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리얼’로 보지 않는 ‘리얼리티’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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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리얼’로 보지 않는 ‘리얼리티’의 현재
[방송학@미디어 현장] ① 예능-MBC '우리 결혼했어요'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5.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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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예능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얼마나 더 리얼한가, 얼마나 색다른 상황에서 리얼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가상연애 리얼리티는 지금도 여러 형태로 변모하며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 효시에 있었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 김선영 PD와 방송학계가 만났다.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학회가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연속 콜로키움 <방송학@미디어 현장> 제1차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으로 논의하는 제작자와 시청자의 소통’을 진행했다. 연속 콜로키움은 총 4회에 걸쳐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콜로키움에서 홍지아 경희대 교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조율하는 장르적 특성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또 ‘낭만적 사랑’만을 담아 오히려 현실이 배제된 <우결>이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 MBC <우리 결혼했어요> ⓒMBC

‘리얼리티’, ‘리얼’ 그 이후?

실제 <우결>을 제작해왔던 김선영 PD는 제작 현장에서 리얼리티를 담보하기 위해 취했던 노력들과 시청자의 반응을 전했다. 김 PD는 차오루-조세호 부부 때부터 <우결> 제작진에 합류해 윤보미-최태준, 장도연-최민용 부부 등을 담당했다. 김 PD는 자신의 경험이 <우결> 10년의 경험이 될 순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PD는 <우결>이 그동안 최대한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을 밝혔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정말 결혼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현재 사귀는 사람은 없는지, ‘썸’을 타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등을 살펴 억지 결혼생활이 아닌 자연스러운 결혼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을 섭외했다.

가장 최근까지 방영됐던 장도연-최민용 부부 역시 캐스팅 때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강했다. 특히 최민용의 경우 섬에서의 신혼생활, 낚시를 해서 직접 밥을 지어먹는 등 구체적인 결혼 로망이 있어 프로그램에 반영될 수 있었다.

더불어 촬영을 할 때도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태프의 개입을 배제해 ‘지금 이건 연출’이라는 부분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 PD는 예전에는 리얼한 상황과 재미있는 장면이 부딪히면 리얼을 위해 재미를 버렸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PD는 시청자가 리얼리티를 더 이상 '리얼'로 보지 않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연출도 최근에 오면서 조금씩 변했다.

예를 들어 정혜성-공명 부부의 첫 만남 당시, 정혜성이 아버지에게 전화해 “지금 결혼했다”고 전하자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다 “우결을 찍는 중”이라고 밝혔더니 말투가 변하는 상황이 있었다. 몇 년 전만 했어도 ‘우결이다, 가상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을 편집했을 테지만 이제 그보다는 ‘재미있는 상황’이라면 우선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런 점에서 김 PD는 “‘가상이다’, ‘우결을 찍는 중이다’라는 말을 흘려서 리얼을 깨버려도 프로그램에 큰 영향이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김 PD는 JTBC <님과 함께>를 예시로 들며 “‘우결’은 출발 자체를 진정성, 리얼을 지키려고 끌고 오다 보니 시청자가 더 이상 리얼로 보지 않는 시대가 됐음에도 재미있는 부분을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며 “‘님과 함께’는 출발부터 대놓고 리얼이 아니라 가상남편과 아내라는 점을 표방하고 갔다. 굉장히 똑똑하게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토론에 참여한 윤태진 연세대 교수는 리얼리티가 진짜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센스 오브 리얼리티’, 즉 실제감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얼하지 않은 ‘상황 설정’까지는 인정하면서도, 거기서부터는 리얼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청자들은 리얼리티도 ‘저건 다 가짜일 거야’라고 말하며 재미로 보거나, 혹은 가짜인지 아닌지의 여부조차 관심이 없어졌다.

▲ MBC <우리 결혼했어요> ⓒMBC

윤 교수는 이어 리얼리티도 여러 소재를 통해 변모해왔음을 말하며 “최근 리얼리티의 핵심 단어는 유사가족”이라고 전했다. <우결> 역시 가상 부부를 통해 유사가족을 보여줬고, ‘나영석표 예능’은 계속해서 유사가족을 보여주고 있다. tvN <삼시세끼>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은 브로맨스가 아닌 남편과 아내 역할로 비춰졌고, 최근의 tvN <윤식당>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과 딸의 구성이 나왔다.

윤 교수는 “많은 학자들이 한국 리얼리티에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쟁, 생존보다는 우의, 협력에 매력을 느끼는 정서가 있다고 말해왔다”며 “이런 유사가족 리얼리티가 지금의 어떤 핵심 트렌드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리얼리티, ‘관음’ 혹은 ‘동일시’

콜로키움에서는 리얼리티를 보는 시청자들이 ‘관음’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인지 ‘동일시’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오고갔다.

김 PD는 “tvN '신혼일기' 소식을 들었을 때 진짜 부부가 나온다고 해 시작부터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둘이 껴안고 뽀뽀를 해도 긴장감이 없더라”며 “반면 ‘우결’에서는 이국주와 슬리피가 손만 닿아도 말랑말랑하고, 최민용이 장도연 머리에 붙은 밥풀만 떼어 줘도 긴장감을 가진다”고 예시를 들었다.

이어 그는 “시청자가 이들이 진짜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이쪽에 더 몰입하고, 오히려 리얼하게 빠져드는 모습”이라며 “리얼이라는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시청자가 리얼을 보면서 빠지는 건지, 리얼이 주는 프로그램에 빠지는 건지, 뭐가 리얼인지를 모르겠더라”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관찰의 대상이냐 동일시의 대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남자가 남자주인공을 볼 때는 동일시 기제가 더 작동한다. ‘우결’은 어떤 이상적인 모습을 놓고 바라보는 게 있는 것 같다. 실제 부부와 가상 부부의 차이는 동일시의 즐거움인가 관음의 즐거움인가의 차이 같다”고 설명했다.

▲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학회가 2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연속 콜로키움 <방송학@미디어 현장> 제1차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으로 논의하는 제작자와 시청자의 소통’을 진행하고 있다. ⓒPD저널

PD가 말하는 방송에서의 성역할, 그리고 여성 출연자

리얼리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우결>에 대한 질문과 예능 전반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지기도 했다.

플로우에서 한 사람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지 연출자로서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우결’을 보면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고, 이벤트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없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김 PD는 “방송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해주는 이벤트와 여성이 남성에게 해준 이벤트가 물리적으로 할애한 양은 비슷하다. 오히려 장도연-최민용 커플은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이벤트를 하고 선물을 사오는 부분이 더 많았다”며 “그럼에도 밖에서 바라볼 때는 항상 남자가 여자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남자의 적이 되는 프로그램처럼 된 것 같다. 이제는 다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실제로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도 남성 출연자가 더 많이 한 것 같은데...대한민국 생활상이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우결’이 핫하지 않은 프로그램이라 영향력이 미비하다”며 “고정관념화 된 성역할을 프로그램에서 많이 없앴다고 생각하는데도, 억울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플로어에서는 “리얼리티 예능에서도 남성 출연진이 많이 나온다. 셰프도 남자고 버라이어티쇼 진행자도 남자다. 이유가 궁금하다”는 질문과 “방송환경이 계속 공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 출연진을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있는지, 그걸 실제로 몇 %나 프로그램에 반영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 PD는 “리얼리티 소재가 점점 세지는 것 같다. 군대를 가고 정글을 가고, 노천에 가서 텐트를 치고 자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여성이 자연스럽게 배제된 측면이 있다. ‘아빠 어디가’ 같은 프로그램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건 뻔하니까 아빠가 데려가는 데에서 색다름을 준다”며 “실제로 여성 출연자를 데려가면 신경 쓸 게 많다. 그럼에도 이건 제작진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우결’이 막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박미선이라는 걸출한 여성 진행자가 지상파에서 이 프로그램을 끝으로 MC를 보는 게 없더라”라며 “최근 한 개그맨이 1인 시위를 하면서 개그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가야 결국 살아난다고 했듯이, 여성 출연자가 챙겨야 할 게 많다고 안 쓰지 말고 더 쓰고, 일부러 발굴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 후임이 없다. 그나마 있는 분마저 하차를 하니 마음 아픈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시청률을 안전하게 담보하려고만 하는 방송사 전체의 시스템을 지적했다. 김 PD는 “PD가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기획안을 가지고 부장에게 가고, 부장은 국장에게, 또 위에서는 편성팀과 논의해 몇 시 대에 프로그램을 넣을지 등을 고민한다. 일련의 단계를 거치면서 점점 더 안전빵을 찾는다”며 “그러다보니 기획안에서부터 유재석, 김구라, 신동엽, 전현무 등등만 들어간다. MC 순위에 따라 기획안이 통과된다. 이들이 있어야만 안전빵으로 시청률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는 방송사의 안일한 생각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여성 출연진, 여성 MC를 발굴해 제2의 박미선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악순환이다. 더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번 콜로키움은 결론을 찾는다기보다 현장과 학계가 함께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앞으로 <방송학@미디어 현장> 연속 콜로키움은 2차 드라마, 3차 교양, 4차 지역방송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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