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거슬러 함께 만난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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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KBS 제주방송총국 현재성 PD] KBS 이중섭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 다큐 드라마 2부작 ‘중섭’

지난 봄,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중섭>의 제작회의. 아침 비행기로 제주에서 올라 온 나는 두 시간 가까이 내가 생각하는 <중섭>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진지한 척 하며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회의 막바지에 한 스태프가 말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같다”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죽도록 고생하게 생겼다”라고 읽었어야 했다.

2부 오프닝을 찍는 과정만 착실하게 옮기면 제작기를 대체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믿고 옮긴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드라마 2부작 <중섭>’의 2부 오프닝은 어린 중섭이 숲 속에서 무언가에 쫓겨 달아나다 동굴을 찾아내고, 동굴 안을 헤매다 삼족오 벽화를 발견하나 이내 동굴이 흔들리며 균열이 일어나고 삼족오가 벽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설정이다.

일단 우리는 동굴을 찾아야 했다. 로케이션 매니저 따위는 없다. 촬영감독과 연출자가 본인 차를 끌고 제주도내 천연동굴을 수소문하며 다녔다. 촬영 며칠 전 겨우 찾은 동굴. 문제는 조명 발전차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점. 소형 발전기를 불러야 했으나 제주도내에 마땅한 것이 없어 무거운 구형 발전기를 임차했다.

▲ KBS 이중섭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 다큐 드라마 2부작 ‘중섭’ ⓒKBS

구형 발전기를 옮겨야 하나 인력이 없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동굴 근처의 지인이 주민들을 몰고 왔다. 주민들은 과거 자신들이 다녔던 숲길을 찾아내 감귤 운반용 트랙터에 발전기를 싣고 운반하기로 한다. 하지만 숲길이 오래되어 풀이 무성하다. 누군가 어느 베트남 전쟁영화에서 봤던 칼인지 도끼인지를 가지고 나와 길을 내기 시작했다.

동굴에 겨우 닿았지만 이미 촬영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다. 흠뻑 젖은 스태프들과 며칠 전 겨우 휴대폰 오디션으로 뽑은 어린 중섭을 위해 스크립터 역할을 하던 이가 도시락을 사러 갔고 우리는 촬영을 시작했다. 연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눈빛은 좋은 어린 중섭은 고무신을 신고 숲 속과 동굴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비는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굴 밖에선 모기가 굴 안에선 박쥐가 달려들었다. 아무도 잘 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찍어야 했다. 어린 중섭이 동굴 안에서 삼족오 벽화를 발견하는 장면.

삼족오 벽화를 벽에 그릴 수가 없어서 추후 CG 작업을 통해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삼족오가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미술팀도 있고 효과팀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다. 사전에 충분히 준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사후에 충분히 만회해야 하지만, 사후에도 물론 충분한 건 없을 것이었다.

‘일단 찍자’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 사실 가장 위험하다. 조명 스태프 중 한 명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동굴 천장 날카로운 돌에 머리를 찍힌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몇 컷 더 하고 병원으로 떠났다. 그는 몇 바늘 꿰매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스크립터가 숲 속을 헤치며 가지고 온 도시락을 우리는 동굴 안 박쥐 배설물 위에서 맛있게 나눠 먹었다. 새벽 5시에 모였으나 오후 3시에 한 첫 식사였다.

▲ KBS 이중섭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 다큐 드라마 2부작 ‘중섭’ ⓒKBS

동굴을 벗어나 몇 시간, 출발지로 돌아왔다. 이미 해는 저물고 모두가 흠뻑 젖은 상황 다음 촬영장으로 급히 가야 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촬영감독이 제작비를 아끼겠다고 직접 몰고 나온 화물차가 비 온 진흙탕에 빠진 것이다. 보험 서비스를 불러 차를 빼내기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시 주민들이 몰려왔다. 사륜구동 차에 끈을 연결하고 모든 스태프가 밀고 당기며 겨우 차를 빼내었다.

이미 한 시간 이상 허비했다. 우리는 급히 다음 촬영지인 제주대학교 미술대학 지하창고로 무겁고 젖은 몸을 옮겨야 했다. 한시라도 지체하면 촬영일 내에 마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제주라는 특성상 하루가 지체되면 모든 장비와 인력에 대한 임차료, 스태프들의 진행비와 숙박비 등이 2~3일 늘어나게 되기에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중섭>을 만들면서 그냥 기존 드라마를 흉내 내고 싶지 않았다. 재연드라마처럼 찍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과 자본, 결심이 필요했고 우리는 결국 ‘우리가 찍고 싶은 대로 찍자’는 큰 원칙을 세우고 일을 진행해 나갔다.

다른 건 몰라도 카메라와 조명, 장비 등 비주얼에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우리가 반드시 찍고 싶은 장면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20번 이상 테이크를 가면서 찍었다. 조명팀은 영화판에서도 보기 힘든 조명을 아낌없이 밝혀주었고 배우들은 헌신적으로 몸을 던졌다. 스태프들의 절반 가까이가 엑스트라로 투입되기도 했다.

아무런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중섭 혼자 방에서 나가 거리를 헤매고 은지화를 완성하는 과정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2분 넘게 이어진다. 중섭과 남덕의 결혼 장면은 과감하게 한 컷으로 밀고 나갔다. 아이의 장례식에서 여배우의 오열은 30분 가까이 이어졌고 중섭이 죽음을 맞이할 때 주연배우는 정말 죽을 정도의 컨디션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편집실에서 이 장면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다시 이런 작품을 또 하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다시 만들겠다고 하겠다. 물론 로케이션 매니저, 섭외담당자, 스크립터, 제작부, 현장 진행팀, 짐꾼 알바, 밥차가 있었으면 더 수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게 모자라니 모든 부분에 온전히 우리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스태프들에게, 선후배들에게, 손해를 감수하고 달려와 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대신 약속을 하고 싶다. 다음 작품도 이렇게 재밌게 만들어 보자고.

▲ KBS 이중섭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 다큐 드라마 2부작 ‘중섭’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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