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자율성과 대중의 결핍에 대한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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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책] 홍경수 ‘예능 PD와의 대화’-변화하는 예능과 전문직의 초상으로 ‘PD론’ 시도

PD는 작가인가? PD가 작가라면 문학평론의 작가론 또는 영화평론의 감독론처럼 방송비평에서도 PD론이 가능할 것인가? 이는 필자에게 오랜 화두였다. 지금은 없어진 월간 <MBC 가이드>에서 ‘연출자의 세계’라는 장기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1993-1994). 당시 약관 9년차의 PD였던 본인은 필진의 일원으로 이 기획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때 MBC의 기라성 같은 PD 선배들의 개성 있는 연출세계와 그들의 분신인 프로그램을 내밀하게 짚어볼 수 있었는데 이 때도 방송 PD에게 작가론이 가능한 것인지 고민을 좀 했다. 그래서 연재 도중에 ‘중간점검 – PD론은 가능한가’라는 제발 저리는(?) 글을 쓰기도 했다.*

요컨대 문학에서의 작가와 달리, 방송에서 PD는 방송사의 거대한 조직과 정교한 테크놀로지 하에서 그의 창작혼과 의지를 자유롭게 행사하기가 어렵다고 보았고 그런 점에서 작가론의 근거가 불확실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던 것이다. 물론 그 때에 필자는, 모름지기 ‘작가’의 요체는 창작 의지와 자유혼 즉 작가정신에 있고, PD는 작업 특성상 끊임없이 그의 자유의지를 도전받지만 소신껏 제작현장에서 이를 구현하려 애쓴다면 그는 엄연히 ‘작가’임을 천명하였다. 나아가 ‘연출가의 세계’ 시리즈는 바로 PD의 내면에 숨쉬는 작가정신을 발견해나갈 것임을 다짐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PD론에 대한 화두는 무릇 이 땅의 방송문화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어젠다가 될 수 있을 법하다. 말할 나위 없이 “방송 PD가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며, 한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방송의 핵심 인력인 PD들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방송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인용문의 발화자 홍경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주요 인자로서의 제작자 혹은 PD’에 대한 주목을 본격화한 당사자다. 시점과 궤도를 달리 해서 제기된 PD론인 것이다. 본 필자가 1993년에 시도한 것과의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으나, 그의 논의는 보다 확대되었으며 더욱 체계적이고 집중적이다.

▲ 홍경수, ‘예능 PD와의 대화’ ⓒ사람in

목하 안식년을 맞아 올 연말까지 독일 뮌헨대 커뮤니케이션학연구소에서 교환교수로 있는 홍경수 교수(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그는 일찍이 KBS <낭독의 발견>과 <단박 인터뷰>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한 피디다. 또한 <PD, WHO & HOW>, <PD 인턴십 특강>과 같은 방송가의 스테디 셀러를 집필한 저자이기도 하다. 2010년부터 학계로 진출해 웅숭깊은 온축을 발판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에 <확장하는 PD와의 대화>를 발간하더니 이번에는 <예능 PD와의 대화>라는 책을 냈다. 우선 왕성한 그의 활동에 탄복하게 된다. 본 서평은 이 책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기실 그는 PD 출신으로서 PD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PD학의 선구자다.** 그의 박사논문도 ‘공영방송사 제작 체계 변화가 피디 전문직주의에 미치는 영향’(2012)이다. 그로부터 그는 한국에서 PD론 혹은 PD학이라는 연구 분야에 ‘디딤돌을 놓는 마음으로’ 이 분야를 천착하고 있다. 전작인 <확장하는 PD와의 대화>는 미국의 뉴컴과 앨리(Newcomb & Alley, 1983)가 쓴 ‘프로듀서와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은 프로듀서를 “참된 독해자이며 참된 분석가”로, 또한 “팀의 대표로서 행정과 예산을 고려하는 사업가이면서 예술가”로 보았는데, 홍 교수는 한국에서의 경우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확장하는 PD와의 대화>는 글자 그대로 지상파에서 다른 미디어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7인의 PD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주철환, 송창의, 최승호, 윤석호, 박해선 등 당대의 PD들이 줄줄이 호출됐다. 그는 “한국 방송의 기초를 놓고 발전시킨 피디들의 창의력에 대한 요소들을 탐색하고 제작체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방송 환경의 좌표를 그려볼 수 있고, 방송 제작문화 연구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는 것에 착목하고 이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그의 PD론과 PD학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 첫 번째 소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이제 <예능 PD와의 대화>가 나왔다. ‘변화하는 예능과 전문직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선 김병욱, 박중민, 여운혁, 이명한, 최영인 PD 등 5명의 예능 PD들을 집중 탐구했다. 시트콤, 코미디, 토크와 시사 예능 등의 장르에서 영토를 넓히고 있는 문제적 PD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최근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 등에서 활약하는 이들을 통해 변화하는 방송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다만 <예능 PD와의 대화>라는 본서 단독의 캐스팅만을 놓고 본다면 이전의 <확장하는 PD와의 대화>에 나오는 주철환, 송창의, 박해선 PD의 부재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이번 책은 인터뷰이의 발언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내레이션을 줄이고 인터뷰 싱크를 늘렸다고나 할까. 홍경수 교수는 PD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인생을 듣고, 급변하는 방송 제작 시스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야말로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메커니즘과 창의성의 구현 방식, 제작의 관행과 제작자의 자기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방송인을 꿈꾸는 지망생에게는 현장의 치열한 뒷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지금 현장을 뛰고 있는 현업 PD에게는 잘 나가는(?) PD들의 노하우를 엿보는 가운데 장차 홍경수 교수의 인터뷰이가 되겠다는 동기를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예능 PD와의 대화>를 통독한 본 필자의 뇌리에 남은 단어는 ‘PD의 자율성’과 ‘대중의 결핍’이다. 그는 PD의 전문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율성을 꼽는 가운데, 예능 장르 역시 자율성의 변동을 민감하게 겪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또한 대중의 무의식 속에서, 이 시대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넘어선, 그들이 말하지 못하는 대중의 결핍을 읽어내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대목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거칠게 말해서 제작현장에서 PD의 자율성은 더욱 위축되고 있고, 우리 시대의 대중들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고 무엇인가가 결핍되고 있다. 이 같은 국면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하여 아마도 홍경수 교수의 PD론은 다음 <OO PD와의 대화> 3탄의 집필로 이어질 것이 기대된다.

*당시 필진은 정운현 PD, 정길화 PD 등이었으며, 본 필자는 고석만, 장수봉, 이관희(드라마); 전우중, 신종인, 송창의, 주철환(예능); 김윤영(교양); 김기덕, 정수열(라디오) PD에 대한 ‘작가론으로서의 PD론’을 시도해 보았다.

**한국에서의 피디(PD)는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합한 개념이라는 게 중론이다(홍경수, 2012). 이전까지 통상적으로는 프로듀서와 피디가 혼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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