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보여준 예능의 무한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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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무한도전’의 도산 안창호 특집

예능의 영역과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LA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자취를 조명한 <무한도전>(MBC)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8·15 축사와 맞물리면서 더 큰 울림과 정보로 다가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부터 시작해 뉴라이트 사관을 배경으로 하는 정부·여당의 건국절 프레임은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폄하하고, 독립운동사를 근현대사로 편입시키지 않으며, 고로 여전히 우리나라의 가장 큰 기득권층으로 자리매김한 친일세력에 대한 처벌이나 발본색원의 의지를 옅게 만들려는 인식이 깃들었다는 반론도 적잖은, 논란의 여지가 큰 역사관이다.

광복절에 대통령이 나서서 이러한 역사관을 설파할 때, 한 예능 프로그램은 다른 말을 하는 대신 LA에 가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해 짚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웃고 떠들며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교과서나 다른 교양 콘텐츠에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은, 그리고 한 두 줄의 활약상 외에 대부분 무관심했던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과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친일 외교관 스티븐슨 저격 등의 재미동포들의 독립운동사와 코리아타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산 선생의 명소들을 방문하고, 도산 선생의 막내아들과 외손자를 찾아가 도산 선생에 대해 들어볼 기회를 가졌다.

잭 블랙을 만나러 <무한도전> 팀이 LA를 간다는 기획이 언론을 통해 나왔을 때부터, 잭 블랙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다 알려졌다. 그럼에도 떠난 LA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 반 염려 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양한 난이도의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본고장에서 힙합 뮤직비디오를 찍고, 로우라이더를 빌려 타고 국립공원을 유유자적 드라이빙하는 LA투어가 연계된 기획들이 이어져 밋밋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 8월 27일 MBC <무한도전> 도산 안창호 특집 ⓒMBC 화면캡처

1950년대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배우이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 필립 안을 매개로 일제강점기 때 재미 동포들의 노력과 독립의 열망, 증기선을 타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몇 개월씩 돌아다닌 도산 안창호 선생과 그 시대의 독립활동에 대해서 역사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LA투어 와중에 펼쳐졌다.

비록 예능의 첫 번째 덕목인 재미, 웃음이란 차원에서 보면 아무런 장치가 없었지만 조국과 동포를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온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뜻 깊은 에피소드는 공익적인 목적이라는 TV의 순기능을 달성한 동시에, <무한도전>은 역시나 믿을 만하다는,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브랜드 파워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기회가 됐다.

올해 초 하얼빈으로 건너가 안중근 의사를 조명한 <1박 2일>(KBS)도 꼭 알아야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마찬가지로 진지했고, 특히 뤼순 형무소를 찾아간 장면에서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안창호, 안중근 모두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인지 우리는 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사상, 그리고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환기를 웃음이 가장 큰 덕목인 예능이 해내고 있다.

예능이 쇼에서 일상으로, 웃음에서 공감으로 확장하면서 얻게 된 친근함이 있다. 마땅히 알아야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도마 안중근 선생을 조명하는 이번과 같은 기획을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외압에 시달리는 보도국과 달리 방송 콘텐츠 중 가장 큰 파워와 영향력을 가진 예능의 힘이다. <무한도전>이 지금과 같은 충성도를 지닌 프로그램이 된 데에는 올바르고자 노력하는 사회적 인식이 한 몫 작용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변호를 거부했다는 내용을 방송에 못 넣었다는 얘기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기 때문에 <1박 2일>의 PD가 좌천됐다는 음모론이 피어날 정도로 현재도 엄혹한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 자신들의 사랑으로 키운 소중한 친구와 같은 예능에 거는 기대와 애정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능의 한계와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한쪽에선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 하는 자 보다 더 죄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들어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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