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 감시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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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 ‘추적60분-지진 한 달, 긴급 원전 안전점검’

어렵지만 꼭 해야만 하는 아이템이 있다

지진 관련 원자력 발전소 안전 점검은 내용은 어려운데 전달은 버거운 아이템이었다. 활성단층, 지진 규모, 내진 설계 등 생소한 용어가 일단 공부를 요구한다. 원전을 운용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유리한 정보를 선별하여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진을 걱정하게 한 것은 ‘비판할 취재 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지나친 걱정이었다.

진동하는 원전마을, 흔들리는 주민안전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원전 근처 마을로 향했다. “지진이 나면 무조건 집밖으로 나오라는데, 우리는 과연 밖으로 나와도 되나 싶어. 원자력 사고가 나면 그게 더 무섭거든.” 월성 원전에서 1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러지도 못하는 상황. 경주에 사는 주부는 원전 사고가 나면 대피가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며 “사고가 나면 그냥 받아들여야겠다”라고 담담하게 말을 해서 제작진이 당황했다.

▲ KBS <추적60분-지진 한 달, 긴급 원전 안전점검> ⓒKBS

주민의 걱정과 체념은 근거가 있었다. 지진이 난 지 30분 뒤, 마을 초등학교로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달려갔지만 문은 잠겼고 불은 꺼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기를 40여 분. 그제야 지자체 담당자가 와서 교문을 열어주었다. 방사능 누출 사고를 대비해 마을회관에 비치해둔 ‘방재복’이 제때에 주민들에게 주어질지 의문이다. 주민들은 갑상선 방재약인 요오드 역시 마을에서 5km가량 떨어진 면사무소에 보관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과 일본은 원전 반경 5km내 주민들에게 약품을 배포해 각 가정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누군가가 편하게 관리하는 대신, 주민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수습 불가능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허술한 방재 시스템에 대한 주민 우려를 듣고 한수원 측은 이렇게 답했다. 충격적이었다. 수습 가능한 건 사고가 아니다. 수습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사고의 위험성은 우리를 덮치고 말 것이다. 예상을 초월한 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덮치던 장면을 우리는 목격했지 않은가.

한수원, 일반 국민 인식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한수원 안전 품질 최고 책임자 그룹이 연일 KBS를 찾았다. 적극 해명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의 말은 귀를 의심하게 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활성단층에 대한 정밀조사가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규정대로 하고 있다’였다.

그런데 그 규정을 누가 주도하여 만들었는가? 바로 한수원이다. 한수원은 지각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의 범위를, 학계의 의견을 외면한 채 미국 원자력 산업계의 개념을 준용하여 대폭 좁혀 원전을 지었다. 그 결과 가장 활성단층이 밀집한 곳에 원전이 들어섰다. 이번 지진충격으로 원전을 수동정지 했으면서도 지진이 일어난 단층이 한수원 기준에서 고려해야할 단층인지 누군가의 조사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한다.

▲ KBS <추적60분-지진 한 달, 긴급 원전 안전점검> ⓒKBS

정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지진 대비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원전 몇 개라도 일시 정지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한수원 측은 이에 대해 비용 대비 수익으로 설명했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테러나 사고 위험 가능성을 제로라고 확신하고 타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350만의 주민이 사는 지역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밀집한 원전을 가동하면서 비용을 따질 수 있는 걸까?

여름, 겨울 단 몇 달 빼고 전력 과잉 생산이 되는 상황이다. 다소간의 비용을 한수원이 피하는 대가로 국민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원전 사고를 비행기 사고에 견주는 것도 어이없지만, 공항에서의 보안 대책만큼이나 한수원은 안전 대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안전을 점검하겠다는 프로그램 의도를 알면서 비용 대비 수익을 언급하는 한수원 관계자들의 태도는 놀라웠다.

한수원은 지진이 발생하면 가동 정지를 결정하기 위해 계측기를 참조한다. 그런데 수동정지를 한 원전의 대표 계측기는 2014년부터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수원은 당시 지진을 겪고 나서야 알았는데 2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었다. 그 상태로 이번 지진을 맞은 것이다. 계측기가 말썽이니 원전 정지 여부를 가늠하는 충격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2014년 지진이 없었다면, 이번 지진이 규모가 컸다면, 다른 계측기 또한 이상이 있었다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렸다면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참사를 비켜갈 수 있었을까? 재앙은 몇 가지 불운이 겹쳤을 때 온다.

한국 원자력 발전소 안전은 왜 확신할 수 없게 되었나

첫째, 규정 만능주의이다. 한수원이 주도하거나 용역을 준 지질학계 보고서는 객관적으로 지진 위험을 지적하기에 한계가 있다. 산업부의 원자력발전 백서에서 원자력 지진대책 편을 쓴 사람이 한수원의 직원이다. 선수가 경기 룰을 정한 셈이다. 한수원에게 편한 규정을 지켰다는 것은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둘째, 비밀주의이다. 원전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원자력안전위원회 의원조차 안전에 대한 한수원의 일부 서류를 열람만 가능할 뿐, 제공받을 수 없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를 다른 전문가와 상의하여 충분히 검토할 수 없는 것이다.

▲ KBS <추적60분-지진 한 달, 긴급 원전 안전점검> ⓒKBS

이유는 영업기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김경수 의원실이 김성욱 박사를 자문해서 오류를 지적한 최대지진영향평가 역시 인허가 관련 문건이기 때문에 비공개였다.

규제를 받아야할 사람이 룰을 정하고, 이익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이라는 벽 너머에서 뭉쳐 감시를 따돌리는 것,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감시자도 뭉쳐야 산다

전문성을 방패로 원자력 산업계가 똘똘 뭉친 원자력 안전 관리 시스템을 투명하게 바꾸려면 감시인들의 연합이 필요하다. 시민단체, 정치인, 언론 등 다양한 주체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지속적으로 팀 플레이를 해야한다.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전문적인 역량을 키워 원전 안전에 대해 감시해온 시민단체, 국감을 통해 비밀로 묶여버린 내부문서의 문제를 끈질기게 파헤친 국회의원들의 활약 덕분에 짧은 시간에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공유를 통한 연합,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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