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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다큐 PD’ 이홍기, 그가 ‘한류 다큐’ 조력자 자처한 이유

독립 PD계 대부를 만나다 [인터뷰] 표재민 기자l승인2017.02.03 16: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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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마다 가슴이 뛴다는, 천상 다큐 PD인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독립 PD들의 권익 향상과 한국의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하는 중이다. 한류 다큐를 이끌며 우리 다큐멘터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 한국독립PD협회

‘다큐멘터리 PD계의 대부’인 이홍기 PD는 30년 넘게 세상을 위한 투명하고 올곧은 창 역할을 하면서도 여전히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다. 국민 앞에서는 낮은 자세로 임한다는 신조로 시대 정신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만행卍行-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997), <동행同行-꽃의 방랑자>(2002), <공행共行-18일간의 아주 특별한 여행>(2006), <미행未行-망명자 정추>(2009), <순천(順天)>(2014), <후쿠시마의 미래>(2015) 등 다큐멘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 그의 눈과 손을 거쳤다. 인물에 대한 깊이 있으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은 언제나 깊은 울림을 안겼다. 특히 연출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 있는 출연자의 인터뷰를 생략하는 기법을 과감하게 시도한 선구자다.

<만행>부터 <미행>까지 ‘행(行)’ 시리즈는 인물의 삶을 지켜보면서 개인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가 갖는 문제를 살폈다. 그의 작품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표피적인 ‘최루성 다큐’도 아니고 예능 기법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퓨전 다큐’도 아니다. 묵직해서 더 깊은 감동이 남는 정통 다큐멘터리다.

하버드 출신 외국인 스님 현각을 다뤘던 <만행>, 양봉의 사계를 추적해 인간의 삶을 되짚은 <동행>, 여성 성직자들의 해외 성지순례를 통해 종교 갈등 극복과 인류 화합 방안을 제시한 <공행>, 천재 작곡가 정추의 일대기로 조국의 의미를 전달했던 <미행>은 다큐 PD들에게 ‘다큐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최근작인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여인의 이야기였던 <순천>,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한 <후쿠시마의 미래>까지, 이 PD의 작품 세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스럽게 상도 따라다녔다.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한국독립PD대상 등을 수상했다. 특히 <순천>은 세계 8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초로 초청됐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마다 가슴이 뛴다는, 천상 다큐 PD인 그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독립 PD들의 권익 향상과 한국의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하는 중이다. 한류 다큐를 이끌며 우리 다큐멘터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인정하는 다큐 PD이자, 우리 다큐멘터리가 해외로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가교를 일본에 구축했다.

이 PD는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현재는 일본에 프로덕션인 리키스튜디오 교토(www.facebook.com/LeekistudioKyoto)를 설립해 한국과 해외 프로듀서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 중이다. 리키스튜디오 교토는 일반 여행객도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숙박시설이다. 노련한 연출력을 가진 이 PD가 일본 현지 촬영을 돕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국내외 PD들이 교류할 수 있는 친선 도모의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작품을 보면 늘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이 있다.

다큐 PD는 국민 앞에서 낮은 자세로 임하는 ‘보고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험한 곳만 찾아다니게 됐다.(웃음) 다큐 PD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큐멘터리에 삶의 방식을 다루고자 한다. 참 흥미로운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맙게도 내가 한 노력들이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전세계 영화제에서도 초청을 많이 받고 일본 NHK 통해서 전세계에 방영되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 사실 매 작품을 만들 때마다 크고 작은 일이 발생한다. 편안하게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매번 이 작품만 마치면 더 이상 다큐 제작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또 한다. 내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다. ⓒ <후쿠시마의 미래> 홍보사

제작하면서 위험한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말도 못하게 많다.(웃음) 세상이 어지간히 흔들린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뚝심이 생겼다. 물론 나도 무섭다. <후쿠시마의 미래>를 제작하면서 원전 사고가 터진 지역에 나 혼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다른 제작진과 함께 할 수 없었다. 안전이 보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 혼자 갔다. 촬영 내내 힘들고 안타까웠다. 엄마와 딸이 모두 암에 걸렸다. 도처에 암환자가 가득한데 원인이 불분명하다. 원전 사고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몇 년 더 걸린다고 하더라. 안타까웠다. 다녀와서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사람들의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촬영하면서 느낀 압박감, 폐허가 된 원전 주변 지역을 보며 힘들었던 거다. 그런데 그 당시 어떤 방송사도 내 작품을 방영하겠다고 한 곳이 없었다. 다행히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도 했다.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지역 120여 곳에서 계속 영화가 공개되고 있다.

사실 매 작품을 만들 때마다 크고 작은 일이 발생한다. 편안하게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매번 이 작품만 마치면 더 이상 다큐 제작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또 한다. 내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다. 다시는 안 한다고 말하는데 또 한다. 밥을 먹는데 돌을 씹는 것처럼 힘들고, 소주 한 잔을 마시지 못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 있었다. 제작하면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이렇게 살다가 오래 못 살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다큐를 만든 동료들과 또 다시 일을 한다. 이제는 흰수염을 휘날리며 다시 새로운 다큐에 도전한다. 나와 함께 하는 작가와 촬영 스태프 모두 최고의 팀이라고 자부한다. 늘 작품을 위해 싸우고 함께 의지한다. 그들 덕분에 또 작품을 만든다.

다큐 PD로서 지켜온 원칙이 있을 것 같다.

인물을 밀착해서 따라가지만 비겁하게 제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강요를 한다든가 그들의 사생활을 깨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쉽고 빠르게 찍기 위한 인터뷰를 유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작품은 인터뷰가 없다.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게 내 원칙이다.

방송사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줄이면서 흔히 다큐의 위기라고 말한다.

다큐는 사실 방송사의 철학과 정신 세계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큐를 외면하고 있다. 실력 있는 독립 PD가 많은데 그들이 좋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독립PD협회 회장을 할 때 독립 PD들의 영역을 확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시선을 돌렸다. 협회 차원에서 유명 프로듀서들을 만나 우리의 좋은 작품을 소개했다. 워크숍을 열거나 PD들과 해외 유수의 영화제 관계자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그 프로듀서들이 놀라더라. 그들이 봐도 독립 PD들의 작품이 뛰어난 거다. 거기서 답을 찾았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독립 PD들의 작품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제는 한국 PD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 프로듀서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우리 방송사가 외면한 좋은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거다.

▲ 방송사가 다큐멘터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금처럼 깊이 없이 속보이는 주제의 가벼운 다큐멘터리만 대충 만들어 트는 것은 아니지 않나. ⓒ <후쿠시마의 미래> 스틸

독립 PD들이 ‘한류 다큐’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갖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독립 PD들이 정말 많다. 우리 방송사는 다큐멘터리를 외면하지만 우리 시장은 더 이상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한테도 일본이나 유럽에서 많은 연락이 온다. 그들은 한국 다큐 PD들을 인정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아는 거다. 처음 일본에서 다큐멘터리를 배울 때는 엄청난 일본 작품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제 일본이 나와 우리나라 다큐 PD들의 작품을 원한다. 일본 방송사에서 작품 의뢰가 수없이 들어온다. NHK에서도 작품 의뢰를 받았다.(실제로 NHK는 홈페이지에 이 PD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글과 인터뷰를 다뤘다) 국내에서는 애를 써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어도 돌아오는 것은 다시 냉담한 환경이다. 그런데 해외는 다르다. 우리 다큐 PD들을 인정한다. 후배 PD들이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싹쓸이하고 있다. 방송사 역시 실력 있는 독립 PD들과 손을 잡고 국제적인 규격에 맞는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좋은데 다큐멘터리를 내수용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다.

결국 시청자들이 좋은 다큐를 TV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것 아닌가

방송사의 횡포다. 수익성이 낮다고 외주 제작비를 깎는다. 인건비도 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제작비를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한다. 독립 PD와 공존할 생각이 없는 거다. 다큐멘터리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가 해외로 발길을 돌렸고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TV가 아닌 돈을 내고 극장에서 좋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사가 다큐멘터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금처럼 깊이 없이 속보이는 주제의 가벼운 다큐멘터리만 대충 만들어 트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다큐멘터리 시장도 변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여행이나 먹거리 관련 다큐멘터리는 짧은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경우는 포털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곧 디지털 매체에서 더 많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게 될 거다.

▲ 일본 촬영 때 현지 코디네이터로서 도움도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조만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도 개최할 예정이다. ⓒ 이홍기

사실 이미 다큐 PD로서 인정을 받았는데 일본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국내외 PD들의 교류를 돕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내가 일본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후배 PD들을 돕고 싶었다. 게스트 하우스 형식으로 프로덕션을 만들어서 PD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국내외 PD들이 한 곳에서 모여 서로 정보도 교류하고, 서로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일본 촬영 때 현지 코디네이터로서 도움도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조만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도 개최할 예정이다.

꼭 일을 하려고 오지 않아도 된다. PD는 늘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 지치고 힘들 때 잠시 쉬러 와도 된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해서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서 능력 있는 다큐 PD가 위기의 순간 꺾이지 않고 끝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후배 PD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선배 PD로서 책임감이 있다. 내가 판을 어떻게든 만들테니, 후배들은 좋은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 작품을 해외에 소개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표재민 기자  jmpy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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