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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바닥 지상파, 어쩌면 ‘마지막 기회’

[위클리포커스] 지상파 내부 구성원 안팎으로 고달픈 현실…“부역 언론인 청산이 우선” 구보라·이혜승·하수영 기자l승인2016.11.08 18: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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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국민께 마지막으로 사죄하는 기회로 알고 끝까지 싸우겠다”
(10월 31일 언론·시민 단체 비상시국대책회의 기자회견 당시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 본부장 발언)

KBS, SBS, MBC 내부 구성원들이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변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이미 차게 식어있다. “백날 말만 해봤자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상파는 이대로 무너지는 걸까, 혹은 위기를 기회로 넘길 수 있을까.

뒤늦게 ‘특별취재팀’ 꾸렸지만…여전히 차가운 시선

지난 7월 TV조선이 미르재단 의혹을 터뜨렸을 때도, 9월 <한겨레>가 최순실 관련 정황을 드러냈을 때도 SBS를 포함한 지상파 3사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이 시작됐다’ 등의 단순 사실전달과 ‘유언비어는 의법 조치하겠다’는 국무총리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그쳤을 뿐 관련한 심층 보도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후 10월 24일 JTBC가 태블릿을 확보해 ‘최순실 국정개입 정황’을 포착하고, 국민들이 일어나자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26일 3사 모두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나섰지만 이미 다른 언론사가 훑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 이미 신뢰를 잃은 지상파 뉴스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 ⓒ스타뉴스 기사 〈JTBC '뉴스룸', 시청률 4배 상승..MBC·SBS 눌렀다〉(10월 26일)에 대한 댓글

이런 상황 속에서 11월로 넘어오며 JTBC, TV조선 등 종편에서는 연일 ‘특종’을 터뜨리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지상파 뉴스에는 여전히 냉랭한 시선만이 돌아오고 있다. 이는 시청률로도 확인된다. 평균 1~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JTBC <뉴스룸>은 8일 9.1%를 기록하며 4배 이상 급등한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날 KBS1 <뉴스 9>, SBS <8 뉴스>, MBC <뉴스데스크>는 각각 18.6%, 4.8%, 5%의 시청률을 보였디. 종편과 지상파의 시청률 집계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지상파는 ‘요즘은 부모님들이 KBS 뉴스를 시청하고 있으면 자녀들이 알아서 JTBC, 하다못해 TV조선으로 채널을 옮겨드린다’, ‘기대도 안한다. 이미 KBS 안 본지 몇 년 째인지 모른다', ’KBS, MBC, SBS 공중파 방송들도 박근혜와 함께 하야해야 한다‘, ’아직도 KBS, MBC, SBS 뉴스 보는 사람들이 있구나...저들은 스스로 언론 포기한 거 아니었나‘라는 조롱까지 받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청계광장에서 있었던 집회 현장에서는 취재 나온 MBC 기자가 시민들에게 욕을 듣고 쫓겨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링크)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 본부장은 “SBS노조 결의대회도 기사화가 여러 군데서 됐다. 그런데 그걸 놓고 댓글로 질타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니들이 언제부터 기자였다고’, ‘이미 늦었다’, ‘때려치고 그냥 전부 JTBC로 가라’ 하는 댓글들이 있었다”라고 안타까워하며 “지난 몇 년 동안 쌓여온, 지상파 방송을 눌러온 적폐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단단히 박혀 있는 상태라 단시간 내에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이어진 언론탄압…자기검열로 이어진 내부 분위기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KBS, MBC 모두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고 덩달아 SBS까지 ‘눈치’를 보게 된 상황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지상파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튀지 말아라”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아왔다.

일부 국민들은 ‘낙하산 경영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SBS에 희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SBS 역시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 본부장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 그리고 광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이나 대기업, 그리고 사측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위축시키는 조직문화, 이런 것들이 계속 있어왔다”고 지적했다.

미르재단부터 최순실까지 이어진 이번 정국에서도 SBS의 경우 9월 20일 특별취재팀을 꾸려야 한다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윗선에서 잘렸다.

이대욱 SBS 공정방송실천위원회 위원장은 “현장 기자들 중 (최순실 건에 대해) 단서가 되는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카더라’ 수준이었다. 당시 (최순실 의혹이 불거져 나올 시기) 초반부터 취재했으면 분명히 뭔가 뽑아낼 수 있었겠지만 당시 SBS는 <한겨레>나 JTBC처럼 ‘너는 업무에서 빠지고 이거(최순실 건)만 취재해라’는 식의 분위기는 없었다”라며 “사실 내부에서는 ’위에서 의지를 안 보이는데, 이걸 취재해 말아?‘하는 식의 분위기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 9월 23일 '미르·K스포츠 ‘기부금 모금 의혹’ 여야 공방 격화', 9월 28일 '이정현 “野, 국민 속여 해임 건의”…‘미르 의혹’ 반박', 10월 14일 '마지막날까지 ‘미르’ 공방…中 선원 ‘흉기’도 등장', 9월 30일 '전경련 “미르·K스포츠 해산 후 통합재단 설립”' ⓒ화면캡쳐

KBS 역시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가 있은 후에야 26일 특별TF를 꾸리고 보도량을 눈에 띄게 늘렸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정수영 KBS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최순실) TF도 꾸려지고, 현장의 취재 기자들이 더 새로운 내용들을 밝혀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다만 대통령에게 향해야 할 문제제기에는 소홀하거나 무딘 게 아닌가”라며 “여전히 대통령 감싸기씩 보도의 행태를 여전히 버리지 못 하고 있다거나 야당이 문제제기 하는 부분은 ‘공방‘으로 처리하고, 국민들의 분노도 상세하게 보도하진 않는 경향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MBC는 더 심각하다. 아직도 윗선에서는 무엇이 잘못인지,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MBC 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MBC 보도국 게시판에 김주만 MBC 기자가 실명으로 올린 글이 MBC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기자는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기사 가치보다 윗선의 심기를 따지게 된 MBC 보도국 내부 분위기를 고백하며, 이로 인해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음을 한탄했다.

그는 게시글에서 “보도국장 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냐는 의문이 들 정도”라며 “논거가 빈약한 ‘김일성 가짜’를 뉴스로 만들라고 지시하고, 이를 거부하는 후배를 공개적으로 힐난할 수 있는 편집회의 분위기가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에 조능희 언론노조 MBC본부 본부장은 “김 기자가 올린 글이 모두 팩트”라고 말하며 “아직도 경영진 및 보도책임자들은 바뀌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반성이나 개선을 하려 하지 않고 박근혜를 어떻게 봐줄까 하는 보도만 나간다”고 지적했다.

2012년 김재철 MBC 전사장이 있던 당시 ‘170일 파업’을 거친 후 MBC 경영진은 내부 구성원들까지 입맛에 맞게 요리해왔다. 2013년 마지막 공개채용 이후 경력 채용을 통해서만 자리를 채우고, 회사에 저항하는 이들은 탄압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기자들끼리도 서로 공유가 되지 않는다는 한탄이 내부에서부터 나온다.

▲ 지난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 99일째, 한학수 PD가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PD저널

그래도, 그럼에도, 계속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내부 구성원들은 다시 힘을 내려고 한다. 타언론사 기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긴급한 정국에서 새로 터지는 사건에 목숨걸고 달려드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기자들은 우선 제작 자율성을 확보하는 일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각사 노조는 지난달 26일 타언론단체, 시민단체와 함께 비상시국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언론 진실 규명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섰다. 12일에는 언론노조, 언론시민사회단체와 함께 ‘2016년 비상시국대회’를 가지고 민중총궐기에 동참할 계획이다. 더불어 각사별로 ‘결의대회’를 가지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번 위기는 오히려 내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도 하다. 특히 SBS는 오랜 기간 자기검열에 빠진 분위기를 새롭게 다지기 위해 결의하고 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 본부장은 "'성역 없는 진실 보도' 밖에 방법이 없다. 시청률이나 경영상으로도 이런 길은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 (이번 JTBC 사례로) 증명됐다"며 "무엇보다 사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자기검열하고 눈치 보는 분위기를 바꿀 방안을 찾아보려 한다”고 전했다.

▲ 지난 8일 서울 상암동 MBC 로비에서 언론노조 MBC본부가 청와대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KBS와 MBC 구성원들은 언론탄압의 근본 원인이 되는 ‘부역 언론인 청산’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내걸고 "‘최순실’ 비리 의혹에 대한 전담TF를 구성하고 심층 취재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노측에 대해 보도본부장이 요구를 묵살했다"고 밝히며, 보도 참사를 일으킨 보도 책임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31일 KBS 보도본부장은 ‘최순실 낙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뜻만 있을 뿐' 여전히 사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KBS 노조는 지난 7일 성명을 내걸고 ‘유례없는 미 대선 뉴스특보로 관심을 돌려보려 하는 점’, ‘최순실 국정논단에 대한 편성이 부족한 점’, ‘여야의 틀에 가둬 보도하는 물타기식 보도행태’ 등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보도 책임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KBS는 8일부터 비상대책위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더불어 다음 주부터는 고대영 KBS 사장의 1년 성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어 24일에는 총파업 투표와 보도본부장 신임 투표를 가진다.

MBC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부역 언론인 청산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7일 김주만 MBC 기자는 게시글을 통해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과 편집회의 간부들의 퇴진으로 시작돼야 한다. 보도국에서 찍어냈던 모든 기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10일 오후 ‘MBC 방송 정상화를 위한 전국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청와대 방송 중단, 책임자 사퇴를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MBC노조 본부 집행부와 서울지부 집행부는 천막 농성에도 돌입했다.

이 역시 단기간에 끝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MBC는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지리한 싸움을 계속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조능희 언론노조 MBC본부 본부장은 “우리는 5년째 싸우고 있다. 계속하던 일이다. 결국 인사권, 경영권을 가진 이들은 나라가 망하든 어떻게 되든 버티고 있지 않나. 우리는 계속해서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19일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편을 다룬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트위터 공식계정

#그런데_박근혜는?

하지만 진정으로 지상파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고, ‘진짜 중요한 일’에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언론단체 비상대책위에서 10대 과제를 선정하고 내건 것처럼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조명하는 데에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11월 이후 지상파에서도 최순실, 우병우 관련 검찰 수사와 추가 의혹에 대한 보도가 연속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국정농단’이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여전히 성역처럼 다루는 자세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 비로소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일, 26일 연속으로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상파가 ‘이미 다 한 얘기’라는 비판을 딛고 새로운 출발을 알릴 수 있을지 지켜볼 시점이다.


구보라·이혜승·하수영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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