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의 죽음, 공영방송에선 사라진 진실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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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잇따르는 ‘외인사’ 지적에 ‘곁눈질 보도’…또 하나의 세월호 만들기?

9월 25일: 백남기 농민 사망→ 9월 26일: 법원, 검찰의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청구 기각. 검찰, 진료기록 확보 위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 및 압수수색 진행→ 9월 27일: 검찰, 부검영장 재청구. 유족, 법원에 ‘부검 불필요’ 의견서 제출→ 9월 28일: 법원, 조건부 시신 부검영장 발부. 백남기 투쟁본부 부검 반대 발표 기자회견 →9월 29일: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와 의료기록 불일치 사실 확인→ 10월 3~4일: 주치의 vs 서울대, 서울대 의대 합동조사특별위원회 “병사” vs “외인사”

위의 내용은 지난해 11월 민중 총궐기 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이 지난 9월 25일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사인(死因)을 둘러싼 논란이 전개된 과정이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물대포 때문이다 아니다, 병사(病死)다 외인사(外因死)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찰은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명확히 밝히겠다며 부검영장을 청구했고 이에 대해 유족은 ‘증거 영상과 그동안의 의료 기록들을 통해 경찰의 과잉진압과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확실하므로, 더 이상의 부검은 불필요하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백남기 농민 사건을 대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 행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곁눈질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현재 지상파 방송사들의 ‘백남기 보도’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 가고 있다.

▲ 10월 3일 KBS <뉴스 9> ⓒKBS 화면캡처

백남기 농민 사망 당일…KBS는 무(無)보도, MBC는 26초 단신

우선 KBS는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뒤에도 4일 동안이나 무보도로 일관했다. 9월 29일에 KBS는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관련 소식을 다뤘지만(▶법원, 이례적 ‘조건부’ 부검영장 발부…또 다른 논란) 단 한 번도 ‘물대포’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MBC는 어땠을까. MBC의 경우 백남기 농민 사망 당일인 9월 25일 곧바로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에서 관련 소식을 보도하기는 했다. 사망과 연관된 핵심적인 요소인 ‘물대포’도 언급했다. 하지만 개괄적인 내용만 26초짜리 단신으로 전하는 데 그쳤다. MBC 역시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물대포 농민’ 백남기 씨 사망, 부검 여부 논란)

달랐던 건 SBS였다. 일단 부검 여부와 영장 발부를 놓고 유족과 경찰이 대립 중인 상황을 다룬 것은 타 방송사와 같았다. 그러나 공영방송들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 즉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 백남기 농민이 중상을 입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보도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물대포에 맞고 있는 사진까지 제시했다.

‘해당 방송사가 특정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리포트 배치 순서에서도 타방송사와 SBS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KBS와 MBC가 메인 뉴스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한 리포트를 각각 10번째, 15번째로 배치했던 것과는 달리, SBS <8뉴스>는 해당 리포트를 그날 전체 리포트 중 비교적 앞 순서인 3번째에 배치해 보도했다.

▲ 9월 29일 SBS <8뉴스> ⓒSBS 화면캡처

외인사와 병사, 논란에도 답은 정해져 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이슈는 9월 29일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백남기 농민의 의료기록과 사망진단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날 SBS는 단독 입수한 백남기 농민의 의료 기록을 입수·분석해 보도했다. (▶[단독] 사망진단서와 다른 의무 기록…원칙 어긴 병원)

SBS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시위 현장에서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병원에 이송됐을 당시의 뇌 CT(컴퓨터단층촬영) 기록과 수술 기록지에는 두개골 골절, 외부로부터 (뇌로) 공기가 들어온 흔적, 뇌출혈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즉, 진료 기록을 보면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외인사’인 게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의 사망 이후 공개된 사망진단서에는 외부 충격을 뜻하는 ‘외상성’이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의사협회 지침에 따르면 두개골 골절 같은 큰 상처가 있는 경우엔 ’병사‘ 판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법의학 전문가 등 의료계에서도 ‘외인이 작용했으면 아무리 합병증이 오래 됐어도 외인사가 맞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과 주치의 측이 ‘사망 6일 전 발생한 급성신부전증이 사망의 원인이니 ‘병사’가 맞다’고 반박했지만, 해당 리포트가 SBS 홈페이지에서 5만 회 이상의 이례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논란은 커졌다. ‘사망진단서 작성에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러나 주치의가 입장을 발표하기 전까지 KBS와 MBC의 메인뉴스에선 백남기 농민 관련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치의가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한 3일, 다시 백남기 농민 소식이 KBS‧MBC의 메인뉴스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이 중 KBS는 특히 리포트의 대부분을 주치의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할애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대병원 “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문제없다” 10월 3일 KBS <뉴스9> 보도)

KBS의 해당 리포트에는 관련자 인터뷰가 4개 인용됐는데, 그 중 3개가 주치의나 주치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윤성 특위위원장의 발언들이었다. 총 1분 44초의 리포트 중 1분 20초를 주치의의 주장과, 이와 관련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할애했다.

또한 분명히 백남기 농민 사인에 대해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이윤성 특위위원장 “저라면 ‘외인사’라고 썼을 것”)와 주치의 간 입장이 사실상 갈렸음에도, KBS는 백남기 농민 사인에 대한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와 주치의 사이의 입장 차이를 충분히 다뤄주지 않았다.

3일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 교수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온 이윤성 특위위원장은 “(사망진단서가)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다”, “저라면 ‘외인사‘라고 썼을 것” 등의 발언을 했다. 또한 같은 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선 “서울대가 꾸린 특별조사위원회의 대체적인 의견이 외인사라면 지금 서울대 의견은 외인사라고 해석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손석희 앵커로부터 받고 “그렇다”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서울대와 서울대병원 특위의 입장은 사실상 ‘외인사’인 것이다.

그러나 KBS는 해당 리포트에 ‘서울대병원 “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문제없다”’는 제목을 붙여 마치 서울대병원 측이 (백남기 농민 사인이 ‘병사’라는) 주치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듯 보이게 했다.

리포트에 삽입된 이윤성 위원장의 인터뷰 2개도 주치의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내용과 주치의가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MBC가 백남기 농민 사인에 대해 특위와 주치의의 입장이 갈린다는 점을 제목에서부터 강조해서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백남기 ‘사망진단’ 논란, 특별위-주치의 입장 갈려 10월 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하지만 3일 이후, KBS나 MBC 모두 메인 뉴스에서 ‘병사라는 주치의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경찰이 주장하는) 부검을 반대한다’는 유족 측 입장을 심층적으로 전달하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결국 두 방송사 모두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곁눈질 보도’를 한 셈이다.

반면 SBS <8뉴스>의 경우, KBS나 MBC와 마찬가지로 3일에는 병원 측 입장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했지만(▶백남기 주치의 “진단서 작성에 ‘외압’ 없었다”) 다음 날인 4일에는 유족 측 입장을 자세히 전달하는 보도를 해 (▶백남기 유족, ‘병사’ 발표에 반발…“수정 요구”) 공영방송들의 메인뉴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 10월 3일 MBC <뉴스데스크> ⓒMBC 화면캡처

“오히려 유족들이 비난당하는 현실”

미디어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의제 설정’이다. 미디어 스스로 주목할 만한 의제를 발굴하고, 그 의제에 대한 충분한 사실을 제공해 대중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그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할 때 ‘의제 설정자’로서 그 책임성이 더욱 무겁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KBS와 MBC는 대중들이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충분한 사실을 접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책임, 의제설정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이후,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왜곡 보도’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러 종편 채널에서 ‘민중총궐기 대회가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지키지 않았다(9월 26일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김병민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면서, 정작 경찰의 과잉 진압이나 시위 현장에 경찰 버스를 세워 집회 자체를 원천 봉쇄한 점에 대해선 침묵하는 보도 행태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KBS와 MBC의 ‘곁눈질 보도’가 맞물려 ‘역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뜨린 물대포의 존재, 그의 ‘외인사’를 입증할 증거들, 유족들의 부검 반대 이유 등은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과 무관한 쪽으로 관심이 쏠려 유족들이 비난을 받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이들이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할까.

2014년 세월호 침몰 이후 몇몇 언론들은 유족들을 잠시 동정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자식(가족)을 앞세워 보상을 받으려는 집단으로 묘사했으며, 국론 분열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316일 동안 언론의 외면 속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백남기 농민이 숨을 거뒀고, 진상규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유족들에 대해 ‘패륜’ 등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실의 확인을 위해 나서야 할 언론은 어느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자리, 진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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