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시대, 어떤 미래를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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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CBS 라디오특집다큐 ‘확정된 미래, 1인 가구시대’

'1인 가구' 10년 차, 잘 살고 있냐고요?

10년 째 혼자 살고 있는 나는 한 편으론 마치 ‘혼자살기의 달인’인 듯 행동하지만 한 편으론 말 그대로 엉망진창, 기분 내키면 좀 건강하게 사는 척 굴다가 안 내키면 아무렇게나 ‘때우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근래의 일이었다. 약속을 잡지 않고 오롯이 집에서 쉬기로 한 어느 주말. 해가 기울어져 갈 때쯤 나는 내가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 입 한번 안 떼고, 단 한번 웃음, 아니 미소도 짓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구나.’ 아주 살짝 놀랐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혼자 사는 나 자신의 삶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떨 땐 고독하지만 많은 시간 자유로웠고 부지런하고 살뜰히 사는 것 같지만 동시에 혼자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혼자 살았음에도 정작 ‘혼자’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 그것은 명확했다. 그러니까, 혼자 그냥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 혼자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널부러져 방치된 나 자신을 보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1인 가구로 살고있는 사진작가 김승범씨 ⓒCBS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일단 그것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연구원의 자세로 내 주위에 넘쳐나는 1인 가구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원래 사람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언뜻 공통적인 모습들이 있었다. 나아가, 가족을 이루고 살지만 1인가구와 다를 바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네들 역시 두루뭉술한 어떤 고독과 서글픔을 마음에 품은 채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은 서로서로 닮아 있었다. 뭐랄까? 혼자를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싶어 하고, SNS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그게 진짜관계든 가짜관계든 탯줄을 잡듯 연결되고 소속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발버둥 치듯 혼자로부터 도피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관계에 지쳐있기도 했으니 묘한 아이러니였다.

1인 가구, 시장의 호갱이거나 예능의 아이템이거나

그런 우리의 모습들은 ‘옆사람처럼 사는 것’은 할 줄 알지만, ‘자립’은 할 줄 모르는 어른아이같았다. ‘혼밥 레벨테스트’라는 것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용기를 내야하는 일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살림의 디테일과 직면해야 하고 속칭 ‘결혼적령기’가 되면 당연한듯 묻는 ‘언제까지 혼자 살래’라는 말에도 의연해져야 한다. “혼자 살면 얼마나 좋아 자유롭고”라고 말하는 한 편과 “너같은 애들이 저출산의 원인이다”라며 혀를 차는 한 편 사이에서 1인 가구의 진짜 삶은 가려져있었다. 그저 혼자사는 사람들은 시장에선 ‘솔로이코노미 강세‘라는 이름으로 소비됐고, 미디어에서는 새로운 예능 아이템으로만 취급되는 듯 보였다. 그뿐이랴. 4인 정상가족 신화 위에 우리 사회의 공공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굳건했고, 지자체에서 짝짓기 이벤트를 주도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러니까, 개인들도 사회문화도 ‘1인 가구’라는 신인류의 등장에 이토록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매년 ‘나홀로 족’은 늘어나고 있다. 2015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형태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산다. 게다가 앞으로 매년 1인 가구의 머릿수는 전년도의 기록을 경신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홀로됨’을 벗삼아 살아가야 할 것이고 생애주기 속에서 ‘혼자 살기’란 놈은 잠복해 있다 불쑥 나를 급습하는, 적군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결혼을 했든 아니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능성이 돼버렸다.  

돌연변이종(種), 1인 가구. 등장과 함께 멸종위기

사실 개인들의 삶의 역사가 다 다른 것처럼 1인 가구 역시 혼자 살게 된 이유도, 살아가는 모습도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1인 가구들은 자신들을 흩어진 ‘점’처럼 여겼다. ‘지금의 나는 임시적인 상태일 뿐이야’ 혹은 ‘나는 외롭고 불행한 상태야’ 같은 생각을 하며 동족(同族)인 다른 1인 가구들과 연결될 노력을 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1인 가구들 중에도 몇몇 돌연변이들은 있었다.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고 지금의 나 역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나아가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다’가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들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 1인 가구는 이기적이고 혼자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를 향해 생존신호를 보내며 하나 둘 모이고 있었고, 재미난 기획들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

▲ 청년연대은행 토닥 김진회이사장 ⓒCBS

특징이 있다면 이런 모임들은 주로 자생적인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단 것이었다. 물론 이것 자체로도 나는 감탄했고 벅찼다. 하지만 이는 1인 가구가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빈곤 독거노인 지원’정책이다. 극빈층,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부조 성격의 제도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하지만 ‘독거노인 정책이 있으니 1인 가구들을 위한 안전망이 갖춰진 사회’라고 말할 순 없다. 게다가 독거노인이라도 가난하지 않으면 대개 이런 정책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혹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가족이라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을 단위로 만들어진 공적제도는 많은 ‘개인’들을 다양한 이유로 배제하고 있었다.

혹자는 ‘혼자 사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하다고’ 라고 말할지 모르나 이것은 1인가구에 대해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고용현황’에 의하면 1인 가구 중 절반은 미취업 상태이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상대빈곤율은 47.5%로 1인 가구 두 가구 중 한 가구는 빈곤상태이다. 절대빈곤에 처해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청년 1인 가구도 늘어 나고 있는 추세다.

이쯤되면 혹자는 ‘그렇게 힘들면 결혼을 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결혼이어야지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이것 역시 비극 아닌가. 살아가기 위해 ‘결혼‘이라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개인이 많아지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쪽방촌에서 1인가구로 살아가고 있는 윤용주씨 ⓒCBS

절박한 이야기가 많았다. 뭐랄까, 웃으면서 들려주는 이야긴데 말도 안되게 가슴 한 켠이 따끔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1, 2부에 비해 조금은 무거운 내용이 담긴 다큐의 3부 ‘1인 가구 시대 : 미룰 수 없는 숙제들’은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몇 번이나 원고를 다시 고치며 머리채를 쥐어뜯었지만 사실 연출자인 내게 가장 고맙고 소중한 방송본임을 이제와 새삼 밝혀본다.

1인 가구 시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언론인 이단 워터스의 책 <도시부족>(Urban Tribes)은 무척 흥미롭다. 대도시에 새롭게 등장한 이 부족은, 유대감과 취향을 공유하는 넓고 개방된 형태의 공동체이다. 이런 도시 부족이 늘어나면 혈연가족은 무의미해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부족이 늘어나는 1인가구 시대‘라는 말은 ‘타인과 연결되지 않는 침묵의 시대’라는 시나리오를 반박할 뿐이다.

<고잉 솔로>의 저자인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 역시 1인가구가 많아진 대도시는 또 다른 의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양한 문화와 담론들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모임과 공동체를 통해서 샘솟을 수 있고 더 민주적인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이 미래가 우리의 것이 될 수도 있다.

▲ 4부 ’바보야 문제는 혼자가 아니야’좌담 중인 김다은프로듀서, 방송인 다니엘린데만, 작가 곽정은, 사회학자 노명우(좌측부터) ⓒCBS

취재를 하며 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님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빨간약과 파란 약, 단 두 가지의 배타적 선택지만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1인 가구가 늘어난다고 혈연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들이 늘어나는 것에 너무 겁먹지 말자.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혈연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멋지고 좋은 것들은 언제나 공존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에 대한 단초들을 다큐에 담고 싶었다. 잘 담아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지 않아 아쉽다’이다. 다큐에 담지 못한 좋은 이야기가, 좋은 삶이 많았다. 그런 아쉬움과 고마움을 마음 속 깊이 넣어두고 잊지 않는 게 다큐멘터리 제작의 필연적인 과정 중 하나같단 생각도 든다.

혼자 살고 있는 내게 이 다큐가 미래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되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그렇지 않아 아쉽다’이다. 하지만 이 탐험의 기록이 어딘가에 있을 외로운 1인 가구에게 작은 힘이 되었길 바란다. 내가 다큐를 통해 확인한 것은 ‘정답’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었음은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1인 가구들을 포함해 다양한 개인들이 더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멋진 서식지가 될 수 있을까? 아직 빈칸인 답안지에 그래도 우리가 긍정의 고개짓으로 답하는 모습을 혼자 상상한다. 1인 가구 시대의 다음 장을 모두 함께 멋지게 채워나가길 바라며 짧은 제작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이미 유행했던 문장이지만 이 말을 기억하며 글을 줄인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 CBS 라디오특집다큐 ‘확정된 미래, 1인 가구시대’는 한국PD연합회 199회 이달의 PD상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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