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파일럿이 몰고 온 바람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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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우설리’, ‘신스틸러’ 등 관찰형 예능 이후를 모색하는 시도들

이번 추석연휴 공중파 파일럿 예능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시청자 참여형 예능의 활발한 실험과 드라마와 코미디가 결합한 극화된 예능의 등장이다.

작년 설 특집 파일럿에서 MBC 간판 예능으로 자리매김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 성공 이후 야외 리얼버라이어티에 시청자를 참여시키고자 했던 SBS <꽃놀이패>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 참여형 예능에 대한 도전은 이번 추석에도 계속 이어졌다. 국내 최초 리플 드라마를 내세운 MBC <상상극장 우.설.리(우리를 설레게 하는 리플)>와 고향을 찾은 스타들이 지역 주민들과 SNS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MBC <톡 쏘는 사이> 등이 그 예다.

꽁트의 제왕 신동엽이 진행을 맡은 SBS <신스틸러>는 드라마와 리얼리티가 결합된 일상을 파고드는 요즘 예능 문법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형식의 예능이다. 애드리브에 능한 연기자와 극본에 충실한 연기자가 한 상황극 안에서 연기를 펼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리얼의 극단은 결국은 잘 짜여진 ‘극’과 통하게 된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관찰형 예능의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 MBC <상상극장 우.설.리> ⓒMBC

영미권 방송 사업을 슬쩍 보면 코미디와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꼭대기에는 시트콤이나 영화와 같은 극이 차지하고 있다. 진화와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예능이 도전할 수밖에 없는 몇 안 남은 영역이기도 하다. 전문 연출진과 스태프들에게 의뢰한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같은 시도는 결코 그냥 벌어지는 우연이 아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두 가지 경향이 시청자들의 리플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상상극장 우.설.리>처럼 한 프로그램 내에서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데 있다. 일종의 시대성이다. 즉, 이번 추석 연휴 파일럿은 관찰형 예능 다음 버전에 대한 공중파 3사 예능국들의 공통된 고민과 엇비슷한 출구전략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다음 예능 패러다임을 찾기에 도전한 대부분 파일럿들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완성도 때문이다. 야외 리얼버라이어티로서 시청자 참여형 예능을 추구했던 <톡 쏘는 사이>는 인기투표로 전락하면서 실패한 <꽃놀이패>의 단점을 구체적인 설정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골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짚라인에 도전하고, 미션을 풀려고 뛰어다니는 장면들은 박명수의 말을 빌리자면 신선하지 않았다. 굳이 시청자 참여형 예능이어야만 가능한 예능이 아니라 늘 있어왔던 흔한 야외 예능의 모습이었다. <신스틸러>와 <우.설.리> 등의 극화한 예능도 기대했던 것만큼 새롭지 않았던 건 드라마 완성도가 <SNL>의 콩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능 차원에서의 재미는 근접하지도 못했다.

예능의 극화와 시청 개념의 확장은 다음 버전의 예능을 찾기 위한 시도들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에 도전한 파일럿들은 대부분 흥미로운 기획 의도를 품긴 했으나 <마리텔>처럼 도전과제에 적합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면서 대중의 마음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방향을 잡았다면 시청자 참여형 예능이 기존 리얼버라이어티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예능이 극화되면서 나타날 새로운 재미가 무엇일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SBS <씬스틸러> ⓒSBS

예를 들어 <우.설.리>처럼 시청자 참여형 예능과 드라마의 시너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특징이 이미 적극적인 피드백을 반영한 대본인데 예능 제작진이 적은 시간과 예산 안에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출만한 완성도 높은 극을 만든다는 것이 무리해 보인다. 극화된 코미디는 기존의 꽁트를 넘어선 결과물이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응답하라>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특정한 경향이 나타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노래 대결 등의 아류 프로그램이 쏟아지던 지난 명절 특집 파일럿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는 게 설렌다. 하지만 낮은 완성도에 발목을 잡힐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신선함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기획 의도는 흔들리게 된다. 결국, 실험정신과 원대했던 포부는 옅어지고, 익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그저 그런 실패한 파일럿 예능으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방향과 진단에도 전적으로 동의하니, 모처럼 나타난 다음 버전에 대한 탐색 의지가 좌절되지 않도록 한 번 더 가다듬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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