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이 내게로 온 날 23]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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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도록

▲ 훗날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준비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라도, 그 순간만은 마냥 행복한 아이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 뉴시스

달력을 넘길 때마다 가장 먼저 빨간 색깔의 숫자부터 눈길이 가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오래된 습관이다. 12월의 달력을 넘기자마자 ‘25’ 숫자를 찾았는데, 2016년 성탄절은 일요일이다. 크리스마스는 명실상부 가장 많은 세계인이 즐기는 기념일이다. 크리스마스(Chistmas)는 영어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로 고대 영어인 Cristes maesse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로마 역서曆書에 따르면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거행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미 군정기인 1946년부터 공휴일로 지내왔으며 이승만정권도 이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것이 불과 3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1945년 9월부터 1982년 1월까지 행해진 서슬이 퍼런 야간통행금지에도 12월 24일 성탄전야만큼은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한국인들에게 성탄절 이브는 1년 중 가장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성탄절은 종교와 관계없이 한 해를 마감하는 세시로 인식되며 이 시기를 즈음해서 감사 인사와 선물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굳어졌다. 특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흰 털이 장식된 빨간색 상의와 하의, 이마까지 눌러쓰는 긴 모자와 얼굴을 덮은 하얀색 수염, 배불뚝이 산타 할아버지는 큰 자루를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시는데, 내 여섯 살 기억 속의 산타할아버지는 자비를 실천하는 성인이 아니라 과거를 채근하고 닦달하는 무서운 심령술사였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신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날 때 장난할 때도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을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크리스마스캐롤 <울면 안돼> 가사중)

 

남원읍 내에서 유일한 ‘소화유치원’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1970년 성탄절 행사에서 어느 멋진 할아버지는 커다란 보따리에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내 순서가 다가오고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심문’을 시작하신 것이었다. ‘착하게 지냈느냐, 어른들 말씀 잘 들었느냐?’와 같은 흔한 질문이었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 지극히 개인사적인 부분을 꼬집어서 질문하는 바람에 나는 두렵고 무서워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산타할아버지가 어떻게 소소한 나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 여섯 살 어린아이에게는 그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산타할아버지의 준비된 각본과 선물은 가족들로부터 입수한 것이라는 것을 먼 훗날 알고 가족들까지 섭섭함이 전이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부모의 바람을 적으라고 할 때,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 굳이 세밀한 지적보다는 그냥 ‘형제간에 사이좋게 지낼 것’과 같은 소소하고 평이한 내용을 보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 자체가 기쁨이어야 하기에 어떤 단서나 기준을 적용하고 싶지 않다. 훗날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준비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라도, 그 순간만은 마냥 행복한 아이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꼬마야 꽃신 신고 강가에나 나가보렴

오늘 밤엔 민들레 달빛 춤출 텐데

너는 들리니 바람에 묻어오는 고향빛 노래 소리

그건 아마도 불빛처럼 예쁜 마음일 거야

 

꼬마야 너는 아니 보랏빛의 무지개를

너의 마음 달려와서 그 빛에 입맞추렴

비가 온 날엔 밤빛도 퇴색되어 마음도 울적한데

그건 아마도 산길처럼 굽은 발길일 거야

(산울림 노래 <꼬마야> 가사)

 

마흔 살에 접어들 무렵, 학생 시절 주고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이 생각나서 한 모임에서 선물교환을 제안했더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기쁘게 참여해주셨다. ‘1만 원 이내의 선물’이 관건이다. 가격에 맞추어 선물을 준비하기가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즐거운 고문이라고 행복해하셨는데, 그 가운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한 분은 기념품으로 받은 타올 속에 1만 원권 지폐를 넣어서 좌중을 폭소케 했다. 그 후로 이런저런 모임에서 송년회 선물교환을 연중행사로 기획해서 진행하곤 한다. 어떤 선물들이 목록에 오를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순간이다.

지난해에는 항암 치료를 하느라고 1년을 보냈었다. 서울대병원에서 8번에 걸친 항암을 마치고 전북대병원에서 30회에 이르는 방사선치료가 이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시행되는 방사선치료는 개인 일정으로 의사 면담이 지연되는 바람에 며칠 연기될 뻔했었다. 담당 간호사는 이리저리 일정을 맞추어 날짜를 조정해주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에 끝내 드리려고요.” 아! 나는 크리스마스를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간호사는 이를 염두에 두고 어떻게든 가뿐하고 개운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도록 성탄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 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 노래 불러요

온 세상이 그대 향기로 가득하게요

(김현철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가사 일부)

 

2015년 12월 23일 방사선치료 마지막 날,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치료해주던 방사선사가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살짝 눈물이 맺힌 듯했다. 매일 차가운 침대에 누워 방사선 치료가 끝날 때까지 숫자만 세었는데, 막상 치료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다가, 방사선사의 말 한마디에 현실로 다가왔다. ‘다시 만나서는 안 될 사이’이기에 마지막 치료의 의미가 각별했다고나 할까. 방사선사의 눈물도 내게는 선물이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위로와 다시는 아프지 말라는 당부가 함께 전해졌다. 12월 24일 예정된 의사진료를 끝으로, 의료진들의 축하를 받으며 방사선종양학과를 나왔다. 공교롭게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뭍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댄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꺼내어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전인권 노래 / <걱정말아요 그대> 가사)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도 마치 나를 위한 선물 같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니……. 그 또한 미래를 위한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2015년에 그처럼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으니, 올해는 다른 사람을 위해 각별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도록.

▲ 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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