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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한 헌사

‘터널’에 담긴 그리움과 아련함의 정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7.04.12 09: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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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돌아오지 못한 자들”에 대해 갖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분노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진 것들이다. 박광호도 김선재도 또 신재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을 겪었다. ⓒ OCN

‘터널’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건 시간이다. 어떤 힘겨운 시간을 지났을 때 우리는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니 OCN <터널>이 시간을 뛰어넘는 공간으로서 실제 터널을 설정한 건 꽤나 상징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던 박광호(최진혁)는 터널 속에서 정신을 잃고 30년이 지난 세상으로 빠져나온다. 그러니 터널 저편 30년 전에 두고 온 아내와 박광호는 생이별을 하게 된 셈이다.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 박광호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박광호는 어떻게든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아내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30년 후로 넘어온 박광호는 곧바로 동명의 형사로 오인 받으며 자연스럽게 화양경찰서에서 범인을 잡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사건 해결을 하는 일이 자신을 다시 본래 시간대로 돌려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지만 그게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어쩔 수 없는 형사 본능(범인이 있으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면서 차츰 이 30년 후의 세계에 살아가는 인물들과 관계를 맺어간다.

그와 함께 팀을 이룬 김선재(윤현민)는 몸으로 부딪치는 그와는 달리 CCTV나 SNS 등을 활용하는 수사를 하는 인물. 처음에는 박광호와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차츰 두 사람은 어떤 교감을 이루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것은 김선재의 그 차가움과 범인에 대한 집착이 사실은 자신의 어머니가 무참하게 살해됐던 그 사건 때문이라는 걸 박광호가 알게 되면서다. 사실 박광호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바로 그 김선재의 어머니의 살해소식을 그의 아버지에게 30년 전에 알린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법 심리학자인 신재이(이유영) 역시 김선재와 유사한 인물이다. 무슨 일인지 범죄자 같은 차가움을 보여주고 범죄 깊숙이 들어가 그 범죄자의 심리를 똑같이 느낌으로써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신재이 역시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가 죽음을 당하고 해외에 입양됐다 돌아온 아픔을 가진 인물이었다. 김선재는 그런 신재이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며 조금씩 다가간다.

<터널>은 매회 각각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펼쳐지고 해결된다. 하지만 그것이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지게 되는 건 그 사건 하나하나가 박광호나 신재이 그리고 김선재라는 인물이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단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빠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입을 꼭 다물어버린 꼬마를 상담하며 신재이는 자신의 아팠던 과거를 슬쩍 드러내고, 군대에서 구타로 죽은 아들 때문에 아내까지 잃게 되자 결국 그 살인자를 감정에 못이겨 살해한 한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김선재가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그래서 갖게 된 범인에 대한 살의 같은 과거사를 드러낸다. 또 질투 때문에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그 사람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한 한 범인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30년 후로 넘어와 동명의 형사를 가장해 살아가는 박광호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어떻게 이렇게 각각의 사건들이 다른데 저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연결고리를 갖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 사건들이 다 양상은 달라도 그걸 겪은 이들의 감정은 공통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돌아오지 못한 자들”에 대해 갖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분노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진 것들이다. 박광호도 김선재도 또 신재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단절을 겪었다. 어느 날 집밖을 나간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우리네 현실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의 뇌리에서 도무지 놓아지지 않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섰지만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터널>은 그래서 이러한 정서를 건드린다. 차라리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어딘가로 넘어가 살아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다면 그 터널을 다시 통과해 돌아올 수도 있으련만.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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