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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푸른바다', 무엇이 우리 시대의 악인가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우화로 그려낸 현실, '도깨비'와 '푸른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7.01.11 09: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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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결핍을 판타지의 우화를 통해 에둘러 그려내고 채워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주인공이 순간 이동을 하거나 날아다니거나 타인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초현실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거기서도 어떤 현실적인 공감대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 SBS 제공

‘황당한’ 판타지와 ‘공감 가는’ 판타지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기도 하고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공중을 붕붕 나르기도 하며 때로는 현실에는 없는 도깨비나 인어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토록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들과 캐릭터들이 어찌 설득될까 싶지만 어느 순간 그 이야기 속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대중들은 깜짝 놀란다. 도대체 이 황당한 이야기들은 어째서 공감 가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판타지의 ‘우화적 기능’이다. 그저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결핍을 판타지의 우화를 통해 에둘러 그려내고 채워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주인공이 순간 이동을 하거나 날아다니거나 타인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초현실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거기서도 어떤 현실적인 공감대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의 이야기는 고려시대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승전보를 울리던 김신(공유)이라는 무장이 왕을 키우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하는 간신 박중헌(김병철)의 사주에 의해 자신은 물론이고 누이까지 죽게 된 그 비극적 운명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죽었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백성들의 염원으로 도깨비로 부활해 영생하는 형벌(?)을 받게 된 인물. 그는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 무(無)로 돌아가게 해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린다. 결국 도깨비는 도깨비 신부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검을 뽑을 수도 또 꽂고 살아갈 수도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우화적 기능을 만들어내는 존재는 도깨비가 아니라 박중헌이라는 악역이다. 사실상 이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애초에 생겨날 수가 없다. 그의 ‘세치 혀’가 김신의 운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러 박중헌이 원귀의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도깨비>의 이야기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이 박중헌의 세치 혀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해야 한다. 어린 왕을 세워 자신이 그 왕을 조종하는 ‘비선실세’가 되려는 박중헌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비극. 그가 어째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우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인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처럼 우화적 기능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보다는 악역이다. 그 악역을 통해 현실의 문제들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우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악역은 강서희(황신혜)와 그와 공조하는 마대영(성동일)이다. 그들은 사랑이 아닌 욕망으로 가짜 관계를 이어가는 인물들이다. 인어를 신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물질적인 값어치로 판단하는 이들이고, 사랑이 아닌 물적 욕망을 위해 타인의 가족을 파괴하고 가짜 가족을 만드는 이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진짜’와 ‘가짜’ 혹은 ‘진실’과 ‘거짓’이다. 결국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이 우화적 판타지를 통해 현실에 하려는 이야기는 진짜 행세하는 가짜를 몰아내고 밀려난 진짜의 가치를 다시금 세우는 일이다.

▲ <도깨비>와 <푸른바다의 전설>이 그리고 있는 판타지를 보다 보면 그래서 문득 문득 지금 현재 우리 시대의 악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 tvN 방송화면 캡처

물론 <푸른 바다의 전설>은 여기에 한 가지 더 ‘기억’이라는 우리에게는 실로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오는 키워드를 끼워 넣는다.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어가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허준재(이민호)의 기억을 지우지만 그는 끝내 다시금 그 기억을 되살려낸다. 조선시대의 담령(이민호)은 미래에 환생할 허준재에게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려 유물로 남겨놓는다. 기억은 덮는다고 덮이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도 아파도 기억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와 <푸른바다의 전설>이 그리고 있는 판타지를 보다 보면 그래서 문득 문득 지금 현재 우리 시대의 악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권력의 위치에 서서 잘못 놀리는 ‘세치 혀’이고 자신의 본분을 잊고 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를 앞세워 농단을 일삼는 일이다. 그것은 진짜 행세하는 가짜이고, 진실인 양 떠들어대는 거짓이다. 그리고 결코 지워서는 안 되고 또 지울 수도 없는 기억을 지우려 하는 행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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