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워즈’부터 ‘상속자’까지 최후 미션은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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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파일럿 예능 키워드, 경쟁에서 생존으로

요즘 방송가에서 맛보기용(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이 대거 방영됐다. SBS는 간판 예능을 폐지하면서 후속으로 <꽃놀이패>, <인생게임-상속자>, <신의 직장>(8월 1일 방송예정) 등을, 종합편성채널 JTBC는 새 예능 프로그램 <솔로워즈>를 내보냈다. 파일럿 예능은 대개 색다른 포맷과 실험적 요소를 내세워 흥행 요소를 가늠한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마냥 재미만을 좇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의 농도가 다르더라도) 현실을 녹여내는 데 공을 들인다.

SBS <꽃놀이패>는 ‘가성비’를 앞세운 여행 예능 붐 속에서 승패 구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인터넷 생방송 실시간 참여를 접목시켜 출연자의 여행길 운명은 시청자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시청자에게 잘 보인 ‘꽃길’ 팀은 렌터카로 풍성한 먹거리, 볼거리를 비롯해 고급 풀 빌라에서 자는 특권을 누린다. 그렇지 못한 ‘흙길’ 팀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고, 흉가 수준의 돌담집에서 자야 했다. <꽃놀이패>는 여행의 즐거움을 퇴색시키지 않는 비교적 가벼운(?) 수준에서 ‘꽃길’과 ‘흙길’이라는 상반된 상황으로 각을 세우고 있지만, 여행 과정 내내 승자와 패자의 구도가 반복된다.

▲ JTBC <솔로워즈> ⓒJTBC

‘짝짓기 예능’도 다르지 않다. JTBC <솔로워즈>는 솔로인 청춘남녀 100인이 펼치는 미팅 생존게임을 표방한다. “사랑하기 쉽지 않다, 살아남기 쉽지 않다”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말하는 것처럼 커플이 되기 위해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두뇌, 심리게임을 거친 끝에 살아남은 최종 커플은 상금 1000만원을 차지한다. ‘연애도 능력’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얼마 전 딸 대신 엄마가 맞선을 본다는 콘셉트로 방영된 SBS<대타 맞선 프로그램-엄마야>도 은연중에 ‘맞선 시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스펙, 외모)끼리 만난다’는 비뚤어진 시선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17일 방송을 시작한 SBS <인생게임- 상속자>(24일 밤 2부 방영)는 더욱 노골적이다. 촬영 장소는 80억원 상당의 대저택, 고급 가구로 장식한 초호화 스위트룸과 금으로 장식한 전용욕실이 갖춰진 곳이다. 이른바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다양한 배경의 소유자들이 9명이 모든 부와 권력을 누리는 단 1명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상속자는 저택의 모든 재화(화장실, 음식, 물 등)에 값을 매겨 사용료를 받고, 참가자들의 계급(집사-정규직-비정규직)을 결정하는 특권을 가진다. ‘1대 99 사회’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출연자들의 임무는 심플하다. 상속자이든, 최후의 승자로든 살아남는 게 관건이다.

▲ SBS <인생게임-상속자> ⓒSBS

이처럼 예능의 키워드가 서로 겨루는 ‘경쟁’에서 누군가보다 먼저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대중매체 콘텐츠가 어느 정도 당대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짝짓기 예능’만 하더라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1990년대 후반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던 ‘짝짓기 프로그램’은 짝을 찾기 위한 단순 경쟁으로 연애의 판타지를 키웠다. <짝>을 기점으로 스펙, 배경, 외모, 성격으로 서열화된 구도로 연애를 다루는 ‘연애의 무한 경쟁 체제’가 전면화됐다. <솔로워즈>가 ‘전쟁’을 뜻하는 프로그램명을 내걸고, ‘관계’보다 ‘승패’로 커플이 탄생하는 것은 팍팍한 현실을 반증한다.

TV가 독해진 걸까. 현실이 영향을 미친 걸까. 이들 프로그램 연출자들은 말한다.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현실 경쟁이 과열될수록 예능의 서바이벌 구도가 독해지더니, 이제는 ‘생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능의 흥미 유발을 위해 포섭된 현실적인 장치들을 보면 볼수록 씁쓸함이 남는다. 요즘은 스펙도 소용없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생존법을 알 수 없는 실제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일까. 제아무리 현실과 닮은 구석이 있더라도 예능은 예능으로 즐기면 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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