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수사 ‘친절한’ 백브리핑, 세월호 보도참사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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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검에서만 유병언 수사 백브리핑 27회…‘한겨레’ 기자 “통상의 경우와 달라, 檢 즐기는 듯 보여”

지난 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3차 청문회에서 언론의 과도한 유병언 보도가 세월호 참사의 본질과 관련한 보도를 덮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월호특별진상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김서중 위원은 “유병언, 구원파 등에 대한 보도가 무분별하게 많이 쏟아져 나와 사고의 원인이나 진상 규명, 재발 방지대책 등에 대한 보도가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조위 측이 청문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병언 관련 보도가 2014년 한 해에만 8만 6000여 건에 달했다. 김서중 위원은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언론의 ‘실황중계식’ 유병언 보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다수의 언론은 ‘검경 금수원 수색…유병언 관련 신도 3명 체포’, ‘검찰, 유병언 도피 도운 구원파 신도 3명 조사마치고 석방’ 등의 보도를 이어가며 수사 과정을 단계별로 상세히 보도했었다.

김 위원은 당시 유병언 보도 범람의 이유로, 당시 유병언 수사를 담당했던 인천지검의 ‘백브리핑(비공식 언론브리핑)’을 들었다. 특조위 측은 “인천지검에서는 총 27회에 달하는 유병언 관련 백브리핑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많은 언론이 유병언 문제에 집중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당시 인천지검의 백브리핑에 참여했던 노현웅 <한겨레> 기자는 “보통 수사 중인 사안에 관해 그렇게 기사가 많이 나오면 수사에 도움이 안 돼서 자제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인천지검의 경우는 오히려 ‘지검 측이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백브리핑을 진행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노 기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던 목포지청은 분위기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목포지청에서도 백브리핑을 진행하긴 했지만 핵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등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며 “반면 인천지검에서는 백브리핑은 물론, 영향력 있는 기자들을 따로 만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날 특조위는 인천지검 측이 다수의 백브리핑을 진행하며 언론에 중요한 수사 정보를 제공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 당시 인천지검 2차장 검사였던 김회종 현 창원지검 진주지청장에게 증인 출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청장은 뚜렷한 불참 사유도 전달하지 않고 불출석 했다.

김서중 위원은 “2014년 사고 직후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이 검찰 간부 회의에서 ‘이런 사건에는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힌 사실이 있고, 이 때문에 언론계 일각에서는 ‘해경이나 해양수산부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유병언에게 돌리기 위해 그런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9번이나 공식석상에서 유병언에 대해 발언하면서 유병언의 체포를 수사기관에 주문했는데, 이 또한 김진태 검찰총장의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입처 저널리즘의 폐해…언론이 책임성있게 의제 설정해야”

이날 청문회에서는 유병언 보도에 매몰돼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주목하지 못한 언론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참사 직후 구조·구난 실패와 부실한 지휘 체계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많았는데 언론이 지나치게 유병언과 구원파, 심지어 유병언 개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쏟았다”며 “마치 유병언만 잡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양 언론이 몰아간 점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사고 직후 종합편성채널에서는 ‘<독점공개> 가정부가 본 유병언·김혜경(한국제약 대표) 실체는?’ 등 자극적인 제목과 소재의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유병언에 대해 가장 많은 보도를 했던 TV조선(3696건)의 이진동 사회부장은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일부 자극적인 보도는 인정하나 뉴스·시사 프로그램이 많은 TV조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검찰이라는 공신력 있는 취재원의 정보를 신뢰해 관련 보도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병언은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 해운의 실질 소유주로서 선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배를 운영해 왔고, 청해진 해운을 20년 간 독점해왔다는 측면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중요한 인물”이라며 “유병언 관련 보도가 결코 가치 없는 보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현웅 <한겨레> 기자는 “국민들의 관심, 그리고 보도량이 특정 문제에 쏠리고 그와 관련해 출입처에서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 기자로서 침묵하거나 무시하기 쉽지 않다”며 앞서 발언한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의 발언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유병언 보도가 사건의 본질을 흐린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 기자는 “당시 <한겨레>에서는 현장 기자들은 유병언 관련 발제를 하지 않고, 편집진에서도 기자들에게 관련 기사를 요구하지 않는 등 내부에서 ‘유병언 관련 기사는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증언했다.

김춘식 한국언론법학회 이사(한국외대 교수)는 ‘출입처 저널리즘’을 언론의 과도한 유병언 보도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 이사는 “언론들이 정부와 수사 기관 등의 브리핑에 의존해 뉴스를 생산하는 관행인 ‘출입처 저널리즘’과 출입처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는 이른바 ‘받아쓰기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 언론엔 ‘속보 위주의 뉴스 생산 관행’도 존재하는데, 이런 잘못된 관행들을 버리고 언론이 책임있게 의제를 설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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