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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랑 칼럼

만우절 아침에 l승인1998.04.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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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부르시더라. 화가 잔뜩 나신 것 같던데…’대상 선생님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면 가슴 방망이질은 더욱 심했다. 두려움에 교무실을 찾아가면 눈치챈 선생님이 오히려 골탕먹여 얼굴은 온통 홍당무가 되었고, 교실에 다시 들어섰을 때 득의 만만하게 웃어제끼던, 그렇게 얄밉고 능글맞던 친구의 얼굴.어릴 적 만우절의 기억은 오히려 입가에 상큼한 미소마저 떠오르게 한다. 왜 그랬을까. 우선 속이는 사람에게 악의가 없었다. 거짓말은 그저 재미였고, 상대방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법은 없었다. 만우절 전날이면 우선 누가 만만하게 속아넘어갈까, 어떻게 속일까, 얘기할 때 표정을 진지하게 해야 할텐데, 잘 될까 하며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러나 아침이면 까맣게 만우절임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내가 타겟으로 삼았던 친구한테 당하기 일쑤였고, 당했지만 그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만우절은 즐거웠다. 교무실에서 돌아올 때의 화남도 돌아와서 시치미떼던 친구의 얼굴을 보며 느끼던 약오름도 그때뿐, 우리는 다시 짓궂은 악동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랬다. 만우절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또 하나의 이유는 속인 자와 그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속은 자의 너그러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문득 아내가 농담처럼 던진 만우절 얘기를 들으며 상념에 잠겼다. 대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뭘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우리는 왜, 언제부터 만우절을 잊어버려야 했던 것일까. 아니 잊어버렸다기보다는 세상이 각박해지고 조직도 각박해져 그 속에서 우리도 여유를 잊어버렸다는 표현이 적확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즉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채널이 사라졌다. 모두가 서로 불신의 벽을 쌓아놓고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지도, 받지도 않으며 잘못이 있으면 우선 질책부터 하기 십상이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주는 신뢰와 배짱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우리의 명제인 구조조정과 개혁의 와중에서 그런 단면들을 자주 본다. 그것은 우선 한사람 한사람 스스로가 자유롭지 못해서일 것이다. 내가 한 말 하나하나가 때로는 키워지거나 왜곡되고, 폄하되는 것이 무서워 입을 다물어 버리지는 않았을까. 때로는 굳이 아닌 것으로, 의미를 재해석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달래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 생각한다. 만우절의 거짓말과 달리 최소한의 순수함과 원칙마저 잃어버린 거짓말들만 떠돌고 있지는 않은지. 얼핏 정당하게 보이는 주장에도 이해관계와 계산이 깔려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당당함과 이성보다는 포장된 거짓말(상대방을 벼랑으로 몰아넣는)만이 그 이면에 존재하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당연히 결과는 배타적일 수밖에 없어진다. 대화나 논의구조를 통해 의사가 결정되기보다는 목소리 큰 개인의 주장만이 존재한다. 항상 자신만의 주장만이 지선이며, 자기의 생각만이 정당하며,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 상대방을 설득하여 인정받기보다 독선과 아집만이 존재하며 상대방은 타도되어야 할 적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 집단의 건강함과 공동목표는 상실되고 편가르기, 갈등, 방향성 상실, 이기주의만이 득세하게 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는 해가 있으면 새로운 해가 뜨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순리다. 그럼에도 두 해 사이에서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논쟁이 편협하거나 복선이 깔린 주장, 새로운 권력을 향한 지향이라면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서 있게 될 것인가. 또 다른 권력, 편가르기, 이기주의만이 남아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될지도 모른다.마음을 열자. 좀더 넓은 시야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방향성과 합의점을 도출해내자. 옳은 일일수록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가, 그리고 원칙이 중요한 법이다. 만우절 아침, 속이고 속더라도 서로를 인정했던, 그리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다시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던 그때가 불현듯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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