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귀순병 인권 위협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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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옥수수 알갱이”‧“현빈 닮은 근육질” 자극적 표현 도배

[PD저널=박수선 기자] 총을 맞고 귀순한 북한 병사의 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언론에선 귀순병의 인권 존중과 거리가 먼 자극적인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과 조중동 등이 귀순병의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교수가 전한 북한 병사의 상태를 필요 이상으로 부각하거나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TV조선 <종합뉴스9>는 지난 22일 열한번째로 전한 <“소녀시대 열광…미드‧영화 푹 빠져”> 리포트에서 “이국종 교사가 북한 귀순병이 회복되자, 다양한 영화와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했다. 귀순 병사가 그 중에 가장 좋아했다는 노래가 바로 소녀시대 지(Gee)”라며 소녀시대 지의 뮤직비디오 등과 함께 귀순병의 회복 상태를 보도했다. 이날 <종합뉴스9>는 톱뉴스부터 12건을 북한 귀순병 관련 보도로 채웠다.

▲ <조선일보> 23일자 5면 기사.

<조선일보>도 23일자 5면에서 <“귀순병, 현빈 닮았고 근육질 몸매…소녀시대 노래 좋아해”>에서 인포그래픽을 통해 북한 병사의 체격과 북한 생활 등을 상세하게 전했다. <조선일보>는 북한 병사의 체격을 “해군 UDT 대원 느낌의 단단한 근육질‘이라고 묘사하며 "애초 법학도가 꿈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선일보>가 “현빈 닮은 근육질”이라고 표현한 북한 병사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생충’ ‘옥수수 알갱이’ 등 자극적인 단어로 열악한 북한 실태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북한 병사가 1차 수술을 마친 뒤인 지난 16일 TV조선 <종합뉴스9> 앵커는 <“기생충 만연” 북 위생 ‘충격’> 리포트를 전하면서 “부상당한 귀순 장병의 몸을 통해 북한의 실상이 드러났다”며 “북한 주민들의 위생과 영양상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같은날 MBN도 <북한군 영양 섭취 매우 부실>에서 “병사의 소장 길이는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4분의 3에 불과할 정도로 짧고, 옥수수 알갱이와 분변, 심지어 기생충까지 들끓었다”고 보도했다.

▲ 지난 16일 방송된 TV조선 <종합뉴스9> 보도.

민언련은 지난 17일 낸 방송뉴스 모니터 보고서에서 “일부 언론은 북한 병사의 회복 상황을 전한다는 명분으로 ‘기생충’. ‘분변’ 등의 자극적 키워드를 강조해 전달하고, 이를 근거로 ‘열악한 북한군의 실태까지 추측하고 있다”며 “알 권리라는 명분을 앞세워 온전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듯한 보도가 더 이상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마련한 인권보도 준칙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인권보도 준칙은 북한이탈주민과 북한 주민을 다룰 때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동의가 없는 한 성명, 출신 등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북한 주민의 경제 상황이나 독특한 문화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북한 귀순병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가 홍역을 치른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2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이국종 교수를 지목해서 문제제기한 게 아니라 환자 치료 상황에 대한 국가기관의 부당한 개입과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종대 의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기생충이 60㎝, 수 천마리 알과 기생충, 핀셋으로 집어냈다는 생생한 묘사가 이뤄졌는데, 원래 기자회견 내용에도 없었다”며 “마치 눈으로 생생하게 보듯이 묘사가 됐고, 우리 사회 2만명이 넘는 탈북인들에게 혐오의 감정이 튈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이국종 교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환자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세세하게 답을 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는 언론의 몫”이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는 인권보도 준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탈북민을 이런 식으로 밖에 소비할 수 없는지 부끄러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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