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이후 라디오의 가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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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라디오 포럼] 재난과 라디오

지난 9월 경주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지진 이후, 한국에서도 재난방송과 위기 대응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증폭됐다. 이에 한국PD연합회(회장 오기현)는 재난 매체로서의 라디오에 대해 주목하며, 지난 25일 ‘재난과 라디오’를 주제로 넥스트라디오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본의 재난방송 법제도와 라디오 재난방송 매뉴얼, 실제 방송 사례들을 발표하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재난 매체로서 라디오의 가치를 재발견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주> 

▲ 25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린 ‘넥스트 라디오 포럼’에서발표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재난 매체로서 라디오의 가치를 재발견했다고 강조했다.ⓒ김성헌

한영학(일본 훗카이가쿠엔대 법학부 저널리즘론 교수)= 일본은 국가 위기관리에서 재해 대책이 가장 핵심이다. 따라서 민관이 협력하여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체제가 잘 구축되어있다. 재해대책기본법, 기상업무법과 방송법을 통해서는 NHK뿐만 아니라 민영방송도 방재에 대한 의무를 지며 기상청 또한 방송사와 긴밀하게 협력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실제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도 신속하게 재난 예보와 경보가 전해진다. 특히나 일본만의 독특한 제도인 ‘임시재해방송국’을 통해서 재난발생 지역에서 지역민들이 직접 FM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안부, 급수, 취사, 피난소, 라이프라인 등의 지역 밀착형 소식을 전할 수도 있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발생시에도 최대 30국이 설치되어, 피해 지역민들을 위한 피해정보, 생활정보, 행정정보 등을 전달하는 미디어로 주목받았으며 올해 4월에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 당시에도 설치됐다.

이처럼 라디오는 재난 초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들을 알릴 수 있는 매체로 작동하는데, 미야기현 연안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정보원으로 응답자의 61.9%가 ‘라디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재난매체로서의 라디오의 중요성이 다시금 환기됐다.

▲ 〈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야기현 연안부 피재지 앙케이트 조사 ‘종합적으로 매우 도움이 된 매체’ (대상 가설주택 거주자 500명, 연안부 주민 인터넷조사 협력자)ⓒ한영학
▲ 25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린 ‘넥스트 라디오 포럼’에서 한영학 교수가 가 일본의 재난방송과 관련한 법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헌

스즈키 도시오(일본 붕카호소의 보도 데스크)= 우선 재난 예보 또는 경보를 기상청으로부터 전달받으면 즉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서 보도를 내보낸다. 특히나 일본의 수도권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도쿄에 있는 붕카호소, NHK 라디오, TBS 라디오 등 도쿄의 7개 라디오 방송사가 수도국·전력·가스사 등 주요 라이프라인 5개사와 ‘라이프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재난 복구 과정을 알려준다. 또한 방송국 안에도 지진을 측정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으며, 본사 방송국 외의 다른 지역들에도 방송 시스템을 구비해두어, 방송국 직원 중 기자가 아니더라도 긴급상황시 재난 상황을 전하도록 해뒀다. 이를 위해 평소에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앞서 한영학 교수가 언급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진 직후 라디오 매체가 가장 주요한 정보 매체다. 당시 쓰나미가 발생하여 전력이 끊긴 상황에서도 라디오는 건전지 두 개만 있으면 켜지기에 피해 지역민들이 소식을 듣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그 당시 다른 방송사와 협력하여, 청취자들부터 받은 휴대용 라디오들을 피해지역에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매체가 발달하면서 라디오의 필요성을 못 느끼던 사람들도 다시금 라디오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방송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라디오는 정보 제공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위안까지 전달해준다는 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평소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DJ가 재난 소식을 전하고, 지진 발생 이틀 후에는 고심하여 조용한 노래들도 틀었다. 그러자 청취자들로부터 ‘매일 즐겨듣던 프로그램의 DJ가 재난소식을 전하고 위로를 건네니 더욱 더 힘을 얻었다’, ‘틀어주는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흐른다’, ‘위안을 줘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를 통해 라디오 방송에서 재난 소식을 전하는 일에 대해 중요성과 보람을 느꼈다.

▲ 25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린 ‘넥스트 라디오 포럼’에서 붕카호소(문화방송)의 스즈키 도시오 보도 데스크가 일본 재난 방송 매뉴얼과 실제 방송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김성헌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이 날 포럼에 참석한 기자, PD 등 언론인들로부터 질문들이 이어졌다. 다음은 자유토론에서 나온 일문일답 내용이다.

Q. 재난 발생시 무엇보다도 지역밀착성 보도가 가장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지역밀착성이 실제 보도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궁금하고, 재난보도 전후, 시민들의 라디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다.

A. 라디오의 역할은 피해지역에 정보를 전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들의 일상적인 생활이 얼마나 지켜지고, 물은 나오는지, 가스는 나오지, 전철은 이용할 수 있는지 등 생활에 밀착된 부분을 알리는 게 필요하다. 그렇기에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 피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TV와 비교할 때 라디오는 조금 더 지역 밀착라디오가 그런 부분을 충족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난방송 후에 라디오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 하던 사람들도, 2011년 동일본 재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라디오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체감하게 됐다.

Q. 건물이 파손된 상황에 대한 대비는 있는지?

A. 본사가 붕괴되더라도 본사 스튜디오 이외에 국회, 수상관저, 도쿄도청, 소방청, 경시청, 경찰본부 등에도 방송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기에, 그곳의 마이크가 단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방송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송국 직원 중 보도국 소속이 아니더라도, 재난 발생시 긴급 상황에서는 기자로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두었고, 이를 위해서도 항상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Q. 라이프라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각사가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고 이를 시민들에게도 한 번에 알린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더 알고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 평소에도 준비하나.

A. 사실, 지진 직후에는 라이프라인 소식을 내보내지 않는다. 지진 발생 후 몇 시간 까지는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정보를 알리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야, 물, 가스, 전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재난 발생 이후 8시간 이후부터는 복구 상황을 1시간마다 15번씩 방송한다. 그러나 전기가 연결되는 경우 TV 시청이 가능해지기에 ‘라디오 라이프라인’의 역할은 끝난다고 볼 수 있다. 재난 시 방송을 위해서 평소에도 매월 한 번씩 방송국은 전화회사와 협력해 모의훈련을 실시하고있다.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붕카호소는 다른 방송사와 협력하여, 청취자들부터 받은 휴대용 라디오들을 피해지역에 보내기도 했다.ⓒ스즈키 도시오

Q. 일본에서 재난방송을 할 때에는, 과도한 감정 자극 표현 자제 등의 구체적인 언어사용 지침이 있는지 궁금하다.

A. 재난방송시 스튜디오에서의 진행자 멘트도 중요하다. 그런데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은 바로 재난이 발생한 현장에서의 말과 행동이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이미 재난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인데, 질문 하나를 하고 행동을 하더라도 신경을 써야한다. 특히 취재현장에서 취재를 할 때, 피해지역에서 휘발유를 사고 편의점에서 식량을 사들이거나, 숙소를 예약하는 것도 주의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이재민의 경우에는 휘발유조차 얻기 힘들고, 물건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취재활동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전에 재난 현장 주민들을 존중하면서 취재하라고 꼭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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