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언론인들, 그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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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창룡 인제대 교수

김영란법에 대한 언론인들의 찬반은 뚜렷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언론인 단체인 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는 각각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엇갈렸다. 그러나 찬성이든 반대든 이제 다음달 이 법의 시행령이 확정되면 언론인, 교사, 교수(사립학교포함) 등 모두 법 적용 대상자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과 언론인들은 여전히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된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경제 선진국 회원국임을 자랑하는 동시에 부패국가군(CPI·부패인식지수)에 속하는 부끄러운 수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언론인들이 왜 이렇게 반발하는 걸까.

한국기자협회는 ‘윤리의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 한다’며 반발했다. 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해야 하는 입장에서 찬성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런 논리는 그 자체에 모순이 있다. 윤리와 법은 엄격하게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상호 겹치는 부분이 많아 윤리를 벗어났을 때 법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등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입법취지 훼손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 기준 완화 시도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언론윤리강령 등 자율규제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자율에 맡겨달라’는 식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내부의 공감대까지 나온 상황이다. 한보 사건부터 굵직굵직한 대형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사 간부, 기자 등이 얽혀있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였다.

부패비리를 감시해야 할 언론사가 오히려 부패의 한 축이 돼 국민의 원성을 받아왔다는 점을 이제 국민은 안다. 지금도 선거철만 되면 유력 후보자와 결탁하거나 금품을 주고받는 비리의 사슬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은 필지의 사실이다. 당장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경남 김해시의 시장을 뽑는 재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이유도 바로 전직 시장이 정치부 기자 두 명에게 금품을 준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으로부터 당선 무효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수도 없이 늘어난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의 폐해는 목불인견이다. 정부조직, 공기업 등은 언론사들의 광고 청탁, 압력에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언론의 자율, 자정은 공염불이고 윤리강령은 있으나마나다. 오죽하면 ‘기레기’ 소리까지 나오겠는가. “대형 언론사들은 헌법을 위반하고 소형 언론사들은 형법을 위반한다”는 말은 대한민국 현실을 정확하게 꼬집는 촌철살인이다.

어떤 언론사는 “김영란법, 거악(巨惡) 근절 가능할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영란법으로 ‘거악’ 근절은 어렵다”는 식으로 법 시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직접 인용해본다.

“...김영란법은 분명 '작은 악(小惡)'에 대한 경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법이 '큰 악(巨惡)'에도 약발이 있을 것이냐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계기도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판검사와 변호사, 대기업 오너가의 뇌물 사건이나 갑질, 고위 관료의 병역비리와 방산비리 등 큰 악들이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 정치의 썩은 속내를 보여준다. 진경준·홍만표·최유정 사건은 법조계의 추한 얼굴을 드러낸다. 방산비리는 군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광고했다.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건 이런 범죄들이지 자질구레한 소악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 전개는 옳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다. 이 논리에선 거악에 판·검사와 변호사 등이 얽힌 범죄를 포함시켰다. 김영란법 탄생 배경이 바로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대법원에서 변호사가 여검사에게 제공한 ‘벤츠’를 뇌물이 아닌 ‘사랑의 징표’라고 판단한 것이다.

벤츠를 제공하면서 직무와 관련한 청탁이 없었다고 대법원이 판단한 것을 보고 대법관 출신 김영란이 ‘이럴 수는 없다’고 만든 것이 바로 이 법이다. 법의 내용을 보면 한 번에 100만원, 1년 도합 300만원 상당의 현금이나 금품을 수수하게 되면 ‘직무 대가성’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 무죄를 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은 김영란법 시행이었다면 바로 처벌 대상이 된다.

▲  8일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넥슨 비상장 주식을 이용, 100억원대 시세차익을 올려 논란이 된 진경준 검사장의 해임을 확정했다. 해임은 검사의 대한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이나, 야당에선 검찰이 법원의 형 확정에 따른 ‘파면’을 회피하기 위해 ‘제 식구 감싸기’로 해임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4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진경준 검사장이 출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뉴스1

이런 점을 볼 때 ‘거악’은 법 때문이 아니라 법을 멋대로 운영하는 검찰, 법원, 정치 권력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게 아닐까. 거악 진경준 사건이 벌어지고 초기 법무부는 ‘개인의 주식거래일 뿐’이라며 감찰도, 수사도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진경준은 구속돼 형사처벌 수순을 밟고 있다. 결국 ‘거악’의 문제는 법이 아닌, 법을 운영하는 일부 특권층들의 문제다.

이런 이들(특권층)의 편법이나 탈법을 불가능하도록 만든 ‘부정청탁 방지법’은 완벽할 수 없지만 적어도 환영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마치 이 법으로 미풍양속이 상처받는 듯 접근하는 논리를 전개하며 한국 부패의 실상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될 정도다.

김영란법이 완벽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늘날 아시아 부동의 청렴국가로 손꼽히는 싱가폴도 수십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쳐 반(反)부패법의 제·개정을 반복했다. 한국은 이제야 역사적인 ‘부정청탁 방지법’을 만들었다. 그런 만큼, 이제는 이 법에 대해 가소로운 반발을 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향응을 거부하거나 자신이 해야 할 계산은 자신의 돈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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