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①] “지역에 있다고 다 로컬방송을 만드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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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BS 양호근 PD 기고문] 지역방송 PD 10명, 일본 동해방송을 가다


“지역 방송이란 지역에 밀착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성을 전국에 퍼뜨림으로써 지역 발전에 공헌할 때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타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이‘이 프로그램은 내 고향의 <동해방송>에서 만든 거야!’라고 자랑할 수 있을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지역에 있다고 해서 다 로컬방송을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일본 동해방송(Tokai TV)의 아부노 카츠히코 PD)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3박 4일간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 고베 등지에서 한국PD교육원(이사장 오기현)이 주관하는 ‘2017 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이 열렸다. KBS 지역국, 지역 MBC, 지역 민영방송 등에서 일하는 PD 10명이 포럼에 참석했다.

▲ 2017 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에 참가한 지역방송 PD들과 한국PD교육원 관계자들. ⓒ 양호근

일본 로컬방송사의 특화된 콘텐츠가 무엇인지, 그리고 재난재해에 대비한 일본의 방송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오기현 한국PD교육원 이사장은 “2001년부터 매해 ‘한중일 PD포럼’이 열리고 있지만 수도권 위주로 진행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며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지역 방송사와 라디오 PD 위주의 포럼을 진행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주최 측은 지역방송사 PD간 한일교류가 처음인 만큼 양질의 포럼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첫날 PD들이 찾은 곳은 내년이면 창사 60주년을 맞이하는 서일본의 대표적 방송사 동해방송(Tokai TV)이다.

동해방송이 TV다큐를 영화관에 거는 이유

나고야에 위치한 동해방송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TV다큐멘터리를 영화관에서 열 편째 상영하고 있다. 사람과 문화를 다룬 작품부터 일본의 공해, 교육, 헌법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지역에서 만들었지만 전 국민이 알았으면 하는 작품을 어김없이 극장에 걸고 있다.

“한 대학 강연 중 학생들에게 ‘일본의 다큐멘터리는 죽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어봤습니다. 200여 명의 학생 중 166명이 죽었다고 답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이론만 앞세운다, 무리하게 감성을 요구해서 질린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동해방송에서 23년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아부노 카츠히코 PD는 말을 이어갔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TV란 과연 무엇인가, 또 지역방송이란 무엇이고,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결심했죠. 매 작품에 정성을 다해 만들자. 일본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봐도 손색이 없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우리가 기록한 사실과 진실을 TV뿐 아니라 영화로도 알리자.”

▲ 일본 동해방송(Tokai TV) 전경. ⓒ 양호근

동해방송은 후지TV 네트워크사로, 시청권역은 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을 포함하여 약 11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국민에게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자 영화화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사내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아부노 PD는 제작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영화관에서 상영하기 때문이다. 다만 홍보비와 상영비 등으로 500만엔(원화 약 5000만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객이 일정 수준 이상만 들면 적자는 면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TV스럽다’는 이유로 영화관에서 퇴짜

하지만 영화관의 진입 장벽은 높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영화 산업이 중앙 집권적이어서 복합 상영관에서는 메이저 영화를 위주로 상영하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100여명 정도 들어가는 소규모 극장을 찾았지만 ‘TV스럽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에 걸렸으나 첫 두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다. 세 번째 작품인 <사형 변호인>이 누적 관객 1만 명을 겨우 달성했지만 그마저도 홍보비를 건지지는 못했다. 여기서 포기했더라면 동해방송의 다큐멘터리 영화화는 꿈에 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부노 PD는 “처음부터 수익성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공익성에 의의를 뒀기 때문에 꿋꿋이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정성이 전해졌을까. 네 번째 작품 <약속>은 2만5000명이 관람하였고, 일곱 번째 작품인 <이세신궁>은 지역 업체로부터 1000만엔(원화 약 1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그 이후 여덟 번째 작품인 <야쿠자와 헌법>은 관객 4만 명이 들었고 책으로도 출판 되었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인 열 번째 작품 <인생 후르츠>는 누적관객 14만 명을 돌파하며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 일본 동해방송(Tokai TV)에서 제작한 휴먼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 ⓒ 일본 동해방송

PD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분명해야

“머릿속으로 돈 벌 생각을 하며 취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죄의식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좋은 TV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만 집중하죠.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잘 만들면 흥행은 따라오게 돼 있으니까요.”

중견PD의 열정과 신념이 언어의 차이를 넘어 전달되자 한국에서 온 PD들이 뜨거운 박수로 답했다. 울산방송의 정항기 PD는 “잊고 있던 초심도 생각나고 지역방송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지역 밀착에 집중하고 기본에 충실 하는 제작 현실이 많은 걸 느끼게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일본 동해방송(Tokai TV)의 아부노 카츠히코 PD. ⓒ 양호근

또 KBS대구총국의 이형일 PD는 “지역 방송의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지속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고, 특히 지역 다큐멘터리가 영화화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콘텐츠에 대한 강한 자부심으로 느껴져 방송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인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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