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들 왜 이렇게 기억에 집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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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도깨비'도 건드리고 있는 기억의 문제

▲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지우고 좋은 기억들은 잊지 말자는 것. 물론 여기서의 망각은 모든 걸 덮자는 의미의 망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포용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방송화면 캡처

종영한 드라마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기억’의 문제는 중요하다. 물론 9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고려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판타지이고, 그래서 이 기억의 문제는 전생과 이생을 가르거나 잇는 차원에서 등장하지만 그것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가 이 판타지를 통해서 제시되고 있고, 그 선택에 따라 어떻게 현재의 행복을 이어갈 수 있는가의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먼저 전생을 보면 도깨비가 된 김신(공유)과 저승사자가 된 왕여(이동욱)는 연원으로 얽혀있다. 물론 간신 박중헌(김병철)의 간교한 혀가 그 촉발점이긴 하지만 왕여는 자신의 신하인 김신이 백성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것에 질투를 느껴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왕여 역시 마음을 주었던 김신의 여동생 김선(김소현)마저 죽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이생에서의 관계는 바로 이 전생과 엮여있다. 김신은 저승사자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관계가 되고, 저승사자는 김선이 환생한 써니(유인나)를 사랑하게 된다. 이들이 이렇게 다른 관계로 만날 수 있었던 건 전생과 이생 사이에 끊어져 있는 ‘기억’ 덕분이다.

물론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이 지워져 있던 기억은 다시 나타난 박중헌의 혼령으로 인해 이어진다. 전생의 비극적 관계를 알게 된 김신은 저승사자에게 분노하고, 저승사자는 자신의 죄를 알고는 써니와 헤어지려 한다. 하지만 이들이 해피엔딩이 이르게 된 건 저승사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김신과 써니가 그를 다시 받아들인 후 또 다시 죽음과 환생을 반복하면서다. 김신과 써니는 기억을 지우는 차를 마신 후 환생해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여기서 그들의 악연이 완전히 끊어진 건 잘잘못이 밝혀진 후 그 아픈 기억도 지우게 되면서다.

▲ 잘못된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아픈 기억이 충분한 사과로 인해 누그러지고 상쇄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역시 이들 드라마들이 기억의 문제를 통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 방송화면 캡처

한편 왕여에 의해 가슴에 검이 꽂힌 채 죽었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의해 부활한 도깨비 김신은 신이 내린 신탁대로 도깨비 신부인 지은탁(김고은)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도깨비와 도깨비신부라는 관계로 자신들의 존재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칼을 뽑으면 그가 무(無)로 사라져버리고, 칼을 뽑지 않으면 그 목적으로 태어난 도깨비 신부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결국 그들은 죽음으로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지만 지은탁은 기억을 지우는 차를 마시지 않고 환생함으로써 이생에서 그 기억을 가진 채 다시 김신과 만나 사랑을 이어간다.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건 결코 사랑했던 그 기억들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깨비>가 건드리고 있는 이 기억의 문제는 그래서 망각할 것들과 기억할 것들을 구분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지우고 좋은 기억들은 잊지 말자는 것. 물론 여기서의 망각은 모든 걸 덮자는 의미의 망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포용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바로 이 기억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 판타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은 인간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지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기억을 갖고 살아 가는 한 엄마에게 인어는 그 아픈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엄마는 지우지 않겠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아픔의 기억보다 사랑의 기억이 더 크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반면 이 드라마에서 희대의 악녀로 등장하는 강서희(황신혜)는 친아들인 허치현(이지훈)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미친 듯이 아파한다. 하지만 인어는 그녀의 기억을 지워주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어느 순간부터 기억의 문제는 중요한 주제의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생겨난 국민적 트라우마의 영향일 게다. 이들 드라마가 말하는 기억이란 사랑한다면 지울 수 없는 아픔이자, 가해자들에게는 그 기억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처벌이 되는 행위다. 또한 잘못된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아픈 기억이 충분한 사과로 인해 누그러지고 상쇄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 역시 이들 드라마들이 기억의 문제를 통해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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