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맘'은 병맛 시트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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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능 드라마를 위한 도전, 성공인가 실패인가

[PD저널=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3주 전 MBC의 시트콤 <보그맘>은 실검을 장악하며 등장했다. <정글의 법칙>, <삼시세끼>, <나혼자 산다>에다 MBC 파업까지 겹친 상황에서 등장한 ‘보그맘’이 주목을 받은 건 작명에서 온 영향이 크다. 대대적인 홍보나 환영의 분위기 속에서 런칭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던 대중에게 ‘보그맘’이란 세 글자는 호기심을 끌기 충분했다. 사이보그에 대한 내용인지, 어떤 맘 카페에서 무슨 이슈가 터진 건지, 심지어 90년대 NBA스타 먹시 보그스의 이름까지 머릿속에서 소환될 정도로 종잡을 수 없는 특이한 제목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보그맘>은 실로 오랜만에 내놓은 MBC 예능국의 극작품이다. 부제를 ‘럭셔리빌리지 빽토킹 SF드라마’라고 붙였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발랄하고 싶은 기획의도만큼은 확실히 느껴진다. 한마디로 시트콤 특유의 가벼운 연출과 오버스런 연기를 차용한 예능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박한별이 아내와 엄마 노릇을 하는 사이보그 로봇 ‘보그맘’ 역을 맡아 로봇 연기에 도전하고, 여러 방송을 통해 안정적인 어른의 삶에 편입했음을 보여주던 양동근이 보그맘을 창조한 천재박사 최고봉 역을 맡았다. 양동근의 전성기는 MBC 청춘시트콤의 전성기와 겹친다. 2002년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로 시작해 싸이와의 친분을 빌미 삼아 한번 했던 배우 겸 힙합퍼 양동근의 개성이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 곳은 <논스톱>과 <뉴논스톱>이었다. 그런 양동근이 다시 시트콤으로 돌아왔다니 얼마 전 <쇼미더머니>나 <고등랩퍼>에서 만난 것보다 더 반가웠다.

▲ MBC '보그맘' ⓒMBC

반응도 나쁘지 않다. 색다른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고 시청률도 3~4% 내외이긴 하지만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보그맘>이 더 이상 이슈를 끌지 못하고 치고나가지 못하는 것은 10여 년 전 시트콤 양식과 인식에서 몇 발짝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를 제거하고, 금요일 심야 시간에 드라마처럼 편성했지만 극화된 예능의 재미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연기톤이나 웃음 포인트를 잡는 연출 방식은 그 시절, 그 연출에 머물고 있다.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기존 MBC 시트콤이 청춘, 청춘을 포함한 가족물을 다룬 반면, 육아와 AI라는 콘셉트를 잡았다는 것 정도다.

우선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여러 국산 시트콤과 마찬가지로 전개가 설정을 넘어서지 못한다. 보그맘이 최고봉 가족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도도혜(아이비), 부티나(최여진)를 위시한 콧대 높은 맘 커뮤니티를 무력화시키는 보그맘의 예측불허 활약이 기대 포인트라는 것은 1회 단 몇 분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교육과 맘 커뮤니티에 이런저런 상처를 받은 시청자들에겐 보그맘이 로보캅일 수도 있겠지만, 그 외 시청자들에겐 실베스타 스텔론의 저지드레드에 가까운 이유다.

박한별의 로봇 연기 이외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재는 왕따 이야기, 신입회원 길들이기, 재력으로 편 가르기 등이다. 최대 갈등은 정체를 숨겨야 하는 보그맘과 보그맘의 실제 모델인 이미소(박한별)에게 학창 시절 깊은 열등감을 느끼며 살다가 인생 역전에 성공한 도도혜가 이끄는 맘 커뮤니티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너무나 익숙한 인과관계다보니 재미와 웃음을 만드는 장면과 이야기 전개 장면이 물과 기름처럼 나뉜다.

줄거리를 책임지는 보그맘과 최고봉 박사가 재미와 웃음에서 비켜서 있는 대신, 웃음은 카메오와 최여진, 황보라를 비롯한 조연들이 과거 시트콤의 연기톤으로 책임진다. 막춤, 추녀 변장, 카메오 출연이 각 에피소드의 메인이벤트다. 조연 중 가장 활약도가 높은 최여진은 우아한 말투로 구수한 상황을 영어로 표현하는 박휘순, 나몰라패밀리식 코미디를 구사하고, 버킹검 유치원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권현빈은 어울림과 상관없이 아이돌 힙합퍼 캐릭터를 펼친다.

카메오에 기대는 전략은 이야기 전개의 빈틈을 더욱 크게 벌려준다. 종종 예능에 등장해 가창력 뒤에 숨은 끼를 발산했던 김연우가 신점을 보는 도사로 분해 트와이스의 시그널 춤을 잔망스럽게 ‘계속’ 추고, 정상훈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8~90년대 홍콩 배우 느낌을 재현해 3화 웃음 포인트의 대부분을 담당한다. 잠시 한 장면에 등장해 임팩트를 주는 게 아니라 줄거리의 외전겪인 카메오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그 장면 자체가 이슈가 되고 재밌다는 반응을 얻을 진 몰라도 이미 흥행한 캐릭터를 잠시 빌려오는 형태로 웃음을 채우는 건 극화된 장르에서 최악의 고갈 상황이다. <빅뱅이론>과 같은 미드 시트콤이 국내에서도 전성기를 누린 지 10년째 되는 지금도 과거 청춘시트콤을 제작하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최근 설명하기 어렵거나 정교하지 못한 코미디를 모두 뭉뚱그려 ‘병맛’이라고 포장한다. 키치함의 친숙한 표현으로 이해되는데, 그렇다면 정말 밑도 끝도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맥락을 재해석하거나 뒤틀 때 나오는 게 ‘병맛’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그맘>은 기존 관행을 깨고 나타난 새로운 예능 드라마라고 평가할 만한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시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립 유치원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재단장한 시트콤, 예능드라마의 2017년 버전이라고 말하긴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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