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까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 아주 깊은 고민이 필요하고, 늘 긴장을 유지하며 고민해야할 질문들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부족하나마 지금 느끼는 생각을 일단 정리해보고 싶다. 고민이 깊어진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을 부여잡고 있기를 바라면서. ⓒ 민음사

어느 날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왜 여자 이름은 다양하지 않지?’ 내 친구들만 꼽아 봐도 대개 미, 선, 은, 정, 지, 현 이런 글자들이 하나 혹은 둘씩 들어 있다. 내가 아는 나와 동갑인 김선미만 3명이고 선미를 거꾸로 한 미선 또한 여러 명을 안다. 김현정은 우리 과에 학번 별로 한 명씩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름은 ‘지영’이다. 앞의 성은 김이박 순서대로 많으니 김지영, 이지영, 박지영이 가장 흔한 이름 되겠다. 실제로 대학 시절 나와 가장 친했던 동기 이름이 김지영이었고, 한 학번 아래에 이지영이 있었다. 대법원에서 낸 통계자료를 보면 1978년 출생 여성 가운데 가장 많은 이름이 김지영이니, 내 경험을 일반화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거 같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치고 지인 가운데 ‘지영’이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러니까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하면, 고유명사이면서 현재 30대를 살고 있는 뭇 여성들의 아주 평범한 이름 되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는 이름에서도 풍기는 바, 특별할 것 없이 너무나 평범한 30대 여성이다. 그녀가 살아온 삶은 이지영이나 박지영이 살아온 삶이고 김선미과 김미선이, 김현정이 살아온 삶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무난하고 평범한 삶은 그러나 전쟁과도 같은 삶이다.

평범하다면서 전쟁과도 같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조합이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실제 김지영 씨를 비롯한 평범한 여성들의 삶이 전쟁이라고 해도 과한 비유가 아니다. 남성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들, 혹은 이미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가늠할 도리가 없는 사건들이 평범한 여성들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전쟁처럼 만든다.

전쟁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김지영 씨의 동생은 엄마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는다. 딸만 둘 나은 엄마가 셋째마저 딸이 들어서자 낙태를 한다. 시부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마저 반기지 않는 아이라니. 낙태를 하고 짐승처럼 울부짖던, 그 눈물을 받아줄 이 한 명 없었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 또한 시대보정을 가미한 또 다른 김지영의 이야기다.

나도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을 수도 있다는 감각. 작년 강남역 10번 출구 때처럼,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느낌. 그건 남자인 내가 애초에 접근할 수 없는 감각이다. 물론 나도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이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내가 대학시절 자주 갔던 상도동 철대위의 망루가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면 나도 충분히 용산 철거민들처럼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가 이내 슬퍼서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남성이어서 겪는 일은 아니고,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출생과 관련해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겪은 느낌은 이런 거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엄마에게 효자였는데,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첫째인 내가 딸이었음 시집살이를 했을 거라고 아들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씀하신다. 여성들에게는 마치 전쟁터에 놓인 것처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경험이, 내게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효자가 되는 경험이다. 이 기이한, 그러면서도 아주 익숙한 대비는 2016년 서른 여섯 해를 살아온 김지영 씨의 삶 내내 이어진다.

김지영 씨의 걱정과 고민을 나는 거의 해 본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때 체벌을 빙자한 성희롱을 당할 염려도, 바바리맨을 만날까봐 걱정할 일도 없다. 면접시험 때 애인 있냐는 질문이나 상사나 거래처 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묻는 질문을 준비할 까닭도 없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일상적인 공포도, 공중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걱정할 일도 없다. 내가 해야 하는 걱정은 직장 상사가 진상이면 어쩌나, 으슥한 밤길에서 강도를 만나면 어쩌나, 이런 정도인데, 기실 진상이나 강도는 여성들도 겪는 일이고 사실은 여성들이 더 많이 겪는다. 진상들, 비겁한 이들은 늘 자기보다 약한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82년생 김지영』는 지루할 틈이 없이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양한 통계 자료를 인용한 까닭에 르포를 보는 거 같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평화운동, 사회운동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까닭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아주 깊은 고민이 필요하고, 늘 긴장을 유지하며 고민해야할 질문들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부족하나마 지금 느끼는 생각을 일단 정리해보고 싶다. 고민이 깊어진 뒤에는 또 다른 질문을 부여잡고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국 군대의 침입을 막고 전쟁 나면 싸워 이기는 거의 평화의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일상이 평화롭게 유지되는 것, 여러 층위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이 평화라고 말이다. 특정 집단이 겪고 있는 일상의 심각한 폭력에 저항하고 맞서는 것은 평화운동의 당연한 과제다. 그 집단이 세계의 절반인 여성이라면 더더욱.

페미니즘이 필요한 까닭은 폭력의 피해자들이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저항의 행위자로서 여성의 존재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화운동이 폭력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군사안보에 맞서서 새롭게 안보의 뜻과 의미와 실현 방식을 바꿔야한다면서 주장하는 인간 안보(혹은 대안 안보, 사회적 안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페미니즘적인 시선을 견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평화운동은 군사 안보라는 오답에 맞서 정답을 찾는 운동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국정교과서가 친일파와 독재를 미화하며 틀린 정답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은 정답 자체를 상정해놓고 따르라고 하는 것이 더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다. 평화운동은 군사주의라는 하나의 정답이 폭력적으로 강요되는 것에 맞서는 일이다. 병역거부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는 질문에, 여성의 평화와 남성의 평화는 대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물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 이분법적이고 폭력적인 세계관에 맞서서 새로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이분법의 세계관을 전복시키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중요한 방법론이라고 알고 있다. 이 방법론은 단순한 스킬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질문이다. 우리의 운동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페미니즘이 평화운동에 필요한 까닭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