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과 관련 이상한 언론보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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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이럴 거면 차라리 외면과 무관심이 더 낫지 않을까

“지난 10개월간 국내 주요 방송사는 고 백남기 농민을 외면했다.” 지난 5일 발행된 <미디어오늘> 1면 기사 ‘누가 백남기를 죽였나, 언론은 질문을 포기했다’의 첫 문장이다. <미디어오늘>은 “왜 백씨가 상경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백씨 유족이 어떤 요구를 해왔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언론 태도를 질타했다.

‘그랬던’ 언론이 검경의 ‘부검 공세’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모드’로 전환했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엉뚱한 쪽으로 진행됐다. 이럴 거면 차라리 외면과 무관심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 많은 언론보도가 너무 많았다. 이 글은 ‘그런 보도’를 기록 차원에서 남기기 위한 목적임을 미리 밝힌다.

#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상한’ 칼럼

“317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가족의 거부로 합병증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에 서울대병원이 ‘병사(病死)’로 기재한 게 옳은지 아닌지는 의료인들의 기술적인 논란일 뿐이다.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 10월 5일 <동아일보> 30면

지난 5일 <동아일보> 30면에 실린 ‘백남기 씨와 이언 톰린슨’이라는 칼럼 가운데 일부다. 이 칼럼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특히 위에서 인용한 이 부분은 정말 문제가 많다.

송평인 논설위원은 백남기 농민이 “317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가족의 거부로 합병증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이라고 사실상 단정했다.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사안을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도 논란이지만, 송 위원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앞 문장에선 백남기 농민이 “가족의 거부로 합병증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것처럼 표현해 놓고, 바로 다음 문장에선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독자를 바보로 아는 것일까? 대체 이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송평인 위원의 진짜 생각은 대체 무엇일까?

# ‘영장에 제시된 조건은 의무사항’ 발언은 쏙 뺀 KBS뉴스

“유족과 협의해서 부검하라는 영장에 대해 여야의 해석은 갈렸습니다.
<녹취> 주광덕(국회 법사위원/새누리당) : 부검을 실시하라는 것이 원칙인 것이고 이러이러한 사항을 부가적으로 고려해서 부검을 집행해달라.
<녹취> 백혜련(국회 법사위원/더불어민주당) :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고 경찰이 압수 수색 검증을 한다면, 그건 위법한 겁니다. 그렇죠?
유족과의 협의가 결렬되는 상황에 대해서 법원은 즉답을 피했습니다.
<녹취> 강형주(서울중앙지방법원장) : 재판사항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장이 답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일 KBS <뉴스9> ‘앵커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조건부 부검 영장’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강형주 법원장이 영장 집행과정에서 영장에 제시된 조건을 이행하는 건 ‘의무 규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일(5일) KBS <뉴스9> 앵커 리포트에선 이 발언만 쏙 뺀 채 보도됐다. 유의미한 발언이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는데도 굳이(!) 그 발언을 외면한 KBS는 “오늘(5일) 국정감사장에서도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효력을 놓고 여야 공방이 벌어졌다”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법원은 이 제한조건이 꼭 지켜야 하는 의무 규정임을 인정했다”(10월5일 SBS <8뉴스>), “서울 중앙지방법원장은 영장 집행과정에서 영장에 제시된 조건을 이행하는 건 '의무 규정'이라고 밝혔다”(10월5일 JTBC <뉴스룸>)는 타방송사 뉴스와 비교해 봐도 KBS의 리포트는 이상했다. 왜 그랬을까? 혹시 손석희 앵커가 언급한 것처럼 강형주 법원장의 발언이 “경찰에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10월 5일 KBS <뉴스9> ⓒKBS 화면캡처

# 백선하 교수 발언 위주로 기사 구성하고 제목 뽑은 중앙일보

“백남기씨 연명의료 중단으로 사망, 단순 심폐정지 아니다.”

10월4일 <중앙일보> 10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서울대병원과 주치의가 지난 3일 고 백남기 농민 사망원인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내용을 다뤘다. 그런데 문제가 많다.

<중앙일보> 제목 자체가 유족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주치의의 일방적인 입장인 데다, 기사의 상당 부분도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는데 무게중심을 뒀다. △특별조사위원회가 ‘백남기 농민의 사인 판정이 대한의사협회 지침과 다르게 작성됐다’고 평가한 점 △“외인사로 기재됐어야 했다고 믿는다”는 이윤성 특위위원장의 의견이 기사에 포함되긴 했지만 작게 취급됐다.

같은 날 대다수 언론들이 이윤성 위원장과 주치의 입장을 논란 중심으로 다룬 것과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중앙일보>의 이 기사는 최소한의 기계적 형평성은 물론 공정성도 담보하지 못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 도심 시위 중 쓰러졌다 숨진 백남기씨? 이상한 MBC ‘뉴스데스크’

“도심 시위 중 쓰러졌다 숨진 백남기 씨 부검 문제를 놓고도 여야의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부검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국감 증인으로 부르자고까지 주장한 야당은 상설특검 요구안을 제출했습니다.”

10월5일 MBC <뉴스데스크> ‘고 백남기 부검 공방…특검 요구안 제출’ 리포트 가운데 일부다. 인용한 부분은 앵커 멘트인데, 필자가 보기에 이중 “도심 시위 중 쓰러졌다 숨진 백남기 씨”라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고 백남기 농민은 도심 시위 중 쓰러진 게 아니라 “도심 시위 도중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졌기” 때문이다.

차이가 뭐냐고 반론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차이가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원인과 관련해 ‘경찰 책임’ 여부가 핵심인 상황에서 “도심 시위 중 쓰러졌다 숨진 백남기 씨”와 “도심 시위 도중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제 많은 보도’로 언급됐던 같은 날(10월5일) KBS <뉴스9> 리포트에서도 앵커멘트에선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진 백남기 씨가 사망한 지 오늘(5일)로 열흘이 됐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고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이상한’ 언론보도들을 모아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도할 거면 차라리 외면과 무관심이 더 낫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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