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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 빠진 지상파 예능 편성표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7.05.04 06: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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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래도 TV 시청자가 이탈하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개그쇼, 쇼버라이어티 모두 할 것 없이 지상파 3사의 예능 성적은 기대 이하일 뿐 아니라 변화나 반등의 흐름마저 보이지 않는다. ⓒ JTBC

지난해 가을 시작된 탄핵정국은 장미 대선으로 이어졌다. 기어코 만들어낸 시민의 승리다.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을 살아온 우리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겪고 성장했다. 방송 콘텐츠, 특히 가장 친근한 장르인 예능도 마찬가지다. 야구 중계나 예능 대신 뉴스 프로그램이 시작하길 기다리고, 앵커에게 아이돌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을 건넨다. JTBC <썰전>과 같은 시사토크쇼는 오늘을 읽는 나침반이 됐다.

그 이전부터 지난 10년간 예능은 진화와 변신을 거듭하며 시의성과 일상성이 제1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웃음은 더 이상 시청자들이 예능 콘텐츠를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니었고, 정서적인 접근과 일상(실용)의 추구가 보다 중요해졌다. 기회비용이 중요한 현대인들은 더 이상 TV를 킬링타임용으로도 선택하지 않는 추세다. 무언가 의미를 얻거나 담을 수 있을 때, 재미는 생산됐다. 바로 이 점이 시청자 공감형 프로그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MBC <마리텔>이 이제는 애국가 시청률로 수렴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이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또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안내했다. 고개를 들고 세상을 둘러보게 만든 사건은 일상과 밀접하게 연동되는 방송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쳤다. tvN과 JTBC를 필두로 시대정신을 담은 예능 콘텐츠들이 대거 개발됐다. 촛불이 가장 뜨거울 때는 현실의 은유가 담긴 역사 콘텐츠가 불타올랐고 <썰전>은 연일 1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모든 종편 채널이 예능 기법을 도입한 시사 토크쇼를 마련했다.

이 사건 덕분에 지금의 팍팍한 현실 문제는 개개인이 노력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흐름은 시대정신에 대해 함께 고민하거나 대안적인 삶의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방송에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나타났다. 한쪽은 <윤식당>,<효리네 민박>(예정), <집시맨> 등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욜로(YOLO)열풍에 본격 합류했고(신토불이 욜로라 할 수 있는 MBN <나는 자연인이다>는 최근 시청률이 치솟아 5%대를 넘어섰다), 또 한편에서는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삶을 둘러싼 세상을 점검하고 따져보는 강연 예능을 대거 마련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tvN과 O tvN의 <어쩌다 어른> <동네의 사생활>과 <우리들의 인생학교><수업을 바꿔라>(이상 5월 방영 예정) 등이 줄을 짓고 있다.

그런데 공중파 편성표를 살펴보자. 신생 예능으로 성공한 프로그램은 SBS <미운 우리 새끼>외에 없다. 몇 년째 요일별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예능들이 주말 예능을 포함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해서 장수하는 게 아니다. 시청률, 화제성, 충성도 모든 면에서 사이즈는 점점 줄고 있다. 주말 프라임 타임에 3%를 거두지 못한 예능도 있다. 즉, 현상유지도 급급한 실정이다. 안 그래도 TV 시청자가 이탈하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개그쇼, 쇼버라이어티 모두 할 것 없이 지상파 3사의 예능 성적은 기대 이하일 뿐 아니라 변화나 반등의 흐름마저 보이지 않는다. 공중파만의 공정성과 품위는 더 이상 변명거리가 아니다. 개그프로그램에서는 사회적 성숙도에 걸맞지 않은 흑인 분장 개그가 신생코너로 등장하고, 한참 철이 지난 연예인 동거 버라이어티나 몰카가 다시 시작됐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는커녕 그저 하던 대로, 과거부터 해왔던 것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는 얼마 전 워킹맘과 남녀 성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각국의 사정과 출연자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의견을 모았다. 무서운 상승기류를 타던 대선주자가 유치원 발언으로 어퍼컷을 제대로 맞아 다운되고, 남녀차별 및 역차별에 대한 논의가 한창 뜨거운 오늘날 귀담아 들을 점이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무한도전>도 국민의회 특집을 통해 현실을 끌어안았지만, 정작 본인들의 견해나 이견이 없는 일반적인 옳은 소리만을 담아내며 아쉬움을 남겼다. 독립적인 브랜드를 가진 프로그램도 여전히 이토록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오히려 가장 보수적이라는 KBS1가 이 흐름에서는 가장 앞선다. <서가 식당><역사기행 그곳><천상의 컬렉션> 등 예능화된 교양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고, EBS도 방송에서 회피하던 성담론을 나누는 <까칠남녀>를 내놓으며 변화의 파도에 더 적극적으로 올라타고 있다. 빈티지한 몰래 카메라나 수차례 변형을 거친 동거 리얼리티나 복불복이 아니라 우리 시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능과 접목할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지상파 예능은 얼마나 여유로운지 주말 아침, 신문에 실린 TV 편성표를 탐독하던 그때의 어느 아침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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