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남자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까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교석의 티적티적] 공감대 형성 힘든 <살림하는 남자들>

▲ 살림솜씨는 대단한데 재미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살림하는 남자들> ⓒ KBS

KBS 예능국은 지난 추석 연휴 때 쏟아냈던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뒤로 밀어두고 <살림하는 남자들>을 화요일 밤에 전격 정규편성했다. 공중파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파격 편성이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평가를 내리기 다소 이른 시점이지만 파격은 파국에 가까운 위기를 맞고 있다.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다. 살림은 여자들의 몫이라는 건 모두 옛말이 돼버린 지금, 바야흐로 살림하는 남자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남자들이 요리에 빠진 쿡방, 아빠들의 육아예능 등에 이어 ‘살림’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림남들을 소개한다. 봉태규, 김정태, 문세윤 등은 새댁들의 기를 팍 꺾을 만큼 야무지고 현란한 살림솜씨를 선보인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 김장소에 넣을 재료나 오징어채에 마요네즈를 좀 넣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살림 노하우를 주고받는 수다판을 벌인다.

이 모임에 살림 신생아, 살림 무능력자도 함께한다. 그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KBS 예능국과 계속해서 연을 이어가는 김승우와 프리 선언하기 전 SBS <자기야-백년손님>으로 철없는 사위 캐릭터를 잡은 김일중은 살림을 못하거나 안 하는 일반적인 한국 남자를 대변한다. 비루한 살림 솜씨를 가진 두 사람이 벌이는 자존심 대결은 이 쇼의 가장 대표적인 웃음 코드다.

남자들이 살림을 하는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성 역할 차원에서도, 최근 논의가 활발한 패미니즘 관점에서도, 쿡방과 육아 등 가정적인 남자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예능 콘텐츠 측면에서도 충분히 제작해봄직한 일이다. 봉태규는 “살림을 도와준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표현은 혼나야 되는 표현이죠. 결혼을 같이 했으니까 살림도 같이 하는 거죠”라는 어록을 남기며 개념 남편의 표상으로 등극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김승우 집에 갖춰진 대형 인덕션과 샐러드마스터 냄비와 사각팬만큼이나 봉태규 같은 남편의 존재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살림하는 남자들>은 살림을 주부의 전유물로 여기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정작 타깃 시청자는 집안일에 서툰 새댁을 대상으로 한다. 살림에 관심이 깊지 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후크도 전혀 없다. 살림의 주역인 베테랑 주부들을 불러 모으기에는 다채로운 정보와 입담이란 측면에서 종편의 집단토크쇼보다 한 수 아래고, 남자들을 부엌으로 불러들인 백종원의 쿡방처럼 살림에 재미를 붙일 획기적인 제안이나 콘텐츠를 가진 것도 아니다. 일반 예능 시청자에게는 더 애매한 프로그램이다. 연예인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기엔 장모님이나 아이가 함께 나오는 예능들에 비해 볼거리가 너무 한정적이다.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볼거리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할 법한 봉태규, 김정태, 문세윤 등 살림남들의 야무진 살림 솜씨다. 혼자서 김치 20포기를 김장하고, 반찬 10종을 순식간에 뚝딱 해낸다. 보통 주부들이 하지 않을 생선 손질을 하루 종일 하고, 항아리에 불을 피워 소독까지 직접하며 발효보리 된장 담그기에 나선다. 대단하긴 한데, 살림 솜씨가 재미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살림 같은 일상 콘텐츠가 흥행하기 위해선 <나 혼자 산다>와 같이 일상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 시청자와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거나,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접근 가능성이 높은 정보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야 한다. 따라서 남자와 살림을 연결할 때는 주부의 관점을 벗어나 살림에 관심 없는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전할 명확한 볼거리가 필요했다. 솜씨를 뽐내기 위한 살림은 점점 더 유난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시청자들과의 공감대는 그만큼 더 옅어지게 된다.

오늘날 살림은 주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살림하는 남자들>과 봉태규가 하고자 하는 말도 그런 낡은 관념과 성역할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하고자 하는 말과 그 말을 들어줄 대상이 어긋나 있다. 김정태는 제작 발표회에서 한국 남편들을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살림솜씨를 뽐내는 방향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살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무슨무슨 맘’과 같은 커뮤니티에서나 잠깐씩 회자되고 말 정도의 마이너한 예능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살림왕을 뽑을 때가 아니다. 보다 야무진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