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은 정치인 인터뷰를 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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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JTBC가 ‘대신’ 묻고 한국일보가 ‘비판’한 KBS의 이정현 인터뷰

“이정현 대표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8월 9일 KBS <뉴스9>에서 방송된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 인터뷰 마지막 부분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통상적인 예의 차원에서 한 멘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뷰 주체가 KBS라는 점,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라는 점에서 이날 앵커의 마무리 멘트는 매우 불편했다.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의혹 묻지 못하는 KBS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이른바 ‘KBS 세월호 보도개입’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맡았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시곤 KBS 보도국장과의 통화에서 ‘해경에 비판적인 KBS보도’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사실상의 청와대의 보도개입이었다. 당시 녹취록은 언론노조 등을 통해 공개됐으며 이후 KBS 기자들의 잇따른 비판 성명이 이어지는 등 파문은 확산됐다.

하지만 지난 9일 ‘KBS의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 인터뷰’에서 이 같은 내용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날 KBS 앵커는 어떤 것을 질문했을까? 다음과 같다.

- 간단하게 당선 소감 말씀해 주시죠.
- 새누리당을 바닥부터 바꿔놓겠다 이렇게 공약하셨는데 어떤 복안이신지요.
- 정말 솔직하게 현재로서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 새누리당에서 내세울 수 있는 대선후보,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 반기문 UN사무총장을 영입해야 한다 그런 얘기가 당안에서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8월 9일 KBS <뉴스9> ⓒKBS 화면캡처

판단은 자유지만 필자는 이날 KBS의 인터뷰는 ‘하나마나 한 질문’만 했다고 생각한다. ‘4월 총선 이후 불거진 친박 책임론에 대한 입장’, ‘친박-비박으로 갈등이 첨예화 된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지’, ‘이정현 신임 대표 체제 이후 수직적 당청관계를 우려하는 비판에 대한 생각’,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오더 투표에 대한 입장’, ‘KBS 세월호 보도 개입과 관련한 의혹’ 등 정말 짚어야 하는 질문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KBS는 이 사안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거의 묵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KBS 이정현 인터뷰’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사실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해도, 언론이라면 최소한 던져야 하는 질문이 있다. 다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KBS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게 ‘KBS 보도개입’ 의혹에 대한 질문은 던졌어야 했다. 그것이 이정현 신임 대표의 일방적인 변명과 해명으로 끝났더라도 최소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청자들이 ‘상황 판단’은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청와대의 KBS 세월호 보도개입’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과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정현 대표에게 ‘청와대 세월호 보도개입’ 묻지 못하는 한국 언론들

재밌는 건, KBS가 이정현 대표에게 제대로 묻지 못한 질문을 같은 날(8월 9일) JTBC <뉴스룸>에서 물었다는 점이다. 이날 손석희 앵커는 이정현 대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 계파청산을 굉장히 크게 외치셨는데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계파에 너무 기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고 이른바 오더투표 논란도 또 있었다. 계파청산 방법론이 있다면?
-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표현을 자타가 다 했다…앞으로 당청관계는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문제. 당내에서는 그 부분을 굉장히 궁금해 하지 않을까.
- 대선후보를 영입한다고 말씀하셨다. 당내 대선후보군들도 있는데 영입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을 염두에 두신 건지.
- 누가 대선후보가 될지 모르겠으나 대통령과 상당 부분 대척점에 서야 하고 그것이 득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전략으로 간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

▲ 8월 9일 JTBC <뉴스룸> ⓒJTBC 화면캡처

물론 JTBC도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개입’과 관련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KBS처럼 ‘하나마나 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일보> 조아름 기자는 8월 11일자 ‘기자의 눈’에서 “TV조선조차도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 ‘나 같은 쓰레기를 탈탈 털어서 청와대 수석을 시키고 배려했다’ 등 과거 이 대표의 발언을 들며 당청관계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해 그를 난감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제대로 물어야 할 질문을 하지 못하는 KBS를 보며 <한국일보> 조아름 기자는 “국민들은 공영방송보다 오히려 종편이 전하는 뉴스를 보며 속 시원함을 경험했을 것”이라면서 “정말 수신료가 아깝다”고 비판했다.

언론·시민단체들로부터 정권에 우호적인 것으로 비판받는 TV조선조차 집권여당 신임 대표에게 ‘물어볼 것’을 물어보는데, KBS는 당연히(!) 던졌어야 할 질문조차 제대로 못했다. 이러니 ‘민영 종편보다 공영 KBS가 더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종편 개혁’보다 ‘공영방송 개혁’이 더 시급한 걸까. 어쩌면 이 질문은 한국 언론에게 사치인 지도 모른다. 집권여당 대표에게 ‘청와대 세월호 보도개입’을 묻지 못하는 한국 언론이 태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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