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ntsmark0|송두율씨를 만난 적 있다. mbc에서 제작한 <한민족 네트워크>라는 프로그램의 현지 코디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사모님이 내오신 시원한 수박 화채가 기억에 남는다.
|contsmark1|
|contsmark2|
그는 베를린 남쪽에 독일어로 ‘보눙’이라 부르는 연립주택의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다. 공작금 받아쓰는 사람이 살기에는 좀 누추한, 그쪽 기준으로 보면 대충 서민층의 생활수준이었다. 아울러 그가 독일사회에서 교민, 유학생들과 갖는 만남의 양상도 지금 보도되는 그 무시무시함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contsmark3|
|contsmark4|
송두율은 주사파가 아니다. 황장엽은 자신이 송두율을 가르쳤다고 하나, 솔직히 황장엽은 송 교수를 가르칠 주제가 못 된다.
|contsmark5|
|contsmark6|
송두율과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그와 전혀 의사소통에 지장을 느끼지 않았다. 한 가지, 벽을 느낀 점이 있기는 하다. 내가 ‘시민사회’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언제 우리한테 시민사회가 있었다고...”라고 가볍게 일축했다. ‘시민’보다는 ‘민족’이라는 범주가 더 실체적이라는 얘기인데, 이때 비로소 나는 그의 민족주의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제 삶의 결정적 시기였던 70년대를 사는 듯 했다.
|contsmark7|
|contsmark8|
박정희 시절에 조국을 떠난 사람과,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까지 겪고 독일로 온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해외에 사는 교민들은 종종 한국에 사는 이들보다 사고방식이 더 보수적이다. 6, 70년대에 자신들이 본 한국사회의 특성을 아예 ‘한국적인 것’으로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contsmark9|
|contsmark10|
송 교수 역시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 항쟁, 87년 노동자 투쟁 등 민중운동의 성과를 ‘몸’으로 깨닫지 못 한 듯 했다. 하긴, 들어와서 좀 보기라도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contsmark11|
|contsmark12|
그의 친북 성향은 사상의 자유로 인정해 줘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대로 사상의 자유는 ‘다르게 생각할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옳지 않다면, 그것은 논쟁과 비판으로 해결할 일, 사법적 잣대를 들이댈 문제는 아니다. 송두율씨의 오류는 개인적 오류가 아니라 일종의 ‘세계사적 오류’다.
|contsmark13|
|contsmark14|
이는 그에게 전향을 강요할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 논리적 과제다. 그의 고해성사를 요구하는 요란한 목소리들은 푸코가 말한 ‘사목권력’처럼 촌스럽게 폭력적이다.
|contsmark15|
|contsmark16|
송두율이 “역사상 최고의 거물간첩”이란다. 하지만 국정원과 검찰 조사에서도 그가 구체적으로 했다는 간첩활동에 관한 얘기는 없다. 김일성 죽었을 때 조문 간 거, 해마다 축전 보내 준 거, 노동당에 입당원서 써 준 것, 그리고 70년대 초에 2주 동안 교육받은 것. 무슨 밀봉교육이 2주 짜리 속성 코스이고, 무슨 간첩이 명절날 축전이나 보내고, 무슨 비밀요원이 김일성과 찍은 사진을 버젓이 신문에 공개하는가?
|contsmark17|
|contsmark18|
국정원에서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리더니, 검찰에서 넘겨받아 그의 숨통을 물고 늘어진다. 이어서 보수언론의 콘돌 떼가 몰려들고, 하이에나 교수들이 게걸스럽게 그의 시체를 뜯어먹으러 달려든다.
|contsmark19|
|contsmark20|
법원의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한 개인에게 가하는 이 가공할 집단폭력과 인권유린 사태를 바라보며, 역설적으로 나는 송두율의 생각대로 우리 사회는 아직 70년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들 이렇게 잔인한가?
|contsmark21|
|contsmark22|
진중권 문화평론가
|contsmark23|
|contsmark24|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