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수익을 상식에 맞게 배분하다-미국의 경험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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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정영헌 독립 PD(뉴욕시립대 교수)] 대중문화의 총아인 방송 프로그램은 쉽게 얘기하면 일종의 시각적 소비재다. 시청자에게 프로그램이 도달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지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자, 프로그램 송출 시설을 담당하는 기관,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송출하는 방송사 등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거대 방송사가 이 모든 과정을 맡을 수도 있고, 각 단계별로 외주에 맡기고 최종 방영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수익-배분 시스템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 지금의 형태로 정착됐다. 미국 방송시장이 활력과 수익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상식과 공정성이다.

 

최종목표는 프로그램의 품질 유지

 

미국은 방송사와 제작자가 수입 분배를 할 때 정부, 즉 FCC가 정한 규율을 따라야 한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게 주요 목표다. 방송이 창출하는 수익은 대부분 광고 매출에서 온다. 인기 프로그램은 많은 광고가 보장되기 때문에 방송사는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예컨대 미식축구 결승 Super Bowl의 광고비는 2016년 500만불(CBS, 30초), 2017년 247만불(Fox, 하루)이었다. 엄청난 지불 능력을 가진 광고주가 있기 때문에 방송사는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사에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한다. 방송사는 광고 수익이 얼마가 될지 미리 알기 때문에 공정한 대가를 제작사에 미리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오픈된 광고시장 구조에서는 방송사만 수익을 챙기는 일방적 쏠림 현상은 있을 수 없다.

 

한국에서 방영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Breaking Bad>, <Games of Thrones>, <Orange is the New Black>, <Friends> 등 인기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모두 외주 제작사에서 만들어서 방영권만 방송국에 판매한 경우이다. 미국의 독립 제작사가 어떻게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큰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엄청난 규모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방송사와 제작사가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대형 스튜디오와 외주 제작사들은 제작비의 80% 정도 가격에 프로그램 방영권을 방송사에 판매한다.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에 들어오는 추가 수입도 있다. 시트콤 <Friends>를 제작한 Bright-Kauffman-Crane Productions은 NBC에서 이 프로그램이 처음 방송된 뒤 재 방영권 등 여러 가지 지적 재산권을 활용하여 1억불 이상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 외주 제작사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송사에 공급한 프로그램이 계약에 따라 방송된 뒤에도 외주제작사가 저작권을 계속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주 제작사는 자신의 저작권을 활용하여 추가 수익을 추구하며, 한국처럼 방송 편성권을 담보로 관행처럼 이뤄지는 저작권의 양도는 적절한 금액이 지급되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다.

 

연방정부와 FCC의 큰 역할

 

미국 방송 시장의 2016년도 수입은 165억불 규모다. 미국 방송 시장이 이렇게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국정부의 노력이다. 방송 시장은 방송사, 제작사, 광고주 등 관계자들의 수입 분배 과정이 중요한데, 미국 정부는 이 세 주체 중 약자가 되기 쉬운 제작진들의 권리와 권한을 늘 우선시하여 정책을 만들었다. 제작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미국 방송시장은 3단계의 진화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상업 TV가 탄생 했을 때는 방송사가 자사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의 모든 권리를 소유했다.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송출됐고 첫 방송 이후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권리인 재방송, 타지역으로 판매, 홈비디오 판매 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첫 단계라서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외주 제작자가 저작권을 방송사에 무조건 넘겨야 하는 2017년의 한국 방송시장과 비슷한 구조였다.

▲ 방송사는 직접 제작할 때 드는 비용 보다 적은 비용보다 좋은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광고로 수익을 내고, 외주제작사는 안정된 수익을 기반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 것이다. ⓒ넷플릭스

미국 방송시장은 시장의 성장과 함께 좀 더 공정한 룰을 제작사와 방송국 양측에 당연히 요구하게 된다. 두번째 단계로 1970년대, 미 연방 정부 '반독점법'에 따라 3 개의 방송 네트워크 (ABC, CBS, NBC)는 프로그램 소유권 및 금전적 권리의 독점을 금지하는 “Financial Interest Rule”에 서명했다. 이 때부터 수많은 외주 제작사가 등장하고 독립PD들이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3대 메이저 방송사는 이미 방송된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했으며, 돈이 되는 콘텐츠의 제작이 활성화되어 결국 미국 방송계의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 규칙 안에서 메이저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을 2년간 2 회 방송할 수 있는 라이센스 비용을 외주 제작사에게 지불하고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된다. 방송사는 직접 제작할 때 드는 비용 보다 적은 비용보다 좋은 프로그램을 방영하여 광고로 수익을 내고, 외주제작사는 안정된 수익을 기반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 것이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미국처럼 공정한 룰을 만들어 지상파와 종편TV에 법적인 강제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단계인 1990년, 3대 방송사 뿐 아니라 유료 케이블 채널과 중소방송사인 FOX 채널 등의 규모가 커지면서 미 연방정부 반독점 법 “Financial Interest Rule”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FCC는 네트워크 소유를 금지하는 이 법을 폐지했고 방송사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는 물론 네트워크 배포사를 회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기본적으로 모든 플랫폼에서 소유권에 대한 규제가 사라진 것이다. 공정한 룰이 제작사와 방송사 사이에 정착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단계에서 미국 방송시장은 성숙한 자율 기능이 존재하며 최소한의 규제만으로도 충분한 시장이 된 것이다.

 

공정한 관행 정착, 바이아웃 옵션 유행

 

지금 미국 방송제작시장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바이아웃(Buy Out) 옵션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게 유행이다. 프로그램 독립 PD를 고용하여 제작비를 지급한 뒤 자체 제작 콘텐츠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고용된 독립 PD는 저작권을 행사 할 수 없지만 수익에 대한 배분을 따로 받는다. 방송사는 프로그램의 수익을 공개해야 하며, 독립 PD는 프로그램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 혜택을 협상해서 받는 공정한 룰이 존재한다. 방송사 프로듀서들은 특수한 프로그램일 경우 제작사를 찾아가서 제작하기도 한다. 이 경우 제작사와 독립 PD 사이에 다시 수익 분배를 하게 된다. 계약이 종료된 독립 PD는 본인이 만든 내용에 대해 컨설턴트와 동등한 자격으로 계속 참여하여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다.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한 프로그램이 여러 번 되풀이 판매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Netflix에서 제작한 한국 영화 <옥자>는 바이아웃 옵션으로 제작한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4월 일어날 뻔한 미국 방송영화작가협회의 파업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야기한 2007년 파업과 다른 점이 있다. 미 방송사에서 전통적으로 해 오던 시즌당 22편의 방송 에피소드 대신 Netflix나 HBO의 새로운 방식인 10편 이하의 방송 패턴이 등장하면서 작가가 한편당 받던 전체 원고료가 줄어든 것이다. 미국 방송영화작가협회는 편수가 줄어서 생활에 지장이 있으니 편당 원고료를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방송사들은 Netflix나 HBO에 시청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이 작가들의 요구를 신속히 들어주고 협상을 마무리했다. 좋은 콘텐츠를 새로운 플랫폼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기꺼이 더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이다. 한국 방송사들도 미국 방송사들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태도에서 배울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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