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일하지 못한 자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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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감기] 최승호 PD와 정재홍 작가, 언론 본연의 역할에 대한 가장 강력한 환기

그를 만난 건 예닐곱 번 정도였다.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당시 <PD수첩> 메인 작가 6명 전원 해고됐을 때 처음 만났다. 정재홍 작가다. 이후 해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노조 집회 현장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눴다. 시간이 흘렀다. 올 초 술자리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구수한 말투로 물었다. “사람들이 많이 볼 까요?”라며 반신반의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의 막바지 작업 중이라고 했다.

어쨌든 맥주잔을 채우고 비우길 몇 차례. 정 작가는 얼마 후 처음 관객에게 <자백>을 선보이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그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최승호 PD와 그는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빠 보였다. 그리고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낯익은 이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 <자백>을 두고 탐사보도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에서 탐사저널리즘을 꽃피우는 데 공신 역할을 한 최승호 PD가 한국, 중국, 일본, 태국 4개국을 넘나들며 40개월 간의 추적 끝에 파헤친 간첩 조작 사건의 실체를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통해서 권력의 숨은 민낯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최승호 PD

<자백>은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과 아시아 영화평론가들이 주는 ‘넷팩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대중의 관심도 뜨겁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결과 약 1만 7200명이 후원에 참여해 약 4억원의 모금액이 모였다. 지난 13일 개봉한 이후 이례적으로 개봉 2주 만에 10만 관객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술자리에서 비친 정 작가의 걱정과 달리 <자백>은 미디어 안팎으로 꽤 많은 입 소문을 타고 있는 셈이다.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최승호 PD를 두고 “기사-출판-영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원소스 멀티유스 뉴스’의 전범을 그가 먼저 성취해버렸”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허지웅 영화평론가는 “<자백>은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짓을 실제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여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평했다.(<씨네21>) 유우성 사건 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부터 시작된 국정원의 간첩 조작의 역사적 흔적까지 훑는 <자백>은 작품 자체로도 드라마틱하지만, ‘일하고 싶었지만 정작 일할 수 없었던 이들’의 결과물이기에 특별하게 보인다.

<자백>을 이끈 최승호 PD와 정재홍 작가는 ‘탐사보도 콤비’라 부를 만하다. MBC 노동조합 파업 당시 해고되기 전까지 <PD수첩>에서 심층적이고 성역 없는 취재로 동고동락했던 이들이다.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을 제작해 탐사 보도 저널리즘을 일궜다.

▲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포스터

그러나 최 PD는 파업 도중 해고를 당했고, 12년간 <PD수첩>을 맡았던 정 작가 역시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을 옹호하고 노초 측에 가담해 회사를 상대로 싸웠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정 작가는 <PD수첩> 후배 작가들까지 해고되자 “탐사보도는 거악(巨嶽)과 싸우는 것이다. 전원 해고는 언론의 독립과 비판 기능을 저버린 행위”라며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자백>으로 뭉친 ‘탐사 콤비’ 최 PD와 정 작가는 ‘원 없이’ 일한 것처럼 보인다. 공영방송 MBC에서, 그리고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정작 그럴 수 없었던 상황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난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울림을 남긴다. 언론 본연의 임무는 권력 감시와 비판, 그리고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영화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최근 2012년 MBC 파업 당시 사측의 무분별한 징계와 전보 조치들이 법원에서 패소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일터에서 밀려난 또 다른 이들이다. <자백>은 언론인의 입에 재갈을 물렸지만 그들 또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볼까요?”라고 걱정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백>을 ‘찾아서’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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