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확산의 새로운 통로가 된 미국 시트콤 '닥터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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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③] 미국= 유건식 KBS America 사장

▲ <닥터 켄> 스틸 ⓒ 미국 ABC

한동안 한류의 중심지였던 일본과 중국에서 한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규제가 계속 강화되어오다가 지난 20일에는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과 리메이크 작품을 금지한다는 지침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한류가 이렇게 일본과 중국에서 주춤하는 사이 미국 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제3의 한류 시장으로 성장할 잠재성이 충분하다. 한류 콘텐츠 중에서 미국 시장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음악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 덕분일 것이다. 지금까지 26억 8,635만 뷰라는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수 비를 비롯하여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미국 무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케이 팝(K-Pop)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갈길이 멀다. 아시아권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류 콘텐츠가 미국에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을 상대로 하지 않고, 미국 주류시장에 직접 진입하는 것은 언어문제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상당 기간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한류 확산의 방법으로 리메이크나 포맷 판매의 방법이 대두되고 있다. 이스라엘 드라마 <전쟁포로(Prisoners of War)>를 리메이크한 <홈랜드(Home Land)>가 성공하면서 이스라엘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났고, 많은 드라마가 리메이크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는 지금까지 <시월애> <장화 홍련> <올드 보이> <거울 속으로> <중독> <엽기적 그녀> <삼공일 삼공이> 등 7편이 미국에서 리메이크 되었다. 2006년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 주연의 <레이크 하우스(The Lake House)>로 리메이크 된 <시월애>와 2009년 <언인바이티드(The Uninvited>로 리메이크된 <장화 홍련> 외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30여편의 영화가 리메이크 계약이 되었지만 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올드 보이>가 2013년 의외로 흥행에 크게 실패한 이후 리메이크가 주춤하고 있다.

▲ <꽃보다 할배> 미국판 포스터 ⓒ 미국 NBC

예능은 올해 <꽃보다 할배> 포맷은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로 제작되어 NBC에서 방송하였다.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 시즌2를 하기로 결정되어 준비중이다.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포맷도 디스커버리 라이프에서 <프로젝트 대드(Project Dad)>로 제작 되어 지난 11월 1일부터 방송되고 있다. KBS의 <1박 2일>과 <위기탈출 넘버원>도 미국 포맷으로 개발중이다.

이제 남은 영역은 드라마이다. 그 동안 tvN의 <나인>을 필두로 KBS의 <굿닥터> <동네 변호사 조들호>, SBS의 <별에서 온 그대> <신의 선물> 등 많은 작품들이 리메이크를 위해 옵션 계약이 이루어 졌다. 아직까지 파일럿 제작까지 진행된 작품이 없다. 앞으로 <굿닥터>가 미국 드라마로 가장 빨리 리메이크 될 가능성이 높다. ABC가 2017년 초 소니 픽처스에게 파일럿 제작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상당한 금액의 패널티를 물어야 하는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콘텐츠가 한류 확산을 위해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한류를 확장하는데 있어 더욱 효과적인 통로가 있다는 곳을 알게 되었다. 바로 ABC에서 매주 금요일 밤 8시 30분에 방송하는 시트콤 <닥터 켄(Dr. Ken)>이 이러한 사례를 보여 준다. <닥터 켄>은 한국계 미국인인 켄 정(Ken Jung)의 자전적 이야기로 주인공 닥터 켄이 보험회사에서 의사로 일하는 삶을 다루고 있다. 2014년 파일럿으로 제작되었고, 2015/2016 시즌으로 2015년 10월 2일부터 방송하기 시작하여 22개로 시즌 1을 마무리하고, 현재 시즌2가 방송되고 있다. 주인공인 닥터 켄드릭 역을 연기하는 켄 정은 실제로 의사이다. 그는 영화 <행 오버(Hang Over)>에서 레슬리 조(Leslie Chow) 역할로 커다란 인기를 얻으면서 알려졌고, 이 작품에서는 시트콤을 기획한 크리에이터 겸, 작가 겸, 총괄 프로듀서 겸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닥터 켄>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닥터 켄> 제작팀에서 지난 9월 30일 KBS America로 <닥터 캔>에 삽입될 한국의 연속극 클립을 구매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때부터이다. 몇 가지 연속극을 소개를 하였고, 최종 <루비 반지> 중에서 2분의 클립을 사용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11월 4일 방송분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장면에서 실제 <루비 반지> 영상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나왔다. 더 직접적인 것은 이 일을 계기로 제작진에서 <닥터 캔> 녹화 현장에 초대하여 지난 15일 <닥터 켄>을 제작하고 있는 소니 픽처스의 스튜디오 28을 방문한 것이다.  미국 스튜디오는 몇 차례 견학을 해 보았으나 시트콤 제작 현장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11월 4일 방송된 에피소드는 주인공 캔 정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을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방송이 시작하자마자 자막도 없이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칠판에 한국어가 쓰여있는 장면이 나온다. 상당한 분량의 한국어가 나오고, 고스톱 치는 장면도 나왔다. 지난 10월 21일 방송된 에피소드에서는 핼로윈 시즌을 맞아 한국의 귀신을 등장시켰다. 저승사자, 구미호, 달걀귀신 등을 직접 등장시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캔 정이 한국계이고 본인이 이 시트콤의 아이디어를 냈고, 총괄 프로듀서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또한 지난 19일부터 매주 밤 11시에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송하는 6부작 드라마 <화성(Mars)>의 주연을 맡은 배우 겸 뮤지션 김지혜의 사례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배역이 중국계 쌍둥이였는데, 그가 합류하면서 한국계 쌍둥이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우주선 '다이달로스'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하나 승'과 지상 통신요원 '준 승'의 1인 2역을 하였다. 이 드라마에는 '스페이스X'의 일론 마스크와 영화 <마스>의 원작자 앤디 위어도 직접 등장한다. 그는 한국 전설과 현대 철학을 혼합한 공연 뮤지컬을 창작하려고 한국 전래 설화를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두 가지 사례를 보면 한국 드라마의 미국 리메이크와 포맷 판매도 필요하지만 한국계의 헐리우드 진출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제작 현장을 보면서 한국과 다르게 느낀 몇가지가 있었다.


첫째, 녹화 현장에서 주인공인 캔 정과 티샤 캠벨 마틴(Tisha Campbell-Martin)이 제일 먼저 나와서 바람을 잡았다. 켄 정이 특유의 코믹스러운 제스처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관객의 흥을 제대로 달구었다. <개그 콘서트> 같은 녹화 현장을 보면 일반적으로 신참 코미디언이 바람을 잡는 것과 매우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자기 쇼라는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두 배우는 15분 정도 마음껏 즐기고 녹화를 준비하러 들어갔고, 전문 사회자가 나와서 관중을 불러내 춤도 추게 하면서 녹화가 진행되는 내내 객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4시간의 녹화시간을 끌어갔다. 또 하나의 특징은 촬영에 들어가지 직전에 배우를 소개하고, 촬영팀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객석의 주된 역할은 녹화가 진행되면서 리얼한 웃음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기 때문에 장시간 동안 객석이 자칫하면 따분할 수도 있는 녹화현장에서 배우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녹화를 방송 한 달전에 하였다는 것이다. 당일 촬영에 필요한 인력을 기재해 놓는 콜시트(Call Sheet)를 보면 13명의 배우와 117명의 스태프가 촬영을 진행하였다.

이번에 진행된 것은 12월 16일에 방송하는 "박씨네 크리스마스(A Park Family Christmas)" 에피소드로 방송 한 달 전인 11월 15일에 녹화를 하였다. 다른 에피소드의 녹화 스케줄표를 보니 최소 한 달, 길게는 한 달 열흘 정도 전에 하고 있다. 대본 리딩은 녹화 일주일 전에 이루어 지고 있다. 1주일간의 연습시간을 갖고 배우는 준비를 할 수 있다. 한국의 녹화가 보통 방송 일주일 전에 이루어 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만큼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러웠다.


셋째, 쪽대본은 없다는 것이다. 촬영 1주일 전인 11월 9일 초고를 갖고 대본 리딩을 하였고, 대본 리딩 결과를 반영하여 두 번의 수정을 거쳐 촬영 대본을 완성하고, 또 두 번의 수정을 거쳐 녹화 당일 최종 촬영 대본이 확정되었다. 물론 대본이 수정되는대로 배우와 스태프에게 제공이 된다.


넷째, 스케줄표의 치밀함이다. 사전 촬영과 스튜디오 녹화로 구분하여 각각 24 1/8페이지 분량을 찍는데 각 신별로 15분에서 1시간까지 촘촘히 시간 계획을 세워 놓았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배우나 제작진에게 정확하게 대기할 시간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대기 시키면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 스케줄표가 대체로 당일 찍을 분량만 나열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실제로 배우가 몇 시간 대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진다.


다섯째, 배우들의 시청자와 친밀도이다. 녹화 중간 중간 다음 신을 준비하는 시간과 자신의 역할이 없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 배우들이 화장실에 가면서 방문객과 자유롭게 사진도 찍어주고 대화도 한다. 시청자의 인기를 먹고 사는 배우들의 바람직한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여섯째, 배우와 방문객을 위한 준비이다. 피자와 간식,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세트 주위와 VIP 시사회장 주변에 간단한 음식과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이는 드라마 CIS 촬영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동일하였다. 객석을 위해서는 물이 준비되어 있고, 녹화 중간에 별도로 피자도 제공하였다. 이처럼 녹화 현장이 모든 사람을 배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제작 현장도 이러한 면이 반영되어 좀 더 쾌적한 촬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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