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는 어떻게 사람들을 감동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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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②] 동해방송 ‘열중 팽이 세계대전’ 성공 비결

지름 2cm의 작은 팽이가 손을 떠난다. 순간 군중의 눈이 하얀 원판에 쏠린다. 긴장된 눈빛, 땀을 쥔 손, 바싹 마른 입술이 한 장면씩 오간다. 원판 위를 미끄러지듯 돌던 팽이는 상대 팽이와 신경전을 벌이더니 순식간에 원판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 순간 환호와 탄식이 교차한다. 두 손을 번쩍 들어 포효하는 사람, 부둥켜안는 사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아쉬워하는 사람...작은 팽이 하나에 어른들이 울고, 웃는다.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3박 4일간 일본 오사카와 나고야, 고베 등지에서 한국PD교육원(이사장 오기현)이 주관하는 ‘2017 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이 열렸다. KBS 지역국, 지역 MBC, 지역 민영방송 등에서 일하는 PD 10명이 포럼에 참석했다.

▲ ‘2017 한일 지역방송교류 포럼’ 중 지역방송PD들이 일본 동해방송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 양호근

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던 것은 바로 동해방송(Tokai TV)의 ‘열중 팽이 세계대전’ 제작진과의 만남이었다. 워낙 평이 좋은데다 지역 방송사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콘텐츠 하나로 팽이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열리고, TV뿐 아니라 극장에서도 상영되면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팽이에 담긴 공장 노동자들의 마음

이 작품은 나고야 공업지대의 소규모 부품 업체들이 겨루는 팽이 대결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나고야에는 도요타 본사가 있고, 그에 따른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들도 많이 있다. 주변 현은 전부 공업지대로 이루어져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처음에는 동해방송에서 뉴스 보도용으로 촬영을 했다가 그 뉴스를 접한 스즈키 타츠아키 PD가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보도용으로 촬영된 장면을 편집했기 때문에 영상이 세련되거나 감각적이지는 않고 거칠지만 한 번 보기시작하면 눈을 떼지 못하는 강한 매력이 있다. ‘팽이’라는 상징적 집합체에 작은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그들이 제품에 들이는 정성을 잘 담아내어 그 만듦새가 여간 탄탄한 게 아니다.  작은 팽이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고 엉뚱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으로 다가온다.

▲ 일본 동해방송(Tokai TV)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열중 팽이 세계대전>. ⓒ 양호근

스즈키 PD는 “이 다큐멘터리가 공업 지대의 팽이대결만을 단편적으로 다뤘다면 지금과 같은 호평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곧 사람의 마음이 팽이에 실려 있다는 게 포인트이고 나아가 이 공업지대의 노동자들이 만드는 물건에도 그들의 섬세한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요점”이라고 덧붙였다.

지역의 정신을 화면에 담는 게 로컬방송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주인공으로 설정한 소규모 부품 업체가 역전승을 하면서 극적으로 끝이 난다. 스즈키 PD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낮춰 말했다. 하지만 지역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교감하며,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무엇일까 하는 그의 고민이 없었더라면 이 다큐멘터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든 동해방송의 아부노 카츠히코 PD는 “지역 방송은 지역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작은 기업들이 물건을 만드는 정신과 마음을 화면에 담아 방송하는 게 로컬 방송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일본 동해방송(Tokai TV)의 스즈키 타츠아키 PD. ⓒ 양호근

포럼에 참석한 KBS춘천총국의 염정원 PD는 “지역의 시청자도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되는 계기였다.”며“‘로컬리티’와 ‘완성도’.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지역 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숱한 고민에 대한 답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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