’의 교훈적이면서 다소 고리타분한 느낌을 뛰어넘는 대중적인 타이틀이 없을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동문서답’도 그 중 하나였는데 ‘동문서답’을 타이틀로 하면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가벼워지거나 어르신들이 희화화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우문현답’으로 가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 <우문현답>은 농촌 어르신들의 순박함에서 나오는 엉뚱함을 웃음의 소재로 삼지 않고 함께 앉아 어르신들의 지혜와 삶을 공유한다. ⓒKBS

장영우 PD의 답변 중에서 주목해야하는 대목이 있다. 농촌 어르신들이 방송에서 희화화되는 현상에 대한 경계 의식을 밝힌 지점이다. 정확하고 바람직한 진단이다. 노인들의 지혜와 순수함을 보기보다는 순박함에서 나오는 엉뚱함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자하는 의도가 요즘의 농촌 탐방 프로그램들 속에서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경향은 어린이 관찰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의외성과 엉뚱함을 재미의 요소로 인식하고 또 그들을 타자화 혹은 대상화하는 것처럼, 시골 탐방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잣대를 습관적으로 들이대는 방송 제작자들의 편견에서 기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문현답>은 기존의 수많은 시골마을 탐방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독특한 빛과 향을 발하는 차별성을 담고 있다. 여기서 다시 장영우 PD가 생각하는 <우문현답>의 차별성에 대한 열정적인 답변을 추가로 보탠다.
“가만 생각해 보면 농촌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난만 남은 농촌 어르신들도 방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이분들이 자식 키우면서 살아온 평범하지만 치열한 삶은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이 있을 거란 생각, 자식 세대의 공감과 연민을 통해 다시 한 번 ‘부모세대’의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죠. 나이 들어 무력하고 평범한 농촌 어르신이 방송을 위해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문현답>은 KBS창원방송총국에서 2015년 전파를 탄 <촌촌촌>의 한 코너로 시작해서 올해 초부터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내실이 있었거나 애착이 갔거나 둘 중에 하나였으리라. 20분이라는 짧은 편성 시간도 눈길을 끄는 점이다.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지루한 내용들을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야하는 무리수를 둘 필요도 없고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아 두기 위해 코너를 나누거나 억지웃음 코드를 배치해야 하는 부담도 없는 간결한 분량이다. 그렇다고 20분이라는 분량이 소품처럼 쉽게 허비되지도 않는다. 조금만 느슨하게 늘인다면 충분히 한 시간 편성도 가능한 내용이 알차게 압축되어 안방으로 전달되고 있다. 지혜로운 편성 전략이다.

▲ 프로그램의 첫 장면은 최정우 감독이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뒷산을 힘겹게 오르는 씬으로 시작하는데,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 한 컷을 찍기 위해 최 감독은 혼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자기가 설정한 프레임 속으로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간다. ⓒKBS

인터뷰라는 형식을 전면에 내세운 <우문현답>은 제작 시스템에 있어서도 아주 독특한 방식을 고수한다. 내가 과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시스템인 듯하다. VJ 1인 촬영 시스템은 없지 않아 있어왔던 방식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촬영을 맡고 있는 감독이 진행도 겸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최정우 감독은 보조 촬영감독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삼각대를 이용해 구도를 잡고 그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 재밌게 어르신들과 넉살도 떨고 수다도 이어가고 밥도 얻어먹는다. 이게 가능한 작업일까 궁금할 정도다. 주변에서 여러 개의 카메라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따라 붙어도 현장의 재미나 리얼리티를 담보하기가 힘든데 혼자서 찍고 혼자서 어르신들을 만난다는 건 분명 기존의 통념을 흔드는 시스템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일인다역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고 현장의 진행이 행여 불안하거나 허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5년째 시골 마을 촬영을 이어오고 있는 최 감독의 진행은 오히려 신선하고 힘있고 또 진솔하다. 프로그램의 첫 장면은 그가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뒷산을 힘겹게 오르는 씬으로 시작된다. 마을을 내려다보는 전망 한 컷을 찍기 위해 그는 혼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자기가 설정한 프레임 속으로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간다. 혼자서 찍고 걸으면서 카메라를 미리 설치하고 또 그 앞에서 멘트를 날리는 작업은 일반 등산보다 몇 배로 힘든 산행이었으리라.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과 애착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노력의 흔적일 것이다. 최정우 감독의 장점은 어느 누구보다 장영우 PD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자랑을 소개한다.
“가장 큰 장점은 친화력인 것 같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골 버스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들도 금방 마음을 열고 당신들 얘기를 하게 만드는 친화력이 결국 ‘우문현답’으로 이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최 감독이 어르신들을 취재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로, 삼촌, 이모로, 친근한 이웃 어르신으로 다가가고 대하기 때문에 스스럼없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분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최 감독의 강점인데, ‘밥은 먹고 다니나’가 인사일 만큼 어르신들이 나서서 걱정해주는 촬영감독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들한테는 못할 얘기를 감독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때론 자식들 흉도 보고 넋두리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죠.”

▲ <우문현답>은 마을 입구에서, 정자나무 아래에서 만난 어르신들을 취재 대상이 아닌 아버지 어머니로, 삼촌, 이모로, 친근한 이웃 어르신으로 대하며 스스럼없는 소통을 이어 간다. ⓒKBS

짧은 시간이지만 <우문현답>은 어느새 시골 어르신들의 가슴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 섭외를 하는 단계부터 어르신들의 반가움을 느낄 수 있고, 현장에서의 환대도 열렬하다는 제작진의 이야기에서 그 인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의 이장님이 먼저 취재 요청을 해오기도하고, 방송 내용을 학교의 교육 자료로 쓰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는 즐거운 자랑에는 살짝 샘이 나기도 할 지경이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도 끝을 맺어야 할 시점이다. <우문현답>이 그 날 그 마을에서 만난 많은 어르신들 중에서 한 분의 현답자를 선정하고 또 그의 이야기로 끝을 맺듯이 말이다. 오늘 이 글은 여담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이 코너를 연재하면서 많은 PD제위들과 통화를 하고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자세한 인터뷰 답변은 대부분 메일을 통해서 오는데 장영우 PD가 보내온 이번 답변은 역대급(?)의 내용과 고민을 담고 있어서 감동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딱히 내가 덧붙일 말이 필요치 않을 만큼 자세하고도 정성스러운 답변이었다. 이 글이 사족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울러 더 많은 답변 내용을 이 글에 소개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이 또한 운명인가. 나의 우문에 장PD의 현답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문현답>이 방송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모아져서 ‘노인과 도서관이 만나다’라는 주제의 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계획이 있어서 나의 부담을 덜어준 점이다.

<우문현답>이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큰 답이 되길 기원한다.

▲ 김욱한 포항MBC PD

*포항MBC 편성제작센터장인 필자는 술과 썸타면서 방송과 연애하고 있고 책과 밀당 중이다. '변방에서 낮게 나는 부엉이'라는 황당한 닉네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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