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설거지 하는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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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주부” 논란이 뜨겁다. 한진해운 청문회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국회의원들의 질타에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다 나와 전문성이 부족했다”는 최은영 전 회장의 말이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앞 다투어 선량한 ‘주부’를 폄하하는 발언이며 많은 주부들이 이 말에 뿔이 났다는 보도를 했다. 그리고 국민의당은 이 발언에 대해 ‘전국의 가정주부를 모독하는 발언’이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가정주부 폄하와 모독이 최은영 전 회장의 발언으로 지금 처음 나타난 것인가. 아니다. 우리 사회와 언론은 늘 기혼 여성을 솥뚜껑 운전사로 부르며 주부를 폄하하고 모독해왔다.

기억해 보라. 최은영 전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비슷한 시기에 각각의 해운업이 어렵게 된 올 4월에 언론은 앞 다투어 “회장님 된 사모님…‘닮은꼴 퇴장’”, “최은영 회장은 그 전까지 가정 주부였다. 아무런 경영수업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운운하며 이들이 가정주부로 있다가 나와 전문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 4월 27일 채널A <종합뉴스> ⓒ채널A 화면캡처

심지어 한 종편(종합편성채널)은 이 둘의 기구한 공통점을 짚어 본다고 하면서 현정은 회장에 대해서는 남편을 사별하자 ‘주부 생활을 청산하고 현대 상선을 진두지휘했다’고 했으며 “명문가 출신으로 경영 참여 전까지 가정주부였다가 '금녀의 영역'인 해운업에 뛰어들어”라는 보도를 내 놓기도 했다. 결론은 최 전 회장이 “가정주부” 운운하게 만든 것이 바로 언론이라는 것이다.

주부를 폄하한 것이 어디 언론뿐이던가. 이번 최 전 회장이 가정주부 운운한 것에 대해 논평을 낸 국민의당은 “수익은 재벌 회장만큼 받지만 책임은 가정주부만큼 지겠다는, 한진해운의 경영악화와 법정관리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후안무치한 발언"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도 가정주부를 폄훼하고 있다. 이는 가정주부가 지는 책임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명백히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가정주부를 보는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여성을 보는 시각이 여기에 담겨있다.

우리 사회에서 주부는 어떤 존재인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트리오’ 광고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주부는 결혼을 하면서 설거지를 시작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 자라서 다시 아이를 낳아 데리고 올 때까지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다. 무려 50년 동안 싱크대를 떠나지 않고 말이다.

이런 광고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포장돼 보여지고, 그러한 여성이 칭송받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다. 때문에 최 전 회장이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이 비전문가임을 강조하며 ‘가정주부’를 팔 수 있는 것이다. 즉, 집안 살림만 하는 사람은 희생의 아이콘으로 포장되어 칭송받을 수 있을망정 전문가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전 회장이 비전문가이고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오너인 것은 맞다. 그리고 그녀의 책임 회피적이고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는 당연히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비난 이전에 가정주부를 폄훼하고 있고 이를 책임 회피의 방패막이로 삼아도 용인 될 것 같은 우리 사회와 언론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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